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개 쪼갠 얼음이 둥둥, 젓가락으로 고운 면발 휘감아 입안에 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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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⑧ 3대째 내려오는 남대문의 터줏대감 ‘부원냉면’
노릇노릇 녹두전과 ‘환상의 커플’…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맛
체인점 제안 많았지만 가족들 모두 손사레 ‘욕심 내지 말자’
둥글둥글 비행접시가 날아다닌다. 가제트 형사처럼 긴 팔을 쭉 뻗어 한 접시 잡는다. 이윽고 오드득 오드득 뜯어먹는다. 표면은 살짝 딱딱한 기운이 감돌고 노릇노릇 갈색으로 잘 익은 피부를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처럼 우아한 맛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온전히 녹두로만 만든 녹두전. 환상적인 맛에 가격까지 너무 싸서 먹으면서 실실 웃음이 난다.
낡은 벽과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넓게 열린 커다란 창, 그 너머로 한여름의 소란스런 열기가 전신줄을 타고 들어온다. 밤이 되어도 지구의 깊은 내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기운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주인장을 불러 조용히 냉면을 주문한다.
얼음 둥둥 떠다니는 작은 냉면 그릇은 순식간에 커다란 남극 대륙으로 변한다. 얼음을 잘게 쪼개고 젓가락으로 고운 면발을 휘감아 입 안에 쏙 넣는다. 남극을 먹는다. 얼음 사이로 살짝 살짝 보이는 달걀 조각은 펭귄을 닮았다. 그 펭귄도 입에 쏙 넣는다. 아~ 이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고개를 돌려 알루미늄 새시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왁자지껄 시끄럽다.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린다. 남대문의 저녁은 이렇게 싸고 맛있는 <부원식당>의 냉면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노릇노릇 잘 익은 피부를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부원냉면의 ‘녹두전’. 환상적인 맛에 가격까지 싸서 먹으면서도 실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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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다. 그 소박한 맛은 멀리 일본에까지 전해져 취재도 많이 해갔다. 이곳은 의자도 특이하다. 안주인이 개발한 의자는 앉으면 등받이가 허리까지만 오는데, 공간 활용성도 좋고 편안하다.
이 집에는 모든 것이 오래되었다. 오랜 역사, 오래된 손님들,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주인장과 함께 호흡하는 직원들, 세월만큼이나 남대문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대문 경기가 좋으면 이곳도 북적대고, 어려우면 이곳도 썰렁하다. 그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이 땅의 역사가 되었다. 한때 이곳은 노회찬 의원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창문 너머 사람 사는 소리가 냉면 면발을 더욱 쫄깃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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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이 쌓인 그릇이 냉면의 맛을 더 멋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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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위치 중구 명동
전화번호 02-753-772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메뉴 냉면류 5천원~5천5백원 / 닭무침 8천원 / 녹두전 2천5원 / 소주 3천원, 맥주 3천 5백원 * 강력추천 그동안 우아한 곳에서 데이트를 했었다면 이번엔 별미로 냉면과 녹두전을 먹어보라. 털털하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친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할아버지께 맛있는 냉면으로 효도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 귀뜸 한마디 녹두전은 꼭 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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