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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30 18:59 수정 : 2009.04.30 18:59

이야기 속 돈 이야기 6화

과속, 속도위반이라는 개념은 부정적이다. 결혼과 관련되어 쓰일 때도 역시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 비정상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최근의 너그러운 경향은 속도위반으로 인한 임신을 ‘혼수’라는 말로 웃겨 넘겨버리기도 하지만, 역시 숨길 수 있다면 숨기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 영화 ‘과속스캔들’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속도위반을 다룬다.

영화속에서 남현수(차태현)은 한때 잘 나가던 아이돌 스타였다. 한창때보다는 못하지만 최고의 인기 DJ로 나름대로 잘 나가는 연예인이다. 그런데 30대 후반에 불과한 남현수에게 자신의 라디오프로에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박보영)이라는 미혼모가 아들 황기동을 데리고 찾아온다. ‘당신이 나의 아빠예요“라고 하면서. 30대의 할아버지는 이렇게 탄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별 내용도 없는 스토리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차태현의 능청맞지만 사람냄새 그대로 묻어나는 어리숙한 연기도 좋았고, 장면장면 다른 코미디영화보다 고민한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황정남(박보영)의 노래실력과 노래하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능청맞은 손자의 연기도 너무 재미있고...

상상 속에도 없었던 딸과 외손자를 맞이하게 되면서 차태현은 그들과 투닥거리고 당황하고 그러다가 정이 든다. 하지만 남현수는 연예인,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고, 엄청 노래를 잘하는 황정남(박보영)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스캔들이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갈등과 해결이라는 전형적인 코메디영화식의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속에서 딸, 손자와 비밀스럽고 불편함 속에서 알콩 달콩한 날들을 이어가던 어느 날, 방송을 같이 하는 PD에게 남현수는 딸이 몇살이냐고 묻는다. 5살... 이라는 대답에 차태현은 '애 언제 키우냐?'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미 30대에 22살이 된 딸이 있고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의 도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유쾌한 이 영화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고령화사회의 모습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지금의 40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닌다. 과거 우리 부모님세대에는 40대라면 왠만하면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50대가 되면 자녀들은 독립이라는 단어에 맞게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의 50대는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세대다.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거나 대학교에 다니면서 부모의 경제력을 시험한다.

영화에서 차태현은 10대에 부모가 되고, 30대에 이미 할아버지가 되지만 지금의 30대는 미혼이거나 이제 갓 결혼해서 아이는 기껏 유치원에 다닌다. 88만원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20대는 지금의 40대와는 또 다르게 학교를 더 오래 다닌다. 8학기 만에 학교를 졸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10-12학기를 다닌다. 학교 졸업이후에도 바로 취업이 잘 되지 않고, 취업이 되지 않다보니 결혼준비가 늦어지고 결혼준비가 늦어지다 보니 첫 출산연령도 점점 늦어진다.

출산연령이 늦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점 줄어가고...세대 간 나이 차이는 점점 늘어간다. 과거에는 50대가 되면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60대가 되어야 할아버지가 된다. 아마 미래에는 70대가 되어서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아마 그 나이에 차태현은 증조, 아니 고조할아버지가 될 지도 모른다.

차태현은 이 영화속에서 바람둥이 노총각과 손주를 둔 30대 할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다. 두 모습을 분리해 보면 어떨까? 30대에 이미 생활력을 가지고 있는 딸과 손자가 있는 것과 30대 후반에 유치원 선생님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게 될 두 차태현의 모습.

할아버지 차태현은 30대이지만 이미 교육비부담과 자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난 모습이고, 총각 차태현은 이제 결혼해서 자녀가 독립할 때가 되면 60대 중반은 되어야 한다.

어쩌면 할아버지 차태현의 삶이 훨씬 더 여유롭지 않을까?

자녀를 다 키운 할아버지 차태현은 여유롭게 일해 나가면서 자신의 할아버지로서의 긴 삶을 재정적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겠지만 바람둥이로 흥청망청 살아 온 총각 차태현은 60이 넘어서까지 자녀 뒷바라지 하고, 부부 은퇴준비 하느라 힘들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대 간의 간격이 점점 커져가고, 돈을 벌기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져 가면서 길어지는 노후를 준비할 시간들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그래서 정말 힘들게 살아갈 고령화사회를 생각해 보면서

‘속도위반, 혹 그것이 고령화 사회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황당한 생각을 해 본다.

신성진 네오머니 본부장 (truth64@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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