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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3 16:59 수정 : 2005.01.13 16:59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마을회관. 할아버지들이 둘러앉아 짚과 나무를 이용해 갖가지 생활용품과 전통놀이도구를 만들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참 그리웠소, 구수한 고향의 추억

눈다운 눈 한번 뒤집어쓰지 못하고 겨울이 깊어간다. 찬바람만 몰아치는 메마른 겨울이다. 산도 들도 나무도 벌거숭이다. 그러나 찬바람에 묻힌 산골짜기를 잘 들여다 보면, 이웃이 함께 모여 훈훈하게 겨울을 나고 있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겨울은 농삿일의 휴식기이자, 새 봄 새 농사를 앞두고 생활도구들을 마련하는 요긴한 시간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추위가 닥치면 이웃끼리 모여앉아 새끼 꼬고, 짚신 삼고, 가마니 짜고, 지게를 만들며 겨울을 났다. 이런 전통을 아직도 지켜가는 마을이 일부 남아 있어, 고향의 추억에 목마른 여행객의 발길을 잡아 끈다.

옛날 우리 농촌마을의 겨울이 어떻게 깊어갔는지 알려면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마을회관 문을 열어보면 된다. 가마니·소쿠리·짚신·멍석·삼태기·다래키…. 볏짚 향기 은은한 이름들, 조상의 손때 묻고 발때 묻어 더 정겨운 이름들이 호명되는 공간이다.

손재간 좋은 할아버지들 들러않아
짚신·설피 끼고 지게 멍석 삼태기…
도란도란 퍼지는 옛이야기와 함께
훈훈한 겨울밤은 깊어만 가고…

짚단과 나무토막들이 널린 널찍한 방바닥에는 10여명의 할아버지들이 편한 대로 둘러앉아 짚신을 삼고, 설피(눈길용 짚신)와 설피지팡이를 만들고, 방패연 살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벽 한쪽엔 벌써 지게·소쿠리·다래키·맷방석·삼태기·키·팽이 등 생산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이미 겨울이 깊었음을 말해 준다.

장평리 노인회장 이종호(73)씨가 소나무 조각을 다듬어 얼레를 만들면서 말했다. “늙은이덜 허는 일이 화투 치고 술 마시는 것이 더 있었어? 시방은 을매나 좋아. 남 보기 좋구, 용돈두 생기구.”

‘손을 자주 놀려 치매도 예방하고, 마을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친목도 다지자는 차원’에서 10여년 전 노인회에서 일을 벌였다. 5년 전 겨울부터는 20여명이 회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각자 가장 자신있는 물건 몇가지씩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 그동안 만든 전통 생활용품들의 쓰임새를 설명하고 있는 장평리 노인회장 이종호씨.



대부분 70~80대인 이 ‘수공예 기술자’들이 옛 손재간을 되살려 만들어내는 전통 생활·놀이용품은 20여가지에 이른다. 물동이를 일 때 머리를 보호하던 똬리, 짚으로 만든 약초배낭인 홀치기, 짚신과 짚신 모양을 내는 신골, 신골 두드리던 신골방망이, 달걀 담아두던 짚달걀집, 소 주둥이에 씌우던 멍에, 먼길 갈 때 소에게 신기던 쇠신, 시루떡 찔 때 바닥에 깔던 시루밑방석까지, 전통 농가의 필수 생활용품들이다. 요즘엔 군청의 행사용 물건 주문도 들어오고, 지나는 길에 구경 하다 사들고 가는 관광객도 생겼다.

노인네들이어서 쉽게, 대충대충 만들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건이 비록 상점의 제품처럼 정교하고 매끄럽지는 않지만 한올 한올 정성이 깃든, 투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자연산이다. 짚 한 단을 고를 때도 가을걷이 직후 집들을 돌며 미리 뉘집 짚이 좋은가, 길이·빛깔 등 품질을 봐뒀다가 가져다 쓴다.

손재간들도 만만찮은 수준이다. 마을 이름 장평리가 진드루(긴 들판)에서 나왔다. 마을 앞 수입천 직연폭포의 소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설명하던 노인회장이 문득 한 할아버지를 가리킨다. “저 냥반. 저 저, 손놀림 좀 보시우.” 묵묵히 설피를 만들고 있는 김희선(75)씨. 과연, 짚으로 새끼를 꼬아 엮고 묶고 다듬는 솜씨가 거침없고 날래다. “저 양반, 설피도 설피지만, 쇠신과 시루밑방석 맹그는 데선 따라갈 자가 읍는 일인자여.”

회관 문이 열리더니, 벙거지를 눌러쓴 키 작은 할아버지가 얼굴을 들이민다. 그 때 멋진 방패연을 만들어 놓고 쉬던 할아버지가 외쳤다. “오, 저 양반! 방패연 만들기 일인자가 오네 그랴.” 왜 ‘일인자’인지 설명이 시작된다. “이 양반이 맹기는 연은 날아오르는 것 자체부터가 달라. 여기 비하면 내 연은 장난이야, 장난.” 가만히 듣던 ‘일인자’ 서원식(79)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니가 휑한 입을 열었다. “장난이지.”

▲ 정성들여 방패연을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
설명을 들으니 과연 장난이 아니다. “내 연은 구름까정 올라가는 거여. 구름 속을 들락날락 하지.” 요약하면 그의 연은 “거의 한지 한장만한 대형 방패연인데, 줄 길이가 3500m에 이르고, 다른 사람 눈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이 날며, 실을 되감을 땐 몸을 지탱하기조차 힘든,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연”이다. 팔순 나이에도 직접 만든 연을 들고 연 날리기대회마다 빠짐없이 나가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이렇듯 ‘일인자’ 또는 ‘이·삼인자’들이 열심으로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실제 생활용품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옛날 방식으로 여러 사람이 만드는 것이어서 규격이 따로 없고, 생긴 것도 다르고, 정해진 값도 없다.

“아, 아깨 파출소장이 오디만 지게를 만지작 만지작 하드니, 을마냐래대. 기양 소쿠리째 가져가라랬지. 그랬디만 삼만원 주데. 품값 받는 거지 뭐.” 이런 식인데, 값도 부르지 않고 그냥 주는 대로 받아 모아서는 노인회 공공기금으로 쓴다.

이 맑고 따뜻한 할아버지들은 11월부터 3월말까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회관에 모여 작업을 한다. 5시엔 “소 여물 먹이러들” 집으로 가봐야 한다.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찾아오면,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게 배려해 준다. 회원들 점심과 간식은 가장 나이 적은 할아버지 김준관(64·총무)씨가 차린다. 라면도 끓이고 커피도 탄다. 방문객들에게 “어여 한 젓갈 들구 가셔” 하는 건 물론이다. 양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양구 여행정보=수도권에서 경춘국도를 타고 춘천 거쳐 양구읍으로 간다. 양구 방산면 장평리로 곧바로 가려면, 47번 국도를 타고 포천 일동·이동을 거쳐 광덕산 고개 넘어 사창리~화천~해산터널~평화의댐~오천터널을 지나 가도 된다. 남부지역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갈 경우 홍천나들목에서 나가 44번 국도 타고 인제 쪽으로 가다 신남에서 양구읍 쪽으로 좌회전해도 된다. 방산면 소재지에 호박을 섞어 빵을 만드는 ‘산호박 진빵’(033-481-5245)이 있다. 밀가루반죽에 호박 육질을 갈아넣고, 팥에도 섞어넣어 맛이 독특하다. 30개 1만원. 뽕잎찐빵과 김치찐빵도 만든다. 양구읍 고대리 샘터막국수(033-482-7428)에선 뽕잎막국수를 낸다. 터미널 옆골목의 우리집식당(033-481-5890), 광치아줌마식당(033-482-5500)은 가정식 백반을 잘 내는 집들이다. 읍내 터미널 부근에 여관들이 여러개 있다. 부근 상리에 사우나탕이 낀 세종호텔(033-481-2825)이 있다. 평일 3만원, 주말 5만원. 방산면 소재지에도 여관이 2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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