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2 00:03
수정 : 2008.09.17 16:59
선도기술보다 생산성 높이기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승부수가 ‘치킨게임’을 끝낼까?
최근 국내외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잇따라 감산이나 구조조정 모색에 들어간 가운데,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선도기술 개발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양산기술 향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반도체의 상징 같던 ‘황의 법칙’도 올해엔 지켜지지 않게 됐다.
삼성전자는 11일 “지난 2월 개발한 3차원 셀스택 기술을 내년부터 32Gb와 64Gb 제품에 먼저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마다 메모리 집적도가 두 배씩 올라간다는 내용의 황창규 전 반도체총괄 사장(현 기술총괄)의 이름을 딴 ‘황의 법칙’을 따르자면, 올해엔 삼성전자가 128Gb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마다 선도기술을 과시하던 반도체 설명회도 열지 않기로 했다. 황 사장이 자리를 옮긴 첫해라 공교롭긴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나노공정 진화에 따른 기술적 어려움이 커지고 무리한 선도기술 과시가 실익이 없다는 논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삼성전자의 이런 방침이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경쟁업체들이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한계원가’에 달해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감산에 들어갈 때, ‘남은 체력’을 다 써서라도 이 치킨게임의 승자로 남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반도체 업계의 출혈경쟁 여파로, 디램 가격은 개당 6달러에서 1달러 이하로 급락한 상태다. 과거 가격 하락기에는 모든 업체들이 조금씩 감산을 해 물량조정을 통해 가격을 올리는 사이클이 형성됐지만, 1위 업체인 삼성전자가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시적으로 감산해서 가격이 오르면 또다시 모두 달려들 것 아닌가”라며 “이제 단기간의 실적이 아니라 반도체 사업이 몇십년간 안정적인 산업환경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고위관계자는 “반도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업계 상황은 삼성전자에 유리한 편이다. 하이닉스는 최근 채산성이 떨어지는 200㎜ 라인을 축소하거나 중단시키면서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줄였고, 일본 엘피다가 이달 중순부터 디램 생산량을 10% 축소하기로 했으며, 대만의 파워칩도 디램 생산량을 최대 15% 줄일 것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이날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기판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속도를 높여줄 ‘원디램’이란 퓨전메모리를 내년 3월 양산하겠다고 발표하며,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통해 경쟁업체들이 어려울 때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였다.
하지만 무조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른 업체들이 합종연횡으로 대응을 한다든지, 다른 업체들이 쓰러지기 전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역시 한계원가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총괄 쪽에선 “매일매일이 전쟁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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