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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3 21:01 수정 : 2008.01.03 21:01

연극 ‘그녀의 방’

연극 ‘그녀의 방’

어렸을 땐 할머니와 같이 방을 썼다. 대가족이 함께 살았던 예전엔 대부분 그랬다.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된 것은 언니들이 대학공부를 하려고 집을 떠났던 사춘기 시절부터였고, 아마 그 때부터 간섭받지 않는 자유와 혼자 있는 고독을 조금씩 배운 것 같다. 아무도 말 걸지 않는 내 방으로부터.

그리하여 이제 오피스텔의 촘촘한 불빛만 보고도 문득 한숨 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로맹가리의 소설 <벽>처럼 불빛은 저렇게 다정하지만 그 사이를 가로막은 벽 때문에, 자기만의 방에 갇힌 누군가 울거나 죽어가고 있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극장을 떠나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떼아뜨르노리의 <그녀의 방>(1월13일까지 두산갤러리)은 이처럼 자기만의 공간에 갇힌 고독한 현대인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은 원룸에 살면서 외부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그녀의 자살 장면에서 시작하여, 지난 일년간의 모습을 스냅 사진 펼치듯 파편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을 외국으로 보내고 혼자가 된 여름, 홈쇼핑을 하고 뱃살을 빼려고 고심하는 가을, 연애를 꿈꾸다 실패하는 겨울, 생일이 되었건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봄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는 마지막 여름.

작품을 쓰고 연출한 이항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고독한 ‘그녀’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방’이라는 것을 잘 간파하고 있고, 미술 작품을 진열하듯 갤러리의 여기 저기에 그녀의 방을 흩트려 놓았다. 그녀의 방에 초청이라도 받은 듯 주최 측이 나누어준 슬리퍼를 신고 갤러리에 들어간 관객은 자신에게도 익숙한 풍경인 옷걸이에 걸린 옷들, 티브이, 욕실과 화장도구, 냉장고와 선풍기가 일상이 박탈된 채 갤러리에 배치된 것을 낯설게 지켜보게 된다. 그리곤 차츰 그것이 고독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지켜보면서 일상의 소도구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낯설게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 재공연하는 <그녀의 방>은 이번에도 ‘드라마 전시’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낮에는 갤러리에서 관련 전시를 하고 밤에는 공연을 보여주었다. 초연과 변화가 있다면 네 명의 분신으로 배우가 늘어난 점, 영상을 비롯해서 사진 작품이나 설치미술을 좀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장르의 교류를 보다 효과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초연 때부터의 문제점이지만 이 작품은 일상을 부각하고 고독한 여성의 자살을 다룬다는 점에서 독일 작품 <리퀘스트 콘서트>와 흡사한 지점이 있고, 주인공이 너무 발랄해서 그녀의 고독이 사무칠 정도로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대라는 중심이 존재하는 극장 공간을 떠나 사방이 중심인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공연(앙토냉 아르토의 꿈!), 연극이라는 중심을 떠나 영상과 춤과 설치미술이 느슨하게 연대하는 공연의 형식은 여전히 산뜻하고 흡인력이 있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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