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마운틴은 이름 그대로 칼로 자른 듯 평평한 정상에 킹 프로테아를 비롯해 핀보스, 에리카 등 수많은 식물들로 이뤄진 ‘하늘정원’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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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쪽 끝 케이프타운
검은 대륙의 땅끝에 섰다. 세찬 해풍을 헤치고 ‘폭풍의 곶’ 해안 절벽에 오르자 확 트인 전망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는 대서양과 인도양의 검푸른 물결이 부딪쳐 천둥소리를 내며 하얀 포말로 부서져 내린다. 남위 34도21분25초. 해안에는 북위와 남위, 그리고 영어와 토속어인 아프리칸스로 희망곶의 위치를 표시한 이정표가 서 있다. 우리에게 희망봉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케이프 오브 굿 호프’(Cape of Good Hope), 곧 희망곶에 섰다. 대서양·인도양이 맞부딪는 곳, 유럽침략의 아픈 기억은 그림 같은 ‘하늘정원’으로 피고 ‘만델라의 감옥’ 로빈섬도 이젠 전설 깃든 관광명소로 1497년 유럽 동편의 미지의 세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발견해 ‘폭풍의 곶’이라 불렀고, 1497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것을 기념해 ‘희망의 곶’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제국들의 대륙 침략의 발판이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이곳은 지금은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자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현지 안내인은 진짜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은 희망곶에서 동남쪽으로 200㎞ 거리의 케이프 아굴라스라고 귀띔한다. 희망곶 동쪽으로 2㎞쯤 떨어진 해안절벽에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인도양과 대륙 서쪽의 대서양이 만나는 접점인 케이프 포인트를 찾았다. 궤도차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자 저 멀리 희망곶이 보인다. 인도양 쪽은 해안절벽을 이루고 대서양 쪽은 붉은 알로에 베라가 피어 있는 산기슭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뤄 해안과 만난다. 희망봉과 케이프 포인트는 케이프타운으로부터 60㎞ 떨어진 케이프 반도의 남단에 자리잡은 두 꼭짓점이다. 케이프 반도의 끝은 케이프 포인트이지만, 위도상으로는 희망봉이 조금 더 남쪽에 있다. 여행광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지구 최후의 관광지 아프리카 대륙. 그 가운데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로 가는 첫 관문이다. 남아공의 시초가 되었던 곳이라는 뜻의 ‘머더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아름다운 이 항구도시는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와 세련된 도시 경치가 워낙 뛰어나 ‘아프리카의 유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럽제국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다 발견해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했던 희망곶은 이제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자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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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곶과 함께 케이프타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테이블마운틴을 꼽을 수 있다. 8억5000만년 전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해발 1086m의 산은 이름 그대로 산 정상이 뾰족이 솟은 게 아니라 평평하게 다진 모양이다. 실제로 정상에 오르면 마치 칼로 반듯하게 자른 듯 평평해 테이블마운틴이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구름이 자주 정상을 가려 남아공 사람들은 산을 가린 구름을 가리켜 테이블보라고 부른다. 360도를 천천히 회전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자 그림처럼 아름다운 항구도시 케이프타운 시내와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은 또다른 세상이다. 평평한 테이블에는 동서 3㎞, 남북으로 10㎞가량의 드넓은 ‘하늘 정원’이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다. 구름이 저만치 발아래에 걸려 있고, 색색의 꽃과 풀이 가득하다. 테이블 마운틴은 식물의 보고이다. 남아공의 국화인 킹 프로테아를 비롯해 핀보스, 에리카, 콘부시, 핀쿠션 등 발견된 식물만 1500종을 넘는다. 단위 면적당 식물 분포 수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테이블마운틴 옆자락으로 예수의 12제자를 본떠 이름지은 ‘12사도 봉우리’가 펼쳐져 있으며, 케이프타운 남쪽 앞바다에는 조그만 섬이 외롭게 떠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항거하다 18년 동안 정치범으로 수감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감옥 로빈섬이다.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탈바꿈했고 99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섬에는 만델라의 수감 번호가 적힌 감방과, 그의 체취가 묻은 담요와 식기가 보존돼 있다. 척박한 바위 땅 위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테이블마운틴의 수많은 식물들에서, 만델라의 로빈섬에서, 또 희망곶에서 오랜 세월 숱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일궈낸 남아공 민중들의 삶의 흔적과 희망을 엿본다. 케이프타운/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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