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④ 바르콜의 슬픈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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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B402’ 표지를 단 채 늪에 빠져 질식한 듯 진흙을 잔뜩 묻히고 있는 양 한 마리. 녀석은 일어섰다 고꾸라지기를 되풀이하며 초원의 비극을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바르콜의 초원이 말라붙으면서 곳곳엔 채 치우지도 못한 양의 사체가 눈에 띄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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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사막 북편 톈산(天山) 남록을 따라 파미르의 초원으로 들어갈 때 언제나 열차를 탄다. 태양을 쫓아 달리다 쓰러진 중국 고대신화 속 거인 과보(夸父)처럼 철마는 오직 서쪽으로 달리며 여러 세계를 건너는 의식을 거행한다. 철마에서 내려 산을 올라 닿은 파미르는 새집, 오랫동안 살 곳이다. 그런데도 독수리 날갯짓 소리를 내면서 굴로 쫓아가 놀리면 끅끅 경고하는, ‘몽골쥐’라 불리는 타르박까지 정이 들어 주위의 것이 편안해졌을 때, 동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파미르에 있을 때조차 사라지지 않는, 켜켜이 쌓인 쇠똥 층처럼 굳어서 떨쳐낼 수 없는 동쪽 신장(新疆) 초원의 기억 때문이다. 카라준 초원에서 독수리 사냥을 하자고 약속했던 아저씨는 다시 뵙기 힘들겠지만 그보다 더 동쪽은 문제가 없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날 신장의 초원은 외국인 연구자를 반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쫓겨날 때의 환멸은 잠깐이요 재회를 염원하는 그리움은 길다. ‘관리 몇이 원하지 않는 것이지 초원이 나를 버린 것은 아니니까.’ 열차는 이번에는 서에서 동으로 세계를 건너는 의식을 챙기며 달려 9월11일 새벽에 하미(哈密)에 도착했다.
꼭두새벽, 역을 나올 때부터 공안(경찰)은 행선지를 꼬치꼬치 캐물어 댔지만 초원으로 떠나면 그뿐이리. 북으로 동톈산 끄트머리 고개에 오르면 소담스러운 만년설을 인 연봉이 동서로 이어지고, 그 봉우리들 사이에 바르콜(巴里坤, 중국명 바리쿤)이 있다. 투르크어로 ‘콜’은 호수라는 뜻이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을 품고 아직 깜깜한 새벽 공사판 인부 몇몇과 일행이 되어 차를 빌려 봉우리를 넘었다.
하지만 그날은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초원 입구 대로엔 죽은 양 대여섯 마리가! 우룸치(우루무치)로 통하는 직선 대로를 달리는 화물차가 양들의 몸통을 무자비하게 바수어 아스팔트가 온통 피 칠갑이었다. 오늘날 초원에서 네발 달린 것과 바퀴 달린 것의 적대적인 긴장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그날처럼 쇠와 뼈의 강도 차이를 실감한 적은 드물었다. 유리처럼 부서져 흩어진 하얀 뼛조각을 치우는 이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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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물이 고인 웅덩이엔 고기떼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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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은 소와 양이 사는 신장
바르콜은 동톈산 분지에 자리잡은 호반의 목장. 한때 양과 조랑말의 천국이었다. 포류국(浦類國)이 있었다는 까마득한 한대(漢代)나 서몽골 호쇼트부(部)의 천막이 호수를 빙 둘렀던 명대(明代), 혹은 한때 4만 마리 군마를 공급했다던 청대(淸代)의 사정은 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불과 10년 전 봄볕 좋은 때 들렀을 때도 여전히 호시절이었다. 버스 정류장만 덩그러니 있는 현 소재지에서 몇 발짝 걸으면 초원이었다. 긴 겨울 끝에 얼음도 덜 풀린 축축한 대지 위로 녹색의 가는 풀이 빽빽이 나고 그 위를 소들이 걷고 있었다. 초봄 초원에서 할 일이란 카자흐 꼬마 목동과 호반을 빈들거리다 돌아다니는 일뿐이었다.
이 초원 저 초원이 다르듯 여기저기 바람이 그 사연이 다 다르고, 시절이 바뀌니 그때와 지금의 바람이 다르다. 초원의 사연은 풀의 이야기다. 풀은 매양 바람에 눌려 눕지만 바람의 깃에 제 사연을 실어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망무제의 초원에서 누런 것은 땅이요 파릇한 것은 뭉뚱그려 풀이라 하겠지만, 멈추고 바닥에 엎드리면 가늘지만 분명한 풀포기의 환희와 비명이 민들레 씨앗을 타고 흩어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날 초원에서 풀의 사연을 듣기도 전에 나는 지쳐갔다. 산을 넘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허리로 길게 난 도로를 달려 벌판을 내려다볼 때부터 코끝으로 들어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초원의 바람이 아니었다. 과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일까? 바람은 여전히 풀밭의 사연을 실어 왔겠지만 질주하는 화물차의 경적과 산 중턱을 차지하고 동서로 길을 따라 길게 배열된 도시가 뿜어내는 난방·취사용 석탄의 매연 때문에 풀의 사연과 냄새는 귀와 코끝에 닿을 수 없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초원은 짐승과 갈등하고 타협해왔지만, 지금 짐승 중의 왕 인간과의 힘겨운 싸움 와중에는 버거운 한숨만 토하고 있다. 그 사이 초원의 온갖 생물들은 떠날 수 없는 곳에서 각자 삶을 찾아 몸부림을 친다.
오늘날 초원에서 네발 달린 것과
바퀴 달린 것의 적대적인 긴장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그날처럼 쇠와 뼈의 강도 차이를
실감한 적은 드물었다
풀밭으로 들어가 느릿느릿 초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야 별이 보이듯 깊이 숙여야 초원이 보인다. 나는 하염없이 소똥 말똥을 뒤집으며 곤충의 수를 세고 쇠똥구리를 찾았다. 파미르의 고산초원에는 각다귀며 쉬파리니 하는 온갖 파리 종류가 많지 않았다. 파리 유충은 짐승의 똥을 먹고 자라지만, 성체가 알(혹은 유충)을 똥에 슬기도 전에 마른바람이 똥의 표면을 말리고 그 똥 껍데기 아래서 쇠똥구리와 새까만 똥먹이 곤충이 분해 공장을 차리기 때문이다. 한 무더기당 수백 수천 마리가 붙어 밤낮으로 헤집고 경단으로 만들어 땅 밑으로 챙겨 가고, 적절하게 꾸덕꾸덕한 것은 사람이 가져가 말리니 초원은 언제나 깨끗하다. 구수하게 분해되는 똥 냄새와 풀의 향이 섞이면, 어릴 적 갓 수확한 보리밭을 지날 때의 향이 난다. 똥이 이렇게 빨리 사라지는 것은 파리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풀 뜯는 짐승에게는 그만한 다행이 없다. 다른 짐승도 그렇지만 특히 민감한 말은 쉬파리가 오면 먹지 않고 고개를 저어 대느라 마르고 예민해진다.
바르콜은 파리의 천국이었다. 최근 백년 만에 인구가 열 배로 늘어나고, 고기를 대는 짐승도 비례해서 늘었으니 풀밭은 다져지고 풀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지금 신장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소와 양이 산다.(※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978년과 2015년 사이 인구는 1200만명에서 2400만명으로, 소는 200만 마리에서 400만 마리로, 양은 2천만 마리에서 4천만 마리로 늘었다. 인간과 먹이용 가축의 수는 거의 꼭같은 비율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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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콜의 무늬만 남은 초원에 죽은 채 버려진 소 한 마리.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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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주사제와 가축 약품 광고 뒤덮어
언뜻 보기에도 무자비한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풀이 설 땅이 점점 줄어들자 양과 소는 조금이라도 부드러운 풀을 찾아 점점 더 습한 땅으로 모여들고, 습지에 쌓인 젖은 똥 무덤에 파리떼가 꼬인다. 민감한 쇠똥구리와 똥먹이 벌레는 비료와 살충제로 키운 농작물 그루터기와 사료까지 곁들여 먹은 짐승이 싸는 질척한 똥으로 몰려들지 않고 덕분에 파리만 신이 났다. 땅이 다져지고 풀이 성길수록 쇠똥구리도 줄어든다. 그 사이 파리떼는 초원을 갈라 친 철조망 사이에서 반(半)사육 상태에 놓인 짐승들의 피를 빤다. 그렇게 바르콜은 무늬만 초원인 거대한 축사가 되어 있었다.
문득 몇 달 전 유채꽃 만발한 자오쑤(昭蘇)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 댈 때 몽골인 운전사 바투르가 한 말이 실감났다. “백만 무(畝) 유채밭, 겉보기엔 예쁘죠? 한번 들어와봐요. 꽃이 노랗지 않죠? 매년 유채만 키우느라 농약 범벅을 했지만. 이걸 또 겨울에 가축이 먹어요.” 사료와 건초 덕에 여전히 겨울을 난 가축이 풀려나오면 여름 초원의 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끝 모르는 고기 수요와 사유화 개혁은 가축 수를 늘렸지만 목장의 총면적은 오히려 줄어든 채 작은 단위로 쪼개져 ‘축사화’되고, 인간이 쓰는 물이 늘어날수록 짐승을 위한 물은 줄어든다. 산 중턱에서 물을 빨아대는 도시와 경작지로 물을 퍼올리는 관정 앞에서 꼭대기만 남은 톈산의 빙하가 애처로웠다. 바르콜은 더 이상 옛날의 파란 호수가 아니라 질척한 소택지였다.
농작물 건초를 먹는 시간이 길어지고 면적당 마릿수가 늘어나 동물들의 면역력에 문제가 생기자, 목장 주변에는 기다렸다는 듯 호르몬 주사제와 가축 약품 광고가 따라붙는다. 역학조사는 당국이 독점하고 있으니, 살충제와 온갖 농약으로 키운 농작물의 그루터기를 먹은 짐승들의 몸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목동들은 초원이 마르고 있다고 아우성치지만, 원인을 밝힐 책임마저 온전히 무력한 그들의 몫이다. 한나절 걸음에 양의 시체 셋을 또 찾았다. 파미르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 초원이 심상치 않다. 그래도 ‘B402’ 그놈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이 모든 부조리를 뒤로한 채 어차피 오래 있지 못하는 초원을 미련 없이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예 그놈을 만났다.
녀석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
물길을 따라 걷던 중 정확히 2시30분, 갓 죽은 듯 보이는 양 한 마리가 또 길을 막고 있었다. 늪에 빠져 질식한 듯 진흙을 잔뜩 묻히고 있는 그놈 몸으로 아직 파리도 꼬이지 않았다. ‘언제 죽었을까.’ 허한 마음에 한참 놈을 내려다보다 화들짝 놀랐다. 눈을 감은 채 놈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귀에 B402 표지를 단 채. 내 가슴도 벌떡벌떡 뛰었다. 목덜미를 살며시 누르니 녀석은 후다닥 목을 쳐들더니 또 쓰러졌다. ‘고요히 삶의 저편으로 가던 녀석을 괜스레 다시 부른 걸까.’ 후회하는 사이 놈은 무슨 힘을 얻었는지 다시 목을 일으키고 뒷다리를 세우더니 앞무릎은 꿇은 채 무릎걸음으로 몇 발짝 걷는다. 녀석의 눈에서 번뜩이는 의지를 보았다. 어쩌면 나의 의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그렇게 먼지 사이를 무릎으로 기어가다 긴 풀포기 앞에서 한 번 엎어졌다. 나도 포기할 찰나 녀석이 다시 고개를 들더니 숫제 풀을 뜯는다. ‘어른들 말씀에 먹는 놈은 죽지 않는다 했지.’ 나의 희망도 다시 피어났다. 녀석은 앞다리를 세우려다 다시 엎어진다. 잠시 뒷다리를 접고 되새김질한다…. 고개만 들고 힘차게 뜯는다…. 뒷다리를 세우고 똥을 싼다. ‘싸는 놈도 죽지 않으리.’ 그러나 녀석은 기어이 똥 위로 주저앉는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의 마지막을 목격하는 것처럼 버거운 일도 없으리라. ‘걸어라, 제발. 한 번 더 의지를 보여줘.’ 놈이 다시 주저앉자 나는 황급히 버려진 병을 들고 물가로 가 물을 길어 왔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 다시 땅에 코를 대고 앞다리를 꿇은 채 이제 들리지는 않는 목덜미를 땅에 바짝 붙인 채 짧은 풀을 뜯는다. 멀리서 무리가 나타나자 녀석은 버둥거리다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녀석은 달리듯 멀어져 삶을 무릎걸음으로 쫓아갔다.
그때 검은 말을 탄 청년과 무표정한 중년 목동이 양떼와 함께 도착했다. 통성명도 않은 채 건조한 대화가 오갔다.
풀을 건네도 거부한다
스스로 풀을 뜯는
초원의 양임을 과시하는 것일까?
녀석이 다시 무릎을 세우다
기어이 푹 꺾일 때 나도 고개를 돌렸다
“당신 양인가?”
“그렇다. 혼자서 무섭지 않나?”
“뭐가 무섭나? 양이, 말이, 사람이?”
그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늪에 빠져 질식한 건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날 수 있을까?”
“원래 아팠다. 못 일어난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전염병인지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풀은 작년보다 좋나?”
그는 대답 대신 다시 고개를 가로젓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고 얼마 후 건너편 동영지로 갈 거라고 했다. 우리는 쓰러진 양을 한참 바라보며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인사 없이 말을 끌고 가 물을 먹이고 쓰러진 녀석을 뒤에 두고 양떼를 몰고 떠났다. 그도 나도 환대하고 받을 여유가 없었다.
다시 양에게 다가가 물을 건네자 고개를 휙 돌린다. 풀을 건네도 거부한다. 스스로 풀을 뜯는 초원의 양임을 과시하는 것일까? 녀석이 다시 무릎을 세우다 기어이 푹 꺾일 때 나도 고개를 돌렸다. 턱밑으로 더운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떤 이는 이곳이 돌궐(투르크)의 발상지라고 한다. 그곳이 마르고 있다. 먼지바람이 부는 초원에 우두커니 서서 귀 기울였지만 풀의 노래는커녕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넘어진 소를 또 한 마리 보았다. 이리저리 쳐진 철조망을 피하며 가없이 큰 초원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은 허기지도록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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