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0 17:21
수정 : 2005.03.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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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김좌진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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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 요람’ 예로구나
3월은 우리 겨레 독립운동의 달. 동남아시아 장악 야욕에 사로잡힌 일제가 힘을 앞세워 이 나라를 짓밟을 때, 이에 맞서 싸우다 희생되고 고통받은 선열들이 무수하다. 홍성 주변에도 선열들의 유적지가 즐비하다. 여행길에 잠시 들러,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거사의 한자락을 되새겨볼 만하다.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김좌진 장군 생가터와 기념관=일제시대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이었던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의 생가터와 기념관이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 있다. 특별한 유품은 남아 있지 않으나, 당시의 기록과 신문기사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장군은 만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북로군정서군 사령관이 되어 본격적인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한다. 1920년 9, 10월엔 만주 청산리 일대에서 2500명 병력으로 5만여명의 일본군을 맞아 세차례의 격전 끝에 3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다.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사상 최대 승리로 꼽히는 청산리전투다. 장군은 1930년 중국 산시역에서 암살됐다. 묘소는 보령에 있다.
한용운 선사 생가터와 사당=홍성군 갈산면 성곡리. 소나무숲 울창한 산자락, 대나무숲 옆에 불교운동가로 시인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의 생가터가 있다. 생애를 통해 일제와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는 곧은 삶을 살다 광복을 한해 앞두고 세상을 떴다. 생가터엔 소박한 초가가 복원돼 있고 초상화를 모신 사당도 있다. 초가 오른쪽 대나무숲 옆엔 거의 껍질만 남은 오래된 감나무가 한 그루 겨우 살아 서있는데, 나이든 주민들은 이 나무가 한용운 선사의 어린시절을 지켜본 나무라고 말한다. 그 옆에선 만해기념관과 민족시비공원 조성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묘소는 망우리에 있다.
또 홍성읍 대교리엔 홍주의사총이 있다. 을사조약에 반발해 일어난 의병 수백명이 홍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유골들을 모신 곳이다. 홍성에서 가까운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인 충의사와 생가터가 있다. 충의사 현판은 지난 3·1절에 떼어졌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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