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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2 17:31 수정 : 2007.02.23 15:28

서울로 가는 길에 돌아본 탄천길.

[홍은택의 ‘서울 자전거 여행] 마지막회
1년9개월 67차례 레이더 연재 마치고 레이서 출사표
아메리카 가로지르고 서울 ‘은하수’ 건너 끝을 향해

서울 여행의 연재기를 마칠까 합니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기를 연재할 때부터 치면 이번이 67회입니다. 중간에 한 달의 공백은 있었지만 저로서는 1년 9개월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써온 셈입니다. 이제 펜을 놓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저의 여행에 이따금 동행하는 동반자이셨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퇴근하고 난 밤 10시 분당 정자동에 있는 사무실입니다. 책상 옆에 받쳐놓은 자전거는 어서 집에 가자고 재촉합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마치 이전에 연재기를 전혀 쓴 적이 없는 사람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습니다.

페달밟기는 걷기와 마찬가지로 이젠 신체활동의 연장

이번 최종회는 사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출사표입니다. 이제 라이더에서 레이서로 바꿔 살고 싶습니다. 비슷한 말 같지만 라이더와 레이서는 다릅니다. 라이더는 세상을 봅니다. 여행과 통근의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입니다. 레이서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끝을 보고 싶습니다.

이 여행기를 연재하는 동안 저는 라이더로서 성장했습니다. 일년 전쯤인 저는 두렵고 약했습니다. 차도로 가지 못하고 인도로 다녔습니다. 보행자들에게 미안했고 운전자들이 무서웠습니다. 아스팔트는 삼각파도가 치는 울독목과도 같았습니다. 이제는 이따금 물결이 이는 한강처럼 파도가 잦아졌습니다. 차도로 주행하는 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터널도 지났고 한강의 다리도 건넜고 약수 고가차도도 넘었습니다.

퇴근하고 나면 혼절하듯 쓰러져 잠들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운동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침 저녁으로 50분씩 자전거를 타도 배가 나옵니다. 이미 .


자전거가 아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서울의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습니다. 천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살면서 보여주는 만화경. 어떤 분은 서울을 은하수적 구조를 갖춘 도시라고 했습니다. 서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좋은 뜻으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계획적이고 잡종적 뻗어나감을 빗댄 말입니다. 거기다 서울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오히려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집니다. 혼돈의 공간입니다.

변화를 좋아하는 천성, 그래서 새로운 목표를 떠올려

저는 자전거를 타면서 이 무차별적 공간에 서울에 대한 저의 영상을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재발견이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서울의 역사와 나의 과거를 자전거를 통해 교차시켜서 저만의 서울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 서울은 상대적이며 부분적이며 주관적이며 파편적인 서울이겠지요. 제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잡다하면서도 천편일률적인 공간 안에도 역사가 숨어 있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단지 보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도로에 흩어진 맨홀과 차선에 난 표지병의 위치를, 그리고 도로의 기울기를, 때로는 넘어지고 깨지면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계절은 더 이상 창밖에서 변화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비와 눈을 맞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울의 누구보다 계절을 민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레이서로 정체성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서울 여행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근의 행선지가 서울이 아닌 분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잠수교 한남대교 한강대교 잠실대교 동호대교의 다양한 노선과 남산 장충동 중랑천 용산 이태원 청계천 등의 중간 거점들을 다양하게 조합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매일 창출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못할 꿈 같은 경험입니다.

제 집이 있는 수서에서 분당까지 가는 길은 탄천변의 자전거도로를 따라갑니다. 안전하고 잘 포장된 외길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란스러운 서울길이 더 좋습니다. 천성이 저는 변화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자전거도로를 주행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떠올렸습니다. 레이서가 되자. 레이서는 시간을 다툽니다. 베란다에 처박아둔 경주용 자전거를 꺼냈습니다. 속도계를 달고 속도를 재기 시작했습니다. 속도를 의식하니까 주위의 경관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계기판의 숫자만 보입니다. 어떻게 달려도 편도 18㎞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직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속도를 의식하니까 주위 경관은 사라지고 오로지 계기판의 숫자만

시간을 단축하는 이유는 사이클 대회에 출전하는 레이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원래 목표지향적이어서 과정을 즐기는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이더로서 주유천하하면서 세상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법을 의식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천성은 속이지 못하는가 봅니다. 목표가 없으면 과정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국 횡단여행을 할 때도 사실 미국 횡단이라는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으로서의 여행을 즐겼다는 게 그 전의 삶의 태도와 달랐던 겁니다.

사이클 대회 출전을 목표로 세우고 나자 갑자기 제 생활에 중심이 생겼습니다. 모든 취미와 여가가 이 목표를 향해 재배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평균속도 25㎞로 달립니다. 시속 30㎞는 돼야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은 목표를 위해 준비를 하되 목표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다음 달에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할까봐 초조한 마음을 억눌러봅니다.

마감 쫓겨 시간 벌려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연재기 쓴 적도

제가 라이더로서 서울을 제대로 봤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정부까지 뻗어 있을 것 같은 중랑천길도 다 가보지 못했고 목동에서 구로, 금천을 거쳐 안양, 의왕에 이르는 안양천길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엄밀히 말해 출퇴근길에서 본 서울이었을 뿐입니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자전거를 못 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졸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마감에 쫓겨 출근하는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연재기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자전거 연재기를 쓰기 위해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모순인 거죠.

항상 예민한 감각으로 서울을 관찰한 것도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깨어보니 집앞인 적도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항상 마음이 평안했던 것도 아닙니다. 운전자들과 얼굴 붉히는 말싸움을 벌인 적도 있고 보행자들에게 위협감을 줄 만큼 거칠게 몬 적도 있었습니다. 맞바람에 공연한 화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41살에 달려 3년만에 목표 달성, 그 뒤 24년을 매일같이

그래도 제게는 너무 신기한 것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해서 후회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기진맥진할 것 같은 날에도 타고 나면 원기가 샘솟았습니다. 제가 아는 마라토너가 있습니다. 65살의 미국 교수인데요. 이 분은 41살에 달리기를 시작해 본인이 마라톤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3시간 안에 풀코스를 주파하려는 목표를 세웁니다. 3년만인 44살에 2시간58분으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아마추어로서는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 뒤 이 분은 대회를 출전할 때마다 3시간 안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조금씩 기록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본인이 체력적으로 쇠퇴하는 걸 확인하기 위해 대회를 출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기. 그렇게 24년을 매일 달렸습니다. 엉덩이를 다쳤을 때는 목발을 짚고 동네를 돌았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렸습니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 6시에 문턱을 넘는게 아직도 지옥

그런데 가장 와닿는 이 분의 말씀은 이 대목입니다. “아직도 일요일 오전 6시에 문턱을 넘는 게 지옥에 가는 것처럼 싫다”고. 평소에는 오전 10시에 달리는데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기 위해 시간을 당겨 아침 6시에 달리기를 합니다. 24년을 계속해왔는데도 여전히 좀 더 자고 싶은 유혹의 강력함은 줄어들지 않더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이 분은 유혹에 진 적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약해서 때로는 다른 할 일을 핑계로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만 이제 레이서로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더 엄격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것은 자전거와 나, 길 그리고 어둠의 따뜻한 위로

그러나 레이서가 돼도 때로는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적막한 강변을 한가롭게 달리고 싶습니다. 전등이 비추는 오직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보고 달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숨소리와 윙윙 바퀴 돌아가는 소리만 감각하고 싶습니다. 페달을 살짝 밟아도 바퀴가 척척 알아듣고 기동할 테지요. 인어의 다리가 물고기의 꼬리라면 제 다리는 바퀴인 것 같습니다. 반인반거입니다. 해가 떠 있을 때 있었던 소란스러웠던 일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 둘 지워집니다. 달릴수록 어디로 가고 있다는 목적의식도 희미해집니다. 기어를 1단으로 내려봅니다. 남은 것은 자전거와 나, 길 그리고 어둠의 따뜻한 위로입니다.

후회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분당에서 퇴근하는 길이 그렇습니다. 탄천변을 따라 서울을 향해 오다 보면 서울공항의 담벽이 끝나고 서울 남단의 대왕교 가로등이 나올 때까지 몇백미터의 길에 불빛이 없습니다. 제법 공간감이 느껴지는 빈터에는 밤의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서울로 가는 통과의례입니다. 문명의 불빛이든, 허영의 불빛이든 불빛으로 잠들지 않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어둠의 구간을 거쳐야 합니다. 제게는 이 의례가 다른 의미로 소중합니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이 구간을 달리는 동안 불빛에 지친 몸이 깨어납니다. 지나고 나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직장인이 아닌 자연인으로.

물길을 따라 날아가던 새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저 영하 9도라는 예보를 들었습니다. 서해 먼바다에서는 3미터에서 4미터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겠지요. 머리 위 상공 1만 미터에서는 항상 시속 200㎞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바람이 불어주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자전거를 굴릴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언젠가는 바람이 상하로 불어 내려올지 모릅니다. 그 때까지는 제가 달리는 이 시공간이 각별합니다. 제가 바람을 일으키고 갑니다. 달릴 수 있을 때 달려보렵니다. 이제 다시 불빛의 행렬이 시작됩니다. 서울에 다 왔습니다.

그럼 우리가 바퀴를 돌릴 때마다 세상이 한 걸음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며.
홍동지 올림

아메리카 대륙 자전거횡단이라는, 평균적 한국인의 상상의 한계를 단숨에 돌파하면서 열광과 함께 인식의 신천지를 열었던 홍은택씨의 놀랍고도 즐거운 자전거 여행이 마침내 막을 내립니다. 47차례 이어진 미국 동서횡단기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와 거기를 횡단하는 자전거 여행에 관해 20차례 올린 글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 감동적인 체험기이자 보고서였으며 희귀한 문화인류학적 성찰 또는 사색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말대로 모두 1년 9개월에 걸친 67회의 대장정을 헤쳐나가며 ‘라이더’로 성장한 그가 언젠가는 빼어난 ‘레이서’로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세계를 펼쳐주기를 기대합니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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