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서울재즈아카데미 학생들이 합주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탁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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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10년…졸업생들 곳곳서 활약
미국 버클리 음대와도 학점 교류
‘대중음악교육’ 산실 자리매김 도·미·솔. 익숙하게 도열한 음들이 안정감 넘치는 화음을 만들어낸다. 상식적인 소리가 따분해진 당신, 미나 솔에서 슬쩍 반음을 내려본다. 그러자 질서 위로 미끄러져 내린 음들이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당신은 방금 빗겨감이 끌어낸 광활한 상상력의 세계, 재즈의 묘미를 엿봤다. 불협화음과 엇박자, 즉흥연주의 부정형성이 낸 균열은 음악의 폭과 깊이를 끊임없이 넓힌다. 하지만 매혹적인 상대음의 세계는 교과서에서 배운 절대 음감에 익숙한 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서울재즈아카데미는 한국에선 처음으로 이 세계로 가는 길잡이가 된 교육기관이다. 95년 문을 연 이 곳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상대음의 매력을 10년동안 전파해왔다. 재즈를 막연히 동경했던 이들은 그곳에서 자유 속의 질서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재즈의 연인이 됐다. 서울재즈아카데미가 세워지기 전, 많은 음악인들이 머리를 싸매고 독학하거나 선배를 찾아다니며 재즈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 ‘해변으로 가요’ 등을 부른 ‘키보이스’의 기타리스트 출신 김홍탁(62)씨도 같은 목마름을 경험했다. 그는 1995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손 잡고 자신뿐 아니라 후배 음악인들의 목을 축여줄 교육 마당을 다졌다. 재즈아카데미는 재즈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재즈를 바탕으로 록, 팝 등 상대음의 질서에 기초한 대중음악 전반을 아우른다. 대중음악을 배우려면 개인교습소를 전전해야 했던 시절, 서울재즈아카데미는 수준별로 초급반, 정규반, 마스터클래스를 두고, 작·편곡, 기타·베이스 등 악기 연주부터 레코딩과 뮤직비즈니스까지 골고루 커리큘럼을 갖췄다. 그건 기성 음악계에 대한 도발이었고, 이 도발은 제대로 터져 첫해 모집에서부터 기대를 훨씬 웃도는 650여명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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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가 연주자들의 즉흥적 교감으로 이뤄지듯 이곳의 수업은 학생과 함께 숨쉰다. 즐기고 써먹을 수 있게 가르친다. “12년 넘게 배워봤자 학생들이 취미로 연주하고 노래하지도 못한다면 그게 교육이냐”라고 김홍탁 원장은 코웃음 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정규과정부터는 재즈 뿐만 아니라 펑크 등 록과 팝도 동료들과 합주한다. 김 원장은 “재즈 이론은 기본이지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서울재즈아카데미는 이런 방식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폭과 깊이를 확장했다. ‘비엠케이’로 활동하는 김현정씨 등 졸업생 4천여명이 한국의 대중음악 각 분야를 기름지게 하고 있다. 미국의 알아주는 버클리 음대와 학점을 교류할 만큼 인정도 받았다. 재즈아카데미의 활성화에 힘입어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곳이 늘었고, 지금은 36개 대학에서 매년 1500여명의 졸업생이 나오고 있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씨는 “서울재즈아카데미는 재즈라는 이름을 내건 첫 교육기관으로, 재즈 화성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실전에도 강한 음악인들을 배출해 대중가요의 편곡과 작곡 등 전반적인 수준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전국 프랜차이즈와 맞춤형 방문교육 등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상상력은 재즈를 닮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이론-실천 철저 ‘무장’ ‘너’ 만의 색깔 가져봐 재즈아카데미 어떻게 가르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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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재즈아카데미가 한국 음악계에서 의미가 있는 건 단지 재즈를 내건 최초의 대중음악 전문 교육기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곳은 학생들이 창의력을 기르도록 무한한 자유를 주되, 실전과 이론으로 무장하도록 만만치 않게 ‘쪼는’ 비법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도 이 ‘쪼임’을 꽤 즐긴다고 한다. “제가 만든 노래를 밤 늦도록 동료들이 연주하고 녹음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말하자면 쑥스러운데 거창하게 인생을 노래한 ‘바람 따라’라는 곡이었어요. 올드팝 느낌이 나는 노래였죠.” 작·편곡반 정규과정을 아홉달째 다니고 있는 신수현(22)씨가 꼽은 추억이다. 수준별 초중급 나눠 교육
스튜디오 일년 내내 개방
아무때나 연주 녹음 가능
학생끼리 자유롭게 뭉쳐
펑크에서 블루스까지
여러 장르 맛볼수 있어 서울재즈아카데미엔 고급스러운 스튜디오가 4곳 있다. 신씨 같은 학생들이 쓰라고 일년에 한가위와 설날 딱 이틀 빼고 24시간 열어둔다. 컴퓨터편집기 등 모든 시설이 그렇다. 얽매이지 않고 편안할 때 가장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료들끼리 언제든 지지고 볶아 작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펴놓은 셈이다. 그래서 졸업 때가 되면 뮤직비즈니스, 작·편곡, 연주과에서 뭉쳐 만든 창작곡이 수십곡씩 시디로 나온다고 한다. “어깨 넘어 드럼을 5년 배우다가 답답해서 재즈아카데미에 입학한” 고태우(23)씨는 “협주 수업이 좋다”고 말했다. “록은 에너지를 폭발하고 재즈는 조절하는 재미가 있어요. 저는 체력이 딸려서 록은 잘 못하지만 가리지 않고 다 해봐요.” 이곳 정규 과정의 고갱이는 협주다.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뭉쳐 펑크에서 블루스까지 여러 장르를 두루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사와 연주조교가 꼼꼼하게 점검해주고 학생들과 감상을 나눈다. 기타리스트 한상원씨, 퓨전재즈 밴드 ‘천체망원경’의 베이시스트 오대원씨 등 쟁쟁한 강사진이 버티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보컬, 기타 등 다 합쳐야 정원이 50명 정도인 대학의 실용음악과에선 이런 식으로 취향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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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있는 음악인 키우고 싶다” 김홍탁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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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62)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을 한 직원은 이렇게 ‘씹는다’. “권위적이지 않아 좋은데 솔직히 일을 많이 추진해 따라가기 숨찰 때가 많아요.” 그가 올해 계획한 것만 해도 ‘진짜’ 대중음악상 만들기, 전국으로 분점 넓히기 등 줄줄이 사탕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서울재즈아카데미는 김 원장의 오랜 꿈의 결정체다. 1960~70년대 ‘해변으로 가요’ 등 인기곡을 낸 록그룹 ‘키보이스’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인천에 주둔중인 미군에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을 배웠다.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해 삼고초려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캑터스’라는 그룹을 만들어 미8군 무대에 선 그는 ‘키보이스’, ‘히파이브’ 등을 거치면서 ‘일류’라는 부추김을 들었다. “텅 빈 것 같더라고요. 역량은 부족한데 그렇게들 말하니까.” “코드 몇 개로 만드는 노래가 갑갑했다”는 그는 30살이 넘어 재즈에 빠졌다. “선배 좇아 다니며 배웠는데 그때부터 서울재즈아카데미 같은 전문적인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유신 시절이 답답하고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도 난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제가 삼류더군요. 기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색깔이 없어서였죠.” 김 원장은 그곳에서 “박사나 백만장자가 된 건 아니지만 제일 중요한 음악인의 자존심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 자존심을 지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서고 싶지 않은 무대에 서지 않으려고 그는 꽃, 보석 등 안 해본 장사가 없다고 한다. 1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김 원장은 반짝 스타가 아니라 자존감 넘치는 음악인을 키우기 위한 준비 작업의 폭을 조금씩 넓혀갔다. 음반제작뿐만 아니라 청소년 록페스티벌을 열고 서울여대 강단에도 섰다. 처음 서울재즈아카데미의 바탕을 닦을 땐 ‘문무’를 겸비한 강사 구하기도 힘들었다. 방음 시설 다 해놓으면 건물주인이 세를 덜컥 올리기도 했다. 그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 겁이 덜컹 났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밀어붙이는 힘은 대중음악과 재즈의 ‘힘’에 대한 낙관이다. “6·25 때는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온갖 슬픈 노래가 다 나왔죠. 대중음악만큼 현실을 대변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 대중음악인들의 기운을 북돋워주고 싶어 내년 말까지 가수, 연주자 등 영역별로 기자단 100명과 네티즌 등이 뽑아 상을 주는 ‘대중음악상’을 만들려고 한다. 돈이 모이면 ‘명예의 전당’도 대중음악인들에게 선사하고 싶단다. 김소민 기자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중고교에서도 재즈 교육을” 김광현 월간 MMJAZZ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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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음악 교육 ‘붐’
30여 대학서 강의
‘쌈짱’ 중필(영화 <품행제로>)은 ‘퀸카’ 민희를 좇아 클래식 기타 학원을 간다. 뜻밖에 도발적인 민희나 얼굴부터가 비표준형인 중필한텐 이 학원이 웬지 어울려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별 다른 곳이 없었다. 아니면 바로 롤러장이다. 1995년 서울재즈아카데미가 문을 열었을 때 650명의 ‘중필’과 ‘민희’가 떼로 몰렸다. 대략 3천명당 한 곳 꼴로 넘쳐나는 피아노 학원, 기타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건 클래식 아니면 겉기식 대중 음악이었다. 비틀즈, 밥 딜런은 물론 너바나와 서태지의 코드까지 제대로 짚어보고 싶어했던 이들에게 서울재즈아카데미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서울재즈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전 국내에서 재즈를 가르치던 대학교는 두 곳에 불과했다. 서울예술대학 과 성심여자대학. 지금은 확 달라졌다. 재즈를 포함해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4년제 대학만도 올해 15곳. 2년제 대학은 20곳이 넘는다. 곳곳에서 서울재즈아카데미 출신이 활약한다. 이 학교가 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인 동시에, 욕망을 감성과 지성으로 키워준 거름인 셈이다. 대중음악 교육의 가치는 무엇일까. 숭실대 등지에서 베이스, 실용음악 리듬 등을 가르치는 오대원(34)씨는 “대중음악 교육은 자신이 즐겨 듣는 걸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면서 “수동적인 감상의 수준을 넘어 연주자와 청중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도록 하고 이런 예술의 생활화로 감성을 일깨워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오씨는 이어 “일반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라틴 재즈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재즈에 관한 기본 화성학 책조차 일본판을 조잡하게 번역해놓은 게 전부였었다”면서 “하는 수 없이 영국 유학길을 택해야 했다”고 말했다. 초등대안학교에서까지 폭넓게 재즈를 가르치는 2005년은 마냥 지구가 공전해서 다다른 시간이 아닌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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