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17 19:03
수정 : 2005.08.17 21:15
|
영화속 의상과 ‘이미지 메이킹’
|
서은영의트렌드와놀기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얼굴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에 작은 티아라(왕관), 검정 드레스와 팔꿈치 위까지 덮는 긴 장갑. 오드리 햅번은 이런 복장으로 밤새 파티를 즐기다 뉴욕 5번가 티파니 매장 앞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이 장면은 너무도 유명해져서 단번에 오드리 햅번을 불멸의 패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애니홀>에서 다이안 키튼은 남자 셔츠와 중절모, 그리고 검정색 베스트와 헐렁한 바지를 입어 패션지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러브 어페어>에서 아네트 베닝이 입은 하얀색 리넨 원피스는 한동안 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세대를 거쳐,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화 속 ‘의상’, 영화도 그 의상과 더불어 오래도록 관객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쉰다. 어디 그 뿐인가. 전 세계 여성들을 흥분시켰던 미국 시트콤 <섹스 & 더 시티>는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의상으로 패션 대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할 정도였다. 또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의상은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매출에도 영향을 끼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 인물의 성격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가 만큼이나 ‘의상’도 그 캐릭터를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 어떤 색상을 좋아하는지, 단추를 몇개 잠갔는지에 따라 보수적인지, 융통성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친절한 금자씨>를 봐도 알 수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나 이영애의 연기변신도 화제지만, 금자씨의 세련된 의상은 영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상식적으로 금자가 갖고 있는 배경은 어둡고, 우울하다. 하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강한 욕망과 여자로서의 강한 욕구가 그녀의 의상과 분장에서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하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알란 미클리의 선글라스, 뱀피 소재의 복고적인 구두, 작은 무늬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그녀를 더욱 가녀려 보이게 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준다. 70년대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는 감독의 요구에 맞게 그녀의 의상은 복고적이면서도 매우 세련됐다.
필자 또한 영화 의상을 하거나 포스터 작업을 할 때 여러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일관된 사고와 선입견을 갖은 채 다른 스타일을 제시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하는 스텝들과 신경전을 벌일 때 그렇다. 가령 여의사의 복장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 미묘한 문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가 있다. 화려하거나 혹은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여의사는, 그의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의사들한테는 목선이 답답한 셔츠에 무릎을 가리는 스커트나 바지를 입은 약간은 진부한 착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확실하게 인물을 나타내는 착장이 더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새로움도 다른 성격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제 한국 영화도 ‘이미지 메이킹’에 중점을 둬야할 때가 왔다. 감독, 배우, 연기, 시나리오 이 모든 것을 기본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은영/스타일리스트 사진/ 모호필름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