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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9 18:46 수정 : 2006.09.29 18:46

사람들이 인용해 쓰고있는 성어(成語) 중에는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말이 더러 있다. 예컨대, 소나무는 깨끗한 곳을 좋아하고, 대나무는 더러운 곳을 좋아한다는 뜻의 정송오죽(淨松汚竹)이 라는 말과, 또 다른 하나는 정월 소나무요, 오월 대나무란 뜻의 정송오죽(正松五竹)이 그 것이다.그런데 이 말속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뭐냐하면, 한결같이 소나무를 높여서 대접해 부른다는 점이다. 하기는 굳이 이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소나무는 분명 여느 나무들과는 기품이 다르다. 선인들이 이미 알아본 나무가 아니던가.

그 증명으로서 소나무는 인품(公)을 부여받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한자를 파해보면 소나무 송(松)자는 나무 목(木) 변에 귀인 공(公)이 붙어 있다. 이 밖에도 노간주나무를 뜻하는 두송(杜松)이나, 은행나무의 별칭인 공손수(公孫樹)에도 공(公)자가 붙기는 하나 그것은 예외일 뿐, 실제 품위는 소나무를 따르지 못한다. 소나무는 주위 환경에 맞추어 자세를 잡으며, 한번 갖추고 서면 변함이 없이 자란다. 그러한 까닭에, 문헌을 보면 소나무를 좋아하고 칭송한 글들이 많이 발견된다. 몇가지 들어보면, 이이선생은 세한삼우 중에서도 단연 소나무가 으뜸이라 했으며,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은 죽어 가는 자리에서도 낙낙장송의 그 소나무 기개를 노래했다.

한편, 고산(孤山)선생은, 소나무가 좋아 오우가(五友歌)를 지었으며, 완당(阮堂)선생은 귀양지에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자신에게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준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남종화의 대가 남농(南農)선생은 일평생 소나무만을 화두 삼아 붓을 잡았으며 애찬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한 건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멋도 멋이지만 빼어난 기품 탓이 아닐까. 자신을 성찰하듯 바늘 같은 잎을 가지고 있으며 거북등 같은 인고의 삶을 견디고 살아 홀로 청정해진 때문이 아닐까. 아닌게 아니라 소나무는 보기에는 비록 거칠지만 그 몸짓은 경건하여 사람을 쉽게 범접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기운이 있다.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한 것은 사용한 아호(雅號)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현(松玄), 송암(松岩),송재(松齋) 현송(玄松),석송(石松)일송(一松)등 그 별호도 부지기수인데, 이렇듯 소나무를 닮고자 함은 인품이 그리되기를 바라서일까. 우리나라는 소나무의 천지다. 산이라면 으레 소나무가 있고 또한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런 만큼 소나무로 빙 둘러싸인 나라요, 상시 그 향취가 짙게 번져나는 땅이기도 하다. 그런 때문인지 애국가 가사를 따라 '철갑을 두르듯' 하고 뇌어보면 소나무가 떠오르고, 또 다른 노랫말 '일송정 푸른 솔은'하고 따라 부르면 선열들의 활기찬 기상이 어리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소나무가 최근 들어 혹사를 당하고 있다. 솔잎혹파리가 창궐하여 전국의 소나무들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다 지구의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몇 백년 후면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데,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니 실감은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소나무가 하나 있다.

고향마을 뒷산에 서 있으면서 언제나 어른 같은 자애고운 모습을 보이던 노송인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없는 것이다. 없어진 사연에 대해서는 누가 살아있는 나무를 관자목에 쓰기 위해 벌목을 했다는 말이 있고, 태풍에 쓰러진걸 나중에 누군가가 나중에 가져갔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이 소나무는 내가 소싯적만 해도, 읍내로 향하는 풍치재 중간지점에서 훌륭한 쉼터를 제공해 해 주었다. 수령이 3백년쯤 됐는데, 가지들이 땅에 닿을 듯이 늘어져 여간 운치가 있는데 아니었다. 그런 나무 그늘에서 통학생과 장꾼, 그리고 나무를 하는 일꾼들이 쉬어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의 삶을 지켜봐 주던 나무였다. 그런데 그런 나무가 베어지고 없어진 것이다. 언제가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이 다니지 않아 막혀버린 길을 헤쳐나셨다가 크게 실망을 하였다. 나무가 베어졌다는 말은 들었음으로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그 지점에 이르고 보니 허전한 것이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온산이 빈 듯이 허전하고 허허로웠다. 괜히 들렸다는 후회만 일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노송에 대한 추억마저도 지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 비슷한 크기의 우람한 노송을 만나면 고향 소송을 떠올리고 어디가 고향소나무를 닮지나 않았나 하고 눈여겨본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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