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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3 19:54 수정 : 2006.09.14 07:19

커피는 취향인데 ‘된장녀’가 무슨 죄?

‘된장녀 논란’을 뒤늦게 알게 됐다. 프랜차이즈 외식 사업체와 다국적 커피 판매업체의 성장을 견제하는 동시에 한국의 된장을 재발견하여 세계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로 만들어 낸 지하 비밀단체의 음모가 아닐까, 나 혼자 생각했다. 분노와 폭력을 반죽하고 비꼼과 시샘을 고명으로 얹은 그 논란이 무서웠다. 가상의 ‘된장녀’들을 향한 누군가의 울분이 섬뜩했다. 논란 중에서도 가장 당황스러웠던 대목은 ‘2000원짜리 라면을 먹고 난 후 6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박한 울분이다. ‘나는 5000원짜리 백반을 먹고 300원짜리 자동판매기 커피를 마시는데, 너희들은 왜 그걸 반대로 하느냐’라는 농담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한가하게 커피숍에 앉아 수다 떨 수 있는 너희들이 참 부럽다’라는 하소연 같기도 하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커피를 소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다.

이탈리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이 떠오른다. 공항에 내렸을 때 나를 반긴 건 커피 향이었고, 도시 곳곳을 걸어다닐 때도 언제나 커피 향이 났다. 하늘에서 누군가 거대한 분무기로 커피 향을 뿌려댄 듯한 느낌이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고, 스산하면서도 매캐한 커피 향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도시를 배회하면서 하루 다섯 잔 이상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나면 무디어졌던 내 몸의 감각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났고, 안개가 자욱하던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자동차에 기름을 주입하듯 내 몸에 커피를 주입했다. 한 잔에 1000원, 값도 쌌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내게 사치가 아니라 달콤한 끼니였다.

에스프레소에 중독이 된 후로는 음식보다 커피에 더 까다로워졌다. 같은 원두로 커피를 만들더라도 누가 뽑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되는 게 에스프레소다. 커피를 뽑은 종업원이 딴전을 피우는 바람에 온도가 식어도 그 맛이 달라진다. 너무 묽으면 싱거운 맛이 되고 너무 진하면 탄 맛으로 변하고, 신맛이 강해서도 안 되며, 커피 위의 크레마는 적당한 두께로 살포시 얹혀야 하고, 색깔은 은은한 갈색이어야 한다. 그게 나의 기준이다. 이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찾아갈 수밖에 없다. 가끔 왜 이렇게 내가 커피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에스프레소 앞에만 앉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명품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지만 비싼 커피를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수는 없다(커피 값이 왜 그리 비싸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그건 너무 잔인하다. 맛과 향을 즐긴다는 것은 문화의 한 부분이며, 취향의 문제이며, 누군가에게는 존재의 이유이거나 예술의 원천일 수도 있다. 내 주머니에 지금 8000원이 들어 있고, 아주 맛있는 커피 집을 방금 소개받았다면, 나는 기꺼이 2000원짜리 라면을 먹고 6000원짜리 커피를 마실 요량이다.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새로운 커피 집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부암동의 클럽에스프레소(02-764-8719)를 찾아간다. 진한 커피 맛이 일품이며 직접 만드는 쿠키도 맛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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