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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삼겹살. 두툼한 고깃살이 불판 위에서 구워질 때면 ‘식탐’이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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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메뉴토크] 서울 반포 ‘옹달샘’ 생삼겹
아버지 뜻 이어 처녀가장으로 27년 전 밥집 ‘맛샘’
돼지껍데기는 맛봬기…연기 안 나는 건 ‘영업비밀’
돼지만큼 사람들의 멸시와 사랑을 한꺼번에 받는 짐승도 없을 듯하다.
우리들의 일상 대화에서 ‘돼지 같은…’이란 말은 상대방을 멸시하거나 욕할 때 쓰는 수식어이다. 생활이 나태하거나, 돈이나 먹을 것 따위에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우리는 ‘돼지’를 빗댄다. 하지만 먹을거리 동네로 오면 돼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감탄 일색으로 확 달라진다.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요리 재료 ‘왕 중 왕’
중국 당나라 시인 소동파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던 것이 바로 돼지고기다.
프랑스 저술가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는 <음식사변>이라는 책에서 돼지를 “수많은 요리 재료 중의 왕…하나도 버릴 게 없는 식재료”라고 극찬했다. 우리에게도 돼지의 각종 부위를 굽거나 삶고 쪄서 만든 숱한 요리들이 있지만, 서양에서도 돼지는 인기 있는 식재료이다. 프로슈토(돼지 다리 살로 만든 이탈리아 햄), 블랙푸딩(돼지고기와 선지, 보리, 허브와 향신료 등으로 만든 소시지) 등 나라별로, 취향별로 다양한 요리들이 서양인들의 입맛을 돋구워 왔다.
서울 반포동 상가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는 ‘옹달샘’도 돼지고기 요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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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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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집만이 특별히 개발한 돼지고기 요리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집의 주메뉴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삼겹살이다. 메뉴 이름은 ‘생삼겹살 구이’. 요즘 시중에 흔하디 흔한 ‘와인숙성’ ‘된장숙성’ 따위의 수식어도 붙지 않은 그야말로 ‘생’ 메뉴다.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뼈를 떼어낸 복부의 넓고 납작한 부위를 말한다. 살과 비계가 세 겹처럼 보여 삼겹살이라고 불린다. 전 세계 삼겹살을 한국인이 다 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우리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위다. 2006년 농림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8.11㎏인데 그 중에서 삼겹살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한국인의 삼겹살 선호도는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중간 크기 돼지 한 마리에서 보통 12~14㎏이 나온다고 한다.
고기 어느 곳에서 들여오는지도 영업비밀 “우리네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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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야채와 고춧가루로 버무린 후 볶아낸 돼지껍데기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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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옹달샘’을 찾았다. 쟁반에 얹혀 나온 삼겹살은 우선 두꺼운 살점이 눈에 띄었다. 두께가 1센티미터는 족히 될 법하다. 숯불판 위에 누워 있는 살점 위에 흥건히 고이는 육즙이 군침을 제법 돌게 만든다. 살점이 두꺼운 탓에 샘처럼 계속 올라오는 육즙이 식욕을 한층 자극한다. 불판에 얹자마자 뒤집기 바쁜 얇은 삼겹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식탐’이 저절로 생겨나는 장면이다. 적당히 붉은 살덩이를 감싸고 있는 하얀 비계는 솜 베개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감촉으로 다가온다.
노릇노릇 엷은 캐러멜색이 입혀진 삼겹살을 먹는 방법은 세 가지. 우선 가늘고 섬세하게 버무려진 파무침을 얹어먹는 방법이 있다. 고기의 씹는 맛을 온전히 느끼려면 간장 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 여느 삼겹살 집처럼 된장에 상추를 싸서 먹어도 좋다.
특이한 것은 불판 위에 연통을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연기가 새어나오지 않는 점이다. 연기가 식탁 위로 올라오기 전에 불판 아래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고기 냄새가 옷에 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할 법하다. 연기가 나지 않은 까닭을 묻자 주인 김연숙(58)씨는 식탁 구조 때문이라며 더 이상 말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해서 한 번 더 물어봤다.
“식탁에 굽는 용기가 달라요.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영업비밀이예요.” 그러고선 입을 닫는다.
대신 김씨는 고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 집 고기는 수입돼지고기가 아닙니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우리네 돼지를 내놓지요.” 어느 곳에서 들여오는지 재차 물었으나, 이것 역시 영업비밀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생삼겹살 구이’를 주문하면 10x20㎝ 크기의 돼지껍데기가 맛배기로 곁들여 나오는데 이것이 또한 별미다. 쫀득한 육질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낸다. 단, 껍데기는 삼겹살보다 굽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불판에 먼저 올려놓는 것이 좋다.
각종 야채와 돼지껍데기를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에 무쳐 볶아낸 ‘돼지껍데기 볶음’도 있는데, 맛이 매콤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가족과 함께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먹기 좋다. 양이 비교적 많이 나온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집안 건사하느라 마흔한 살에 결혼
옹달샘 주인 김씨는 27년 전 음식장사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가 맨 처음 취급한 메뉴는 1천 원짜리 밥(백반)이었다. 맛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식사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3년부터 생삼겹살을 주 메뉴로 바꿨다고 한다.
-1981년에 처음 밥집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그 전까지는 명동에서 부모님을 도와 옷 도매장사를 했어요. 아버지는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이신데, 자녀 둘을 북한에 남겨둔 채 다른 둘만 데리고 내려온 실향민이지요. 명동에서 터를 잡으시면서 4남매를 더 낳았어요. 그 때 참 살기 어려웠지요. 아버님이 먹는 걸 좋아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소원이 밥집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지를 제가 이은 셈이지요.
밥집을 시작할 때 그는 서른 살 처녀였다. 그 때부터 동생들 공부시키고 집안 건사하느라 그는 십년이 넘도록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흔한 살 돼서야 수예점을 하는 총각을 만나 가정을 이뤘다. 지금은 박세리 같은 골프 선수의 꿈을 가진 예쁜 딸도 있다.
-밥집에서 삼겹살구이 집으로 바꾼 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밥만 먹고 살자’는 생각으로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찾다보니 백반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값싼 백반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라구요. 대신 삼겹살 같은 고기를 더 찾아요. 세월 따라 변하는 손님들 식성에 맞춰 메뉴도 바꾼 거죠.
-올 때마다 가게가 점점 커지네요. 비결이 뭐죠?
=정성이죠. 내 남편,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요리는 요리사가 합니다. 어떤 요리사가 오든 ‘내 입맛’을 통과해야 메뉴로 정해집니다. 긴 세월동안 변하지 않는 제 입맛이 비결이지요.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요리를 많이 참고했어요. 김치말이도 찾는 이가 많은데 아버님이 술 드신 날 다음날에는 꼭 드시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집 차림표에도 넣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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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부엌에 있는 양은냄비.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식 양은냄비로 끓인 찌개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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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처녀가장으로서 억척스럽게 ‘옹달샘’을 키웠다. 옹달샘이 말 그대로 가족들의 옹달샘이 되어 이제는 형제들 모두 각자 자기 삶을 잘 가꾸고 있단다. 지금 그는 10명이 넘는 종업원의 생활까지 책임지는 ‘사장님’이다.
“옹달샘은 맑잖아요. 맑고 깨끗한 음식이 있는 옹달샘을 이어갈 겁니다.”
생삼겸살·돼지갈비 1인분 9천원, 된장찌개 등 5천~8천원, 철판두루치기, 두부김치, 돼지껍데기볶음, 김치말이국수 등 3천~1만8천원. (02)533-0602.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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