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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3 10:33 수정 : 2007.05.03 15:15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바뀌는 메뉴판. 4~5개월마다 계절에 맞는 새로운 요리를 선보인다.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② 르 생텍스
프랑스 남자가 차려주는 프랑스 가정식 밥상
이루고 싶은 사랑과 함께 바람을 소리를 들어라


해질녘 바람 소리가 붉은 기운에 묻혀 귓가를 맴돈다. 도시의 바쁜 걸음들은 속도를 내며 어둑한 골목으로 사라진다. 그 위로 별들이 빛나고 떨어진 해 사이로 보랏빛 열망들이 피어난다. 작은 모퉁이를 돌자 <르 생텍스>가 보인다. 향긋한 빵 냄새가 절로 발길을 붙잡는다.

은빛 실내가 돋보이는 <르 생텍스>는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의 주인공 클로이를 떠오르게 한다. 그녀가 되어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꼭 사랑을 이루고 싶은 그 또는 그녀와 함께 가라.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의 사탕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박물관을 구경하고 마치 악마에게 유혹당한 것처럼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달려왔다. 겪어보지 않은 관음적 상상이 온 몸을 휘감는다. 허락과 거부의 짜릿한 줄다리기가 심장을 붉게 물들인다. 저녁 식사 후 광장이 보이는 작은 내 침실로 그를 끌어당긴다. 순백색 이불을 휘감고 이내 격정으로 변한다. 거칠게 단추를 뜯는다. 살짝 입술을 깨물자 그 작은 아픔도 아주 진한 쾌감으로 전해져 온다. 이윽고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의 움직임에 맞추어 우리는 사랑을 한다. 오직 희미한 달빛만이 우리를 비춰 준다....’ 앗~ 맛있는 송아지스테이크가 나왔네! 나의 상상은 ‘펑’ 소리를 내며 사라져 버린다.


<르 생텍스>에 가면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그곳에는 프랑스 냄새가 가득하다.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멋지게 차려 내는 이곳은 한국말에 능숙한 멋진 남자 벵자맹 주아노가 책임지고 있다. 12년 전, 프랑스 대사관 직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주아노는 대사관을 그만둔 후 홍익대학교 계약직 교수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2000년, 프랑스 요리는 비싸고, 우아하고 세련되어야만 먹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서 <르 생텍스>의 문을 열었다. 안락한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 무서웠단다. 하지만 고향 보르도에서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인수해서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아버지와 이곳의 재정을 담당하는 한국인 동업자 친구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을거리를 좋아한 그는 날것으로 요리를 해주셨던 어머니의 입맛을 물려받았다. 이곳의 메뉴는 파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일 했던 주방장에게 자문을 구해서 정했다. 지금은 주아노를 대신하는 프랑스 요리사가 만두 요리에 들어가는 피, 훈제연어 등을 직접 만든다. 모든 요리는 천천히 만드는데, 천천히 오래 요리해야 재료의 질감, 향, 맛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메뉴로는 한우로 만든 안심 스테이크요리와 훈제 연어 요리를 꼽을 수 있는데, 고기는 담백하고 아주 쫄깃하다. ‘염소치즈와 아몬드샐러드’도 맛있다. ‘오늘의 요리’는 4~5개월마다 계절에 맞는 요리를 정해서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메뉴를 바꾼다. 갈 때마다 은근히 기대가 된다. 와인은 프랑스 지방별로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빈티지에 신경 쓰는데, 고국에서 긴 세월 동안 먹어본 와인 중에서 괜찮은 것들만 골라 메뉴에 넣었다. Grand Luberon 이 특히 맛있다. 한두 잔만 마시면 그 빛깔만큼 마음도 몸도 빨개진다.

그는 프랑스와 우리나라 문화를 연결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단다. 600쪽에 이르는 우리나라 여행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것은 물론 200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남자, 프랑스 요리로 말을 걸어오다>라는 프랑스 요리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또 ‘이국의 판화 조선에 관한 옛 프랑스 판화’ 전도 기획하고 전시했다. 이제 곧 또 다른 책인 <움직이는 서울>이 프랑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정말 프랑스적인 삶을 느끼고 싶다면 사랑스러운 그녀와 함께 바람 부는 <르 생텍스>로 향해보라. 그리고 왜 우리가 사랑하는 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찾아가는 길
전화번호 02-795-2465
영업시간 오전 12~오후 3시, 오후 6시~오후 12시 (주문은 9시 30분까지만 받는다)
메뉴
전채요리 5천~1만5백원
따스한 전채요리 1만~1만1천원
오늘의 스프, 오늘의 스페셜 전채요리, 메인요리 8천5백~3만4원
모듬요리 7천~2만5천원
디저트 5천원
식전주 4천5백~7천5백원
맥주 5천5백~9천원
음료 3천5백~7천5백원
잔와인 6천~9천5백원
와인 3만1천~24만원

* 귀띔 한마디 인근 부영주차장에 한 시간 무료 주차 가능하다. 10% 세금 붙는다. 샐러드와 메인요리 하나 정도 주문하면 2인이 먹기에 충분하다. 주말에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기에 좋은 집이다.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 하다> 연재에 들어가며

어찌하다보니 먹을거리와 관련된 책 두 권을 출간했다. “사진기자가 어떻게, 왜?” 라고 질문을 한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 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리와 사진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각가지 재료와 여러 가지 기자재가 필요한 것도 비슷하다. 한 품, 한 장이 나올 때마다 들여야 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 둘은 아주 창조적인 냄새가 난다. 한겨울 따스한 태양처럼 반짝이는 창조적 향기, 아마도 그 향기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듯하다. 지금부터 연재할 맛집들은 두 번째 책 <박미향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에 수록된 것들이다. 서문에도 적었지만 그저 독자들이 제발 맛나게 즐겼으면 한다. 때로 짜고, 때로 너무 달아도 그저 이런 곳에 이런 삶과 맛이 있구나 하면서 넓은 아량으로 웃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주인장들의 삶만큼 독자들의 시간들도 쫄깃하고 푸짐한 것이 되길 역시 소망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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