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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2 15:51 수정 : 2008.04.02 15:51

금수산쉼터 노래연습장 입구에 내건 금수산 자연생태감시단 팻말 앞에 선 박창호씨.

[길에서 만난 사람] 제천 금수산 지킴이 박창호씨
포장길 턱에 발 ‘동동’…겨우 넘어도 교통사고 일쑤
“이러니 되겄어? 길 닦을 때, 통로 맨들어라 말이야”

제천 금수산 자락 용담폭포로 가기 위해 들어선 상천리 백운동마을. 마을 들머리에서 한 어르신을 만나 용담폭포 가는 길을 물었다.

“저어기 저 산 골짜기에 바위 보이슈? 그 위에 솥단지겉은 바위 보이슈? 그 밑이유.” 그가 손과 곁눈질로 마을 뒷산을 가리켰다. 그리곤 눈길을 돌려 길섶을 두리번거린다. 뭔가를 찾는 모습이다. 뭘 찾으시냐고 물으니 “깨구리”라고 한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그가 새로 포장된 아스팔트길 옆 시멘트 턱을 가리켰다.

“딴 게 읎어. 길 밑에 하수구처럼 세멘트 관 몇개 묻으면 되는 거여”

“지금이 깨구리 산란긴디말여, 이 턱어리가 문제여. 알 까러 암놈이 숫놈을 등에 업구설랑 개울에서 논으루 겨올라가다가는 이 턱어리 때미래 못넘어가거든. 놈들을 집어다가 저 논에 풀어줘야혀.”

새로 포장된 아스팔트길 때문에 이동로가 막혔다는 것이다. 관심을 보이며 사진기를 들고 길섶을 살피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열흘 전쯤엔 며칠새 백마리가 넘게 논으루 넹겨줬다니깐. 오늘은 아직 안 보이는구만서두.” 턱을 겨우 넘어간 놈들도 차에 치어 희생되기 일쑤라고 한다.


그가 “사진 찍으러 댕기는 양반이구만” 하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일루 와보슈. 내 보여줄 게 있지.” 마을 이야기라도 들어볼 심산으로 뒤를 따라 갔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금수산쉼터 노래연습장’. 그는 노래방 주인이었다. 용담폭포 사진이 멋들어지게 박힌 노래방 사장 명함을 건넨 뒤 박창호(63)씨가 보여준 건 수 십장의 개구리 사진이었다. 업고 업힌 채 시멘트 턱 밑에 모여든 개구리떼, 찻길에서 차에 치어 나뒹구는 모습, 개구리를 바구니에 담아 논으로 옮기는 장면들이다.

“이러니 되겄어? 도로 포장헐 당시에, 통로 맨들어라 말이야, 야생동물 통로를 내야 헌다, 하고 주장을 숱해 했는데두 안들어 먹어요. 통로란 건 딴 게 읎어. 그저 길 밑에다 하수구처럼 세멘트 관 몇개 묻으면 되는 거여.”

금수산 환경지킴이 박창호씨가 상천리 뒷산에 올라 마을쪽 가은산 줄기를 가리키고 있다.

마을 주민 16명 단원으로 야생돌물 불법 포획 감시

박씨가 관청사람 들으라는 듯이 또박또박 바른 소리 하며 언성을 높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금수산지부 지부장인 동시에 금수산자연생태감시단 단원이었던 것이다.

그가 사명감과 보람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딴 게 읎지. 야생동물 불법포획에다 나무랑 돌꺼정 다 감시허니까.” 마을 주민 16명이 단원으로 참가해 국립공원인 금수산 지킴이 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금수산 일대는 월악산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불법포획하다 걸리면? 국물두 읎지. 에, 첫째가 방사여. 즉시 잡았던 자리루 갖구가서 풀어주게 하지. 둘째는 계몽이지. 알아듣게시리 자알 얘기해서 인저 못잡게 계몽하는 거여. 그래두 가져가겠다구 우긴다? 위에 보고허고 법으루다 처리하면 되야.”

요즘은 주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 불법포획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문제는 허가받은 총기를 들고 국립공원 지역에 들어와 밀렵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 밀렵꾼 떴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사진기 들구 차 끌구 출동하지. 개도 한 마리 데리구설랑 은폐·엄폐하며 쫓어가는데, 단양쪽은 수렵허가구역이 있거든. 그리루다 내빼는 거야. 그러면 증거두 없구, 별수 없어. 그런 난점두 있지.”

서울생활 35년 마무리하고 낙향해 ‘보람 있는 일로 봉사’

자연생태 보호활동은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서울서 3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4년 전 퇴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씨는 “노년을 고향에서 보람 있는 일로 봉사하며 살 마음으로 자연생태 보호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박씨가 노래방 창가에 놓인, 웃통 벗고 근육을 뽐내고 있는 남성 사진을 가리켰다. “저게 나여. 내 이래봬두 서울 살 때 ‘미스터 서울대회’에서 상도 받은 사람이여.”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 힘도 세고 산도 잘 타니 자연생태 보호활동을 하기에 적임자’가 아니겠냐는 자랑이다.

“그나저나 찻길에서 희생되는 깨구리들이 인자 읎어야 할 텐데.”

박씨는, 앞으로 더 포장될 나머지 900m 마을길 공사 때는 “시청에다 주장해, 반다시 야생동물 통로를 맨들어낼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금수산 자락 백운동 골짜기에선 해를 거듭할수록 토종 개구리들 울음소리가 요란해질 게 틀림없어 보인다.

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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