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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 등산로 입구.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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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400여년 전 한 사내도 헉헉대며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동동주 서 너 잔은 영락없이 쥐약 마신 쥐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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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등산로가 가파르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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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월명암(692년 부설거사 창건)을 오르기 전에, 내변산 입구 야외주점에 일행을 기다리게 할 심산으로 주거니 받거니 마신 술이 화근이었다.부안 변산에 위치한 월명암은 예로부터 경사지고 험한 곳에 위치하여,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대략 왕복 두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한 시간 반 만에 다녀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할뿐 아니라 무엇보다 숙소를, 다소 먼 전주에 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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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대웅전이 앞산 넘어 호남평야를 굽어보고 있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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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길을 다 올랐을 무렵 바위 틈새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왜 그리 고맙던지. 불현듯 사는 것도 다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 중에 반대편 남여치(변산 해수욕장 방면)에서 올라오던 부부를 만났는데, 산행을 시작한 후로 처음만난 사람이라고 했다. 스님들이야 산에서 기거하니 별도로 치더라도, 사실 오뉴월 땡볕에 가파른 산길을 뛰어 오른다는 것은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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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전나무에 새로지은 다용도실. (공양간, 손님방, 스님들 휴게실-요사채)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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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 전, 곡차(술)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진묵대사(1562~1633)도 아마 그렇게 서둘러 변산을 올랐으리라. 왜구들이 불태운 월명암을, 부설거사 일가족이 전설처럼 성불한 수도처를 재건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불법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왜란으로 상처받은 민족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기도 했다. 한편 그 시기에 '정여립 모반사건'이 발생했는데, 많은 의기있는 이들이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진묵도 같은 지역 젊은이로서, 음으로 양으로 인연을 맺었을 벗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그 뜻을 사모하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원불교나 증산도 창시자도 아마 이런 저런 사연으로 이곳을 찾았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가 곡차를 마시지 않고는 참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대단한 효자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벗들과 민족을 사랑했다는 추측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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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툭 터져있어 시원하고 남성스럽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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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은 쌍선봉 일대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아늑하고, 앞쪽 동편으로는 툭 터진 골짜기에 직소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내변산을 가로지르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천하 명당(山盡水廻-산이 멈춰서고, 물이 돌아 나간다.)이라고들 한다. 하여 월출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으며, 뒤편 낙조대에서는 지는 해를 감상하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400~500m 봉우리가 빙 둘러 진을 친 산골에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니 자연스레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봉우리와 어우러진 물안개를 월명암 터에서 바라 볼 적엔 가히 선경이라고 할 만 하겠다. 월명무애(月明霧靄)라 불리는 그 경치는 변산 8경에 속하는데, 어찌 창건자 부설이나 진묵이 그 자리를 놓쳤겠는가? 그 곳에 절이 들어선 이치는 참으로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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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보리수를 수확하고 있다. (염주의 재료)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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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라 출신 중이었던 부설은 사연이 있어 백제 땅 처자와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았는데, 일가 모두가 성불했다 하여 거사불교의 거목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 딸인 월명이 득도하고 수련했다하여 월명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나는 월명(맑은 달, 밝은 달)이 불교에서 추구하는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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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날아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매미가 가엾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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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은 4.3제주항쟁 진압을 반대해 군인들이 봉기한 여순항쟁(1948년)이 실패로 돌아가고, 잔인한 토벌(타지역 좌익혐의자에 대한 예비검속과 처형)이 시작된 이후, 남부군이 입산해 활동한 지역이었다. 월명암은 아마도 이 때 소위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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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그늘이 시원하다.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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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6.25 전쟁으로 사찰이 불탔다'라고 안내판에 나와 있을 경우, 대개 적 진지로 오인한 미군의 폭격이나, 빨치산의 근거지를 없앤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방화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 변산도 30여개에 이르는 사찰이 있어 가히 중들의 고장이라 할 만 했는데, 모두 불타고 3개 정도(서편 월명암, 동편 개암사, 남쪽 내소사)의 사찰이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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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고사포 해수욕장.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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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불타는 변산 고사포 해수욕장 한켠에, 혹 남사스러울까봐 막걸리 몇 통에 수박 두 통 쪼개 놓고, 호미자루 내동댕이 친 채로, 고단하게 물 맞는 할머니들 모습이 참으로 우리네를 많이도 닮았다.
서로 잘 할 수 있다고 아우성치며 나서는 요즘, 어디 진묵같은 스님있어 서민들 한이라도 풀어낼지 걱정이다. 힘되지만, 내달려 하산하는 발걸음이 묘하게도 가벼웠다.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많을 지라도 안개가 피어오르면 월명무애를 연출 하리라는 벅찬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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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산줄기 약도. ⓒ 한겨레 블로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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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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