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08-13, 91x60.6cm Oil on Canva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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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개인전 ‘경계’… 16일까지 안단테 갤러리
파격 분할구도에 정물화 같은 극사실적 도시풍경
전통적 경계와 균형을 무너뜨리고 풍경 이상의 회화 공간을 연출한 작가 안성규. 서울대 미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1998년 동아미술제에서 동아미술상을 수상한 뒤, 자연주의 작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0여 년 전 회화적 공간에 시각적 구조를 변증적으로 결합한 ‘기념비’ 연작을 선보이면서 미술 평론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소격동의 고즈넉한 길을 따라 안단테 갤러리에 들어서니 그의 작품은 사진 작가의 전시물처럼 말끔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하지만 화폭 속 그림들은 친숙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사진과는 다른, 그리고 실제로 본 것과는 다른 회화의 경계선을 지켜보는 듯 했다. 분명 르네상스 미술에서 핵심적인 성격을 이루었던 환영주의, 즉 살아있는 물체와 혼동될 정도로 사실적 형상들은 생생한 미술 작품으로 재현돼 있었다. 적어도 직관적으로는 화면에 그려진 건물과 하늘이 기하학적으로 재구성된 사진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작품들은 서울 도심의 가로등과 남산 타워, 아파트, 달동네가 빼곡하게 언저리에 채워지면서 친숙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징적인 점은 화폭 속 광선과 재질감, 색채, 명암이 실제 외형에 충실하도록 묘사하면서 그 일관성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균형과 비례는 도발적인 연출로 무너져 내렸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경계를 구분해 냄으로써 도심의 물리적 무게감과 소란스러움에 침묵을 강요하고, 그 허망함을 폭로하는 형상이다.
그에게 ‘경계’는 단지 풍경을 담기 위한 형식적 소재에 머물거나 의도적 균형의 파괴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기 위해 전통적인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듯 하다. 또한 그의 작품들은 사실적 형상들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자연주의자에 가깝다. 자연주의는 자연의 외형에 대한 충실한 묘사를 특징으로 한다. 외부 세계에 대해 광선의 효과나 물체 표면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묘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주의의 전통적인 추상화나 양식적인 변형은 그의 작품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실적 형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되 전통적인 균형과 비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승훈 사이미술연구소장은 “그는 건물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보여주듯 세세한 부분의 극한까지 치밀하게 관찰하면서도 그러한 시각이 갖는 한계성을 건축물과 상반되는 또 다른 면적의 극한적 대비를 꾀했다”고 해설한다. 그리고 이는 “창문과 같은 캔버스 프레임 전체를 자연 상태의 색조에서 이탈하여 일정한 프레임에서의 시각의 변조를 통해 관찰자의 한계를 조작하는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현실 세계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담았다. 그러나 극단적인 화면 치우침과 클로즈업된 스케일감은 실제로 본 것과는 다른, 회화적으로 변형되고 재창조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또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제작 공정이 “언뜻 나무랄 데 없이 평면 회화의 보편 룰을 이행하는 듯하나, 무작위에 가까운 사진 촬영을 의미한다”면서,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수면 속에 깊이 잠겨 화폭에서 1할만 드러난 아파트 아틀란티스의 허망함을 아파트 스카이라인의 경계 위로 부담스럽게 펼쳐진 9할 치의 빈 허공이 대신 답변해주는 형국”이라고 지적한다. 안성규의 작품은 분명 정물화처럼 그려진 풍경화다. 그러나 풍경화는 자연을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 바로크 시대의 관객들은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를 통해 자연을 보는 방식을 거꾸로 익혔다. 그러나 현대의 풍경화는 더 나아가 비가시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작가의 고도의 추상력과 시각적 회화 공간의 연출이 접점을 이루는 대목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안단테 갤러리에서 ‘경계’란 주제로 오는 16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기왕이면, 추석 명절을 맞아 가벼운 산책 삼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안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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