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26 20:05
수정 : 2014.02.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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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의 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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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바이칼호와 올혼섬 여행
“시베리아 추위 별것 아니네!” 바이칼호 올혼 섬 북쪽 끝 호보이 곶 얼음 위에서 점심을 먹던 이정식 푸르메재단 대표가 호언했다. 은박지에 싼 삶은 감자와 바이칼에서만 나는 청어를 닮은 생선 ‘오물’, 흑빵과 치즈, 그리고 갈색 차 한 잔이 그날 점심이었다. 흑빵은 얼어서 그런지 이빨이 아플 정도로 딱딱했고, 얼음 위에 잠시 내려놓은 찻잔 속의 차는 금방 식어버렸다. 덜덜 떨면서 먹기가 뭣했던지 자동차 지저분해진다며 차 문 열어주기를 꺼리는 운전수를 겁박(?)해 모두들 자동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함께 간 사진 동호회원들과 끝까지 바깥에서 버티는 기개를 과시하며 이 대표가 내뱉은 호언장담이 바로 “별것 아니네”였다.
시간이 갈수록 시베리아 추위는 점점 별것 아닌 게 아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사이를 몇시간씩 이동할 때 탄 현대자동차 관광버스에선 바깥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창문이 허옇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덮은 얼음막을 긁기도 하고 녹여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버스 안의 36명이 내쉬는 숨은 달리면서 바깥 표면온도가 더 떨어진 창 안쪽 면에 빨려가듯 들러붙어 그대로 얼어버렸다. 시베리아에선 눈도 육각형 결정체들이 뭉치지 않고 가루처럼 내렸다.
바이칼 동쪽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공중화장실들은 반들거리는 누런 얼음산 속에 조그만 분화구가 뚫린 형상들을 하고 있었다. 배설물이 몸 바깥을 나가는 순간 얼어붙기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 덕에 악취도 얼어붙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철제 문손잡이들은 맨손으로 쥐면 쩍쩍 들러붙었다. 기차에서 잠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손가락이 느끼는 건 추위가 아니라 통증이었다. 체르니솁스키 동상을 찍을 때도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간 듯 견디기 어려워 서둘러 기차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객차 차장과 식당차 직원들은 드나들 때 문단속하라고 윽박질렀다.
어딜 가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단조로운 러시아, 아니 시베리아 패션은 러시아 사람들 패션감각이 무뎌서가 아니라 자연조건 탓이라는 게 자명했다. “겨울 시베리아에서 모자 없으면 죽음”이라고 이르쿠츠크 거주 박대일 비케이투어 대표는 말했다. 좀 비싸 보이는 모피 제품들(자연산인지 인조모피인지는 모르겠다)이긴 했지만 이르쿠츠크 여인들이 하나같이 걸치고 있던 멋들어진 외투와 모자와 긴 부츠 차림도 사진으로 보던 러시아 패션 전형을 벗어나지 않았다.
1812년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 60만 대군과 1941년 히틀러의 나치스 대군을 물리친 것도, 정말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 싸한 시베리아 동장군(추위) 아니었던가.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패배한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유럽에 갔던 러시아 청년 귀족들이 받은 문화충격과 그로 인한 차르체제 비판에서 촉발된 것이었으니, 러시아 역사 자체가 러시아 겨울 추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겠다.
기차와 자동차를 잽싸게 오르내리며 잠시 동안 외기를 쐬는 정도로 사나흘쯤 갈 때까지는 “시베리아 추위 별것 아니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뭉글뭉글 고개를 쳐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데서 살아가지? 시베리아 인구밀도가 왜 그렇게 낮겠는가. 우리 조상들이 바이칼에서 ‘따뜻한 남쪽’을 향해 이동해 간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 지독한 추위야말로 시베리아 최대의 관광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베리아 아니고 어디서 그런 추위를 경험해 본단 말인가!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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