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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31 17:09 수정 : 2005.03.31 17:09

3년 전부터 키워온 페르시안 고양이 은이를 안고 있는 고양이 매니아 수의사 김효은씨.



고고하게 느긋하게 야∼옹

“장 콕토는 자기는 개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양치기 고양이라든지, 사냥 고양이, 장님 길잡이 고양이, 서커스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다. 고양이는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고양이 예찬론자인 미셸 투르니에는 개가 일차적 동물이라면 고양이는 이차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주인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오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메시지만 받고, 자신이 오고 싶을 때 비로소 주인을 찾는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신의 모든 창조물 중, 끈의 노예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딱 한가지 있다. 그것은 고양이”라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고양이는 인간 옆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고양이만큼 애호가와 혐오가의 경계가 뚜렷하게 갈리는 동물도 없다. 역사 이래 고양이에 대해 남겨진 이야기들을 분류해보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앞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예술가들이 대다수인 반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군인이나 독재자가 많았다고 한다. 독재자 히틀러가 유명한 고양이 혐오론자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고양이는 특유의 매력과 신비로움으로 르네상스 이후 시인과 음악가, 화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준 반면, 게으름과 이기성, 강한 성적 에너지 같은 이유로 금욕적인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마녀’의 표상이 돼 오랫동안 화형대에 던져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는 ‘영물’, ‘요물’이라고 일컬어지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3~4년 사이 애완동물의 확산과 함께 그 수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현재 국내 애완동물 가운데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 전체 애완동물 가운데 60%가 고양이인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훨씬 적은 비중이지만 고양이에게 붙어다니던 편견은 고양이의 숫자 증가보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10년 가까이 고양이를 키우면서 2000년부터 고양이 동호회 사이트를 운영해온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의 저자인 박사씨는 “고양이 인기가 트렌드처럼 부각되는 것은 문제지만, 현대인의 삶이나 사고방식과 고양이의 특성 가운데 겹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전체의 명분이나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욕망이나 감성이 더 중요해지면서 독립성이 강하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고양이의 태도는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그에 따라 고양이에 대한 호감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마녀’, ‘영물’을 상징하던 고양이는 ‘고독한 도시인’의 표상으로 그 위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나른한 봄,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더라도 잠시 고양이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잠시만이라도 남 눈치보지 않고 느긋하게 자기만의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는 것, 고양이가 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1923년)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깔끔 새침 귀차니스트 어쩜, 내 이상형이잖아

그들은 왜 고양이를 찾을까



서울 신천동에 위치한 고양이 카페 ‘꼬냥이 놀이터’. 이십평이 채 안되는 좁은 공간에 8마리의 고양이들이 기거하지만 조용하기만 하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면 우르르 몰려오고 음료수가 도착하면 다시 우르르 달려오는 개 카페와 달리 고양이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가방 속을 열어젖히자 파란 눈의 샴 고양이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슬쩍 다가오지만 아는 체를 하니 쏙 빠져나간다. 아까부터 창 밖만 쳐다보던 고양이는 여전히 사색 중이고, 쿠션에 폭 빠져 있는 얼룩 고양이는 아무리 쓰다듬어도 ‘귀찮아’를 연발하는 눈빛으로 대꾸도 없다. “도대체 누가 놀아줄거야?”

제발 놀아주세요, 고양이님

지난해 이 카페를 연 김하진(27) 사장은 “튕기는 게 고양이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나의 주인”이라는 엄살도 서슴치 않는다. 그만큼 흔히 생각하는 애완물 이상의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게 애묘인들이 첫번째로 꼽는 고양이의 매력이다. 두살, 한살된 암수고양이를 키우는 직장인 권은주(29)씨는 평소에는 아무리 예뻐해주려고 해도 모른 척하던 고양이 애로와 뽀뽀가 가끔 다가 와서 툭 치거나 부비면 “새침한 애인이 가끔 살갑게 굴면 더 행복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헌신이나 애정이 아니라 적당한 긴장감을 지닌 유대관계를 나눈다는 점에서 고양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훌륭한 동거인이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도시의 속도를 배반하는 도시인

몇년 새 늘어나기 시작한 고양이 사랑에는 ‘게으름에 대한 예찬’, ‘느리게 살기의 미덕’ 등 새롭게 떠오른 가치관의 확산과도 무관하지 않다. 좁은 실내에서 키우기 편해 가장 도시적인 애완동물로 꼽히면서도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하는 고양이의 습성은 도시적 삶의 속도와 정반대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내 고양이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스노우 캣’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퍼져나갔던 ‘귀차니즘’의 대표주자다. 고양이 예찬 산문인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이명석·박사 지음)는 성취의 강박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먹고 싶은 건 빨리 먹고, 놀고 싶을 땐 빨리 놀고, 그리고 가급적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삶”을 사는 고양이에 대한 도시인들의 동경을 잘 보여준다.

한번 늘어나면 멈출 수 없어

나홀로 작업을 하는 예술인들 가운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만화가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양아라는 필명으로 만화 월간지 <윙크>에 ‘천국의 고양이들’을 연재하는 이정(29)씨는 아예 함께 사는 고양이들의 생활을 의인화된 시트콤 형식으로 그려 사랑받고 있는 작가다. “본래 고양이 만화를 연재할 계획은 없었는데 2003년 실었던 단편의 반응이 좋아서 시작하게 됐다”는 이씨는 4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에는 다섯마리를 키우다가 한마리가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다. 이씨처럼 단촐하게 한마리로 시작했다가 두마리, 네마리, 여섯마리로 순식간에 숫자가 늘어나는 게 애묘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 숫자가 늘어난다고 더 북적이거나 지저분해지는 것도 아닌데다가 “고양이 성격이 그야말로 백묘백색이라 갈수록 얘도 키우고 싶고, 쟤도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애묘인은 애묘인을 한눈에 알아본다?

애묘인의 특징이라면,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양이를 키우는 인구의 절반 이상은 혼자 사는 여성이란 점과 유달리 인터넷 동아리 문화가 강하다는 것. 국내 애묘문화의 확산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분양과 키우기의 모든 정보들이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오간다. 가장 오래됐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호회 가운데 하나인 ‘고사모’( www.freechal.com/cats )의 대표인 박사(35)씨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아가 강하고 감성적이거나 탐미주의 같은, 바꿔 말하면 ‘고양이스러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만나면 금방 밀착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두달에 한번씩 홍대앞의 클럽을 빌려 고양이 파티를 연다. 고양이 동호회의 가장 큰 활동은 입양이다. ‘고양이 장사’를 막기 위해 최대한 꼼꼼하게 분양자를 선택하고, 분양 뒤에도 서로 정보교류를 하며 인간적으로도 친해지는 게 동호회원들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국내 유일 고양이 보건소장 차지우씨

“입양은 신중히, 관리는 꼼꼼히



서울 신당동에는 버려진 고양이만을 전문적으로 보호하는 국내 유일의 고양이 보건소가 있다. 보건소장은 수의사 차지우(42) 원장. 1층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그는 지난해 5월 건물 지하에 60평 규모의 고양이보건소를 개소했다. “미국에서 수의사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뒤 우리나라의 애완동물 문화가 왜곡돼 있다는 걸 깨닫고 외국의 보호소를 본뜬 보건소를 계획하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유기견·유기묘가 너무 많다는 거죠. 넓지 않은 실내에서 개를 관리하기는 힘들고 고양이는 한번 버려지면 입양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고양이보건소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현재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거나 보호받고 있는 고양이는 40여 마리로 이 가운데 일부는 치료와 중성화 수술을 받은 뒤 방사되고, 보건소 생활에 적응한 일부는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건강해진 뒤 보건소 생활에 꽤 익숙해진 고양이 10여 마리가 얌전하게 사람 손길도 타고 제법 애교도 부리는 모습을 보면 길가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에 가져왔던 불쾌함이나 두려움이 스르륵 사라진다. 이 고양이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지역 복지관과 연계해 시작한 PAL(People & Animal Learning, 인간과 동물의 상호 교화 과정) 프로그램에도 기여하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관계맺기에 힘겨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일정 기간 보건소를 방문해 고양이를 돌보고 함께 놀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도록 돕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90년대 이후 아동·청소년 심리치료에 널리 이용돼 왔다. “길고양이를 보면 돌을 던지며 괴롭히던 아이들이 다친 고양이를 데려와서 치료해달라고 하거나 처음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데려가 키우고 싶다고 할 때 마음이 뿌듯해진다”고 차 원장은 말한다.

앞으로 동물 보호단체나 구청 등과 연계해 유기묘의 보호에서 치료, 입양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확산시킬 구상을 하고 있는 차 원장은 의외로 고양이 입양을 적극적으로 권하기 보다 “신중하고 또 신중할 것”을 강조했다. “5~6년 뒤에 내 생활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따져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고양이를 입양해야 합니다. 또 가족들의 반대가 심한데 자신의 뜻으로만 입양했다가는 십중팔구 결국 버리게 됩니다. 입양할 고양이의 부모의 건강부터 예방접종 상태, 몸무게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건 필수고, 경제적인 문제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김은형 기자


고양이 기르기 도전 꼭 알아야 할 7가지

1. 가게에서 고르기보다는 가정분양이 좋다=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동호회 등을 통한 가정분양을 절대적으로 권한다. 일반 애완동물 가게에서 데려올 경우 가격도 비싼 편인데다가 건강 체크를 꼼꼼하게 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 초보자는 6주 이상 어미 젖을 먹고 배변, 몸단장을 직접 할 수 있는 고양이를 입양하는 게 좋다.

2. 함께 지낼 가족 중 기관지가 약하거나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지 미리 체크한다=가족 중에 기관지가 약하거나 비염 등 코질환에 자주 걸리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고양이 입양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 비단 털 뿐 아니라 피부조직이나 침, 오줌, 피 등에 포함된 특정 단백질 성분이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3. 아이를 낳거나 이사를 계획할 경우 고양이 입양시기를 늦춘다=생활력은 강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게 고양이의 묘한 특성이다. 갑자기 새로운 식구가 등장한다거나 생활 공간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험은 고양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니 변화가 없는 상태를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을 때 입양하는 게 좋다.

4. 고양이가 깨끗하다고 혼자 모든 걸 처리할 수는 없다=고양이는 깔끔하다고 해서 손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분명 냄새도 덜 나고 자주 씻길 필요는 없지만 털빠짐은 개 못지 않거나 장모종 고양이는 그보다 훨씬 심하다. 고양이털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으려면 매일 집안을 쓸고 닦는 부지런함은 필수다.

5. 고양이와 친해지려면 눈길을 피하라=고양이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고양이가 환경에 적응하고 주인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친해지기 위해 억지로 끌어안는다든가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특히나 아직 친해지지 않은 고양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건 위협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

6. 실외사육은 고양이에게 위험할 수 있다=밖에서 살거나 떠도는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기껏해야 3년, 집안에서 지내며 주인의 보호를 받는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13년이 넘는다. 가출했을 경우 영역싸움에 밀려 집에 돌아오고 싶어도 다른 동네로 쫓겨가는 등의 사고가 허다하니 혼자서 집밖을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7. 교배와 출산에 대한 각별한 의지가 없다면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게 좋다=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은 애묘인 사이에서도 여러번 논란이 됐지만 오래 고양이를 키운 사람들일수록 중성화 수술을 지지하는 편이다. 지나치게 좋은 번식력과 발정 때마다 동네 전체를 시끄럽게 하는 몸부림,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증세로 고양이와 키우는 이 모두가 지치기 때문이다. 보통 생후 6개월 전후에 시작하는 첫발정 직전에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게 좋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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