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04 14:37
수정 : 2007.07.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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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썼다는 현판이 보인다.(흥국사, 좌우대칭 건물)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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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장비 없이도 산을 잘 오르는 편이다. 나침반이 없어도 쉽사리 길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어려서부터, 땔감을 마련하거나 칡 등을 캐면서, 자연스레 길들여진 나만의 방식이 있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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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과 대웅보전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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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함부로 정상까지 오르지 않는다. 축구를 하다가 다친 무릎 때문이기도 하지만 10여 년 전 어느 사찰에서 만난 여인네의 충고도 작용했다. 그녀는 화성부근에 위치한 사찰 주지의 누님이었는데, 내 관상을 보고는, 신상에 해로우니 산을 오를 때 500m이상 오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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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흔적과 벽화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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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638m)만 하더라도 작은 산이라 할 수만은 없다. 서울시 노원구,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치어 있기 때문이다. 수락산은 동쪽인 별내면을 감싸고 한양을 등지고 있는 바위산이라, 조선시대에는 반역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나는 인근에 살기에 수십 차례 수락산을 갔다. 하지만 정작 정상까지 오른 것은 딱 한 번에 불과하다. 탁 트인 경치야 정상이 최고지만, 작은 봉우리라고 결코 우습게 여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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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장승이 특이하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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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람이 만든 대부분의 문화제나 볼거리는 500m 이하에 산재해 있다. 작은 봉우리라 할지라도, 위치를 잘 잡고 사전지식을 갖추고 입산할 경우, 대단한 자연의 풍광과 인간의 조화를 맛볼 수가 있다. 하기에 예로부터 산을 함부로 정복하려 들지 말라고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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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만든 잡상들이 앙증맞다.(오히려 잡귀가 꼬일 것 같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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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동남쪽 나지막한 봉우리에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남양주와 하남방면의 벌판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명당에 아담하지만 호사스럽게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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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하남시가 보인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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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원광스님이 세운 절을 선조가 왕이 되자, 타계한 아버지 덕흥군의 영혼을 위하여 중창한 사찰이다. 그림 그리는 스님들을 배출한 사찰답게 매우 화사하고, 왕족들이 드나들었기에 기품이 있다. 이곳에 인근에서 은둔하던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나, 재야생활을 하며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연구하던 박세당(朴世堂:1629~1703) 등 시인 묵객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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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을 그리는 학생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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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던 날에도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단청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 약사보살에게 기원을 드리면 아픈 이들에게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해질녘 사찰 옆 장승이 서 있는 곳이나, 만월보전 옆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호젓하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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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보전(기도발이 좋다고 소문난 곳)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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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도, 작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개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지만, 정작 그 개미들을 위한 날개 짓이라 생각한다. 몸통이 없으면 날개도 소용 없으니 말이다. 이처럼 산의 정상도 결국 작은 봉우리로 구성된 몸통이 있기에 빛나는 것이다. 하여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수많은 몸통을 밟아야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 정상에 올랐다고 함부로 기고만장 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산 정상을 함부로 오르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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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상(어디나 튀는 자들이 있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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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예인들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조직 결성식에서 "각하 어쩌구 저쩌구"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한다. 하필 그 모임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산악인이 참여했다고 하니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이해가 간다. 어려서부터 산을 밥 먹듯 타고 올랐으니, 그에게 산의 정상을 오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다. 정치참여도 그래서였을까? 하지만 내게는 아름답게 보이질 않는다. 예로부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이 있다. 그가 있을 곳은 썩은 정치판이 아니라 산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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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깃불이 그리운 계절이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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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가는 것이다. 등산하여 정복한다는 기쁨이 때로는 오만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레 절감한다.
* 위치 -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한북정맥 줄기는 수도 서울을 감싼다. 그 한북정맥 축석령구간(의정부-포천간 국도)에서 한 갈래가 한강 워커일 호텔 뒷산인 아차산 줄기까지 뻗어 나오는데, 그 줄기 들머리에 수락산이 위치한다. 그 산의 정상 남서쪽, 그러니까 4호선 당고개역에서 남양주시로 넘어가는 덕고개를 넘어 좌측에 있는 마을로 들어서 5~6분 걷다보면 흥국사가 나온다.
* 식사 - 주변에 음식점이 산재해 있어 어렵지 않다.
* 숙박 - 주변 음식점에서 민박을 청하거나, 상계동 방면 여관을 이용.
* 차량 - 당고개역에서 버스와 마을버스가 다님.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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