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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5 16:31 수정 : 2005.05.25 16:31

패션이란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차이를 즐기고 과시하는 거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청바지 한 장에 20만~30만원이나 하는 비싼 프리미엄 진을 사 입고, 또 누군가는 이런 사람들을 비웃으며 20년 전 리나 에드윈 같은 빈티지 청바지를 어렵게 구해 입는다. 재기발랄한 신세대 아티스트 ㅎ씨(그는 언론에 쉽게 노출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는 빈티지 청바지 마니아다. 그는 주로 미국 네바다 주에 사는 철공소 직원이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빨지 않고 입었을 것 같은 청바지들만 좋아한다. 그걸 더 ‘구제스럽게’ 만들기 위해 때로 이 잘 나가는 미술 작가는 주유소에 가서 종이컵에 폐유를 얻어오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러서 원하는 부위를 모래로 비비기도 한다. 청바지는 오래될수록 녹색빛이 흐른다고 하는데, 그 녹색을 만들기 위해서 가끔은 잔디도 이용한다고 했다.

웃을 일이 아니다. 가장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사랑받던 청바지가 요즘은 터무니없이 비싸졌다. 특히 오래된 청바지일수록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는다. 1880년대 광부가 입던 진으로 추정되는 리바이스 진은 무려 5천만원에 낙찰됐는데, 리바이스가 똑같이 재현한 그 복각판(일명 ‘빈티지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네바다 진)도 무려 45만원이나 한다. 500벌 한정 판매였던 관계로 지금은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프리미엄도 엄청나다. 그래서 돈 없는 빈티지 마니아는 광장시장 같은 곳에서 싼값에 구한 구제 청바지를 찢고 문지르고 뜯어내고 다시 붙여서 청바지 한 장에 자기만의 역사와 노고를 담는다. ㅎ씨는 말했다. “백화점에 걸려있는 새 옷은 왠지 심심하고 딱딱하게 느껴져요. 저는 이렇게 생활의 때가 묻어 있는 것들이 좋아요. 그래서 일부러 바지는 절대로 빨지도 않아요. 정 더러우면 섬유전용 탈취제를 뿌린 뒤 햇볕 아래서 말립니다. 뭐랄까, 오래된 진이나 구두나 가방은 세월이 흐를수록 왠지 저 자신과 밀착된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구제를 좋아하기로는 ‘키치미술의 대부’ 최정화씨도 마찬가지인데, 최씨와 ㅎ씨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최씨는 그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의도적으로 싸고 촌스럽고 요란 번쩍한 걸 좋아한다. 그런 옷들은 서울 황학동 벼룩 시장에만 가도 1천원, 2천원에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새 옷을 살 이유가 없다. 하지만 ㅎ은 일본의 아오야마 숍에서 ‘노숙자 필’이 나는 오래된 빈티지 진을 제법 큰 돈을 주고 사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산 청바지를 스티치가 들어간 슬림한 재킷이나 단정한 하얀 셔츠와 함께 입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볼 때 패션은 아트입니다. 강약 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을 드러내되,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되죠.”

최씨와 ㅎ씨는 일상 속에서 기적처럼 예술을 끌어낸다. 하지만 최씨는 예술을 일상만큼이나 만만하게 보고, ㅎ씨는 예술도 일상도 패션도 결코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며칠 전에 베니스 비엔날레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 두 작가가 어떤 차이를 보여줄지 혼자 남몰래 기대하고 있다.

김경 월간지 <바자> 피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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