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있는 ‘쿠킹스튜디오’에서 조리연구가 최숙희씨가 유산슬과 춘권 만드는 법을 강의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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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매장서 요리 강좌·분위별 가구배치
뉴욕·비버리힐즈 스타일로 삶을 꾸미려는데… 백화점이 ‘삶의 스타일’을 팔고 있다. 식품 매장에선 요리 강좌를 벌이고, 가구를 스타일과 분위기에 맞춰 모아서 배치하는 식이다.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하는 소비 심리를 겨냥한 은근한 ‘유혹의 기술’이다. 상품 하나만 달랑 챙기지 말고 어울리는 것까지 사가라고 에둘러 바람을 넣는다. 지난 2일 서울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식품매장 한 쪽에 마련된 ‘쿠킹스튜디오’에서 조리연구가 최숙희씨가 유산슬과 춘권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 백화점에서 미리 공짜로 돌린 조그만 요리책을 보며 최씨의 설명을 들었다. 요리가 끝나면 시식까지 한다. 백화점은 이미 식품 판매대에 유산슬과 춘권을 만들 재료를 ‘쿠킹스튜디오’ 캐릭터까지 찍어 배치해 놓았지만 상품을 선전하는 사람은 없다. 현대백화점은 10개 점포에서 매일 오후 3~5시 이런 강좌를 연다. 지난 3월부터는 이 강좌에서 석달 동안 다룰 100가지 요리를 담은 <오늘은 뭘 먹지>라는 책을 만들어 1년에 네 차례 1만7천부씩 뿌리고 있다. 천호점 식품매장에서는 4월부터 푸드스타일리스트가 계절과 날씨에 맞는 요리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공짜로 조언해주고 있다. 이밖에 전단지도 행사 중심에서 요리법과 재료 정보 소개로 바꿨다. 김무기 상품본부 식품팀장은 “쿠킹스튜디오를 운영하려면 그만큼 판매대를 줄여야 하지만 고정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상품 진열도 상품별에서 스타일별로 묶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현대백화점 안 ‘까사모르’ 매장에선 ‘미국 비버리힐즈 저택 스타일’, ‘덴마크식 원목가구 스타일’ 등 주제를 잡고 여기에 맞는 인테리어 상품을 모아뒀다. ‘아르드메종’ 매장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를 뒀다. 이런 스타일별 진열 바람은 뉴코아 아울렛(강남점, 야탑점)과 백화점(평촌점, 동수원점)에 있는 ‘홈에버’ 매장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매장엔 뉴욕에 사는 가상의 주인공 4명의 집이 꾸며져 있다. 거실 2개, 침실, 식당, 서재로 이뤄진 ‘트레이시네’는 단순하고 모던한 물건들로 채우고 전체적인 색깔은 고급스러운 갈색이 돌게 만들었다. ‘캐서린의 집’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아이보리 색깔을 내고 퀼트 제품으로 가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밖에 고전적인 ‘에밀리 집’, 파스텔톤 침실과 공부방으로 이뤄진 12살 소녀 ‘크리스틴의 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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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상의 집엔 핸드크림 등 작은 소품들까지 놓여 있어 진짜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어 트레이시의 집엔 히야신스 화분(9천원)과 튤립액자(3만9천원)가 인테리어 소품으로 들어가 있다. 소비자는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드는 ‘집’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집들 옆으로는 비슷한 스타일의 매장이 연결돼 있다. 집마다 인테리어 컨설턴트가 있어 고객에게 여러가지 제안도 한다. 컨설턴트 강대훈(31)씨는 “석달마다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소품은 수시로 바꾼다”며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견적도 뽑고 때로는 직접 방문해 조언한다”고 말했다. 이곳 물건들은 미국이나 유럽,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제품들로 소파 45만원, 침구세트 19만원, 책상 71만원선이다. 결혼을 한달 앞둔 김주연(29)씨는 “미국 등 외국 가구 판매 인터넷 사이트에선 이런 식으로 스타일을 제안하며 물건을 판다”며 “어떻게 꾸미면 될지 아이디어를 한눈에 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여러 상표 상품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값 비교는 어려워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보고 대충 가격대를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갤러리아와 롯데백화점은 명품관을 중심으로 스타일을 조언한다. 두 백화점은 가장 부자 고객이 쓸 수 있는 ‘멤버스 클럽’엔 세 명의 쇼핑도우미로 구성된 ‘퍼스널 쇼퍼’를 뒀다. 이들은 손님의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의상, 장신구 등을 구비해 두거나 소비자에게 어울릴 법한 스타일을 알려준다. 소비자가 예약을 하면 그가 좋아할 만한 물품들을 먼저 골라 멤버스 클럽 안에 마련된 특별한 옷장에 넣어둔다. 이들은 또 개인 비서 구실도 한다. 롯데백화점 쪽은 “함께 영화 보기 등 손님이 여가 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퍼스널 쇼퍼가 배려한다”고 밝혔다. 이런 방법을 먼저 도입한 갤러리아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와 계약을 맺고 소비자에게 비슷한 서비스를 한다. 가구, 식기, 인테리어 용품도 모던, 클래식 등 테마별로 분류했다. 이밖에 지난 3월부터 대구 갤러리아 동백점 ‘영플라자’는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옷들을 ‘뉴욕 스타일’ 등 스타일별로 구분해 모았다. 롯데백화점은 주말 전단지를 ‘봄나들이 갈 때 가족 패션’ 등 스타일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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