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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2 10:40 수정 : 2019.07.02 10:40

자료 제공: 달아실출판사

자료 제공: 달아실출판사
지난해 어느 날이었던가. 전윤호 형이 정선을 쓰겠다 했을 때, 정선을 통째로 시로, 시집에 옮기겠다 했을 때, 처음 나는 긴가민가했다.

기행문도 아니고 시집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겠나 싶었다.

그런데 내게 원고가 떡하니 당도한 것이다.

형이 내민 원고를 펼치니 굽이굽이 정선이고 구절양장 에돌아 흐르며 정선이다.

60편의 시가 통째로 정선이다.

정선을 노래한다.

이번 시집은 「고향」이라는 시로 시작해서 「정선을 떠나며」라는 시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인이 ‘정선’이라 썼지만, 마침내 독자들은 ‘고향’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우라지, 조양강, 용탄, 가수리, 곤드레, 비봉산, 아라리, 볼거지, 나룻배, 곰취, 여량, 꽃벼루재, 몰운대, 동강할미꽃, 숙암 계곡, 불강, 자미원, 두위봉, 덕산기 계곡, 정암사, 구절리, 광대곡, 운탄고도, 화절령, 도롱이못, 가수리, 산초두부, 오일장, 나무돼지, 신월리, 민둥산, 배터거리, 더덕교회, 나룻배, 뼝대, 화암약수, 별어곡역, 지장천, 만항재, 누리대, 정선시장, 바위구절초, 공설운동장, 설피, 화암리, 비행기재, 멧돼지, 돌 축구, 봉양섬, 꿩 사냥, 용마소, 메밀국수, 수리취떡, 제장마을, 용소”

시집에 등장하는, 정선을 떠올리게 되는, 시인이 기억하고 있는 고향 혹은 정선에 관련된 단어들이다. 시집 속의 시편들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 듣는 지명이며 이름들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들이 낯설지 않다. 언제가 보았던, 언젠가 들었던, 언젠가 만났던 것만 같은 기시감(旣視感)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기억 속의 고향 그 한가운데 서 있게 되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가령 「돌 축구」라는 시를 보자.

정선의 겨울은 축구 시즌

축구장도 공도 없는 아이들이

운동복도 축구화도 없이

꽁꽁 언 강으로 모이지

작은 돌부리 두 개로 만든 골대와

차기 적당한 넓적한 돌이 필요해

추위를 무시하는 자신감과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투지가 전부

눈 쌓인 자갈밭에 불 피우고

얼어터진 신발을 녹여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추우면 추워질수록

공은 더 잘 나간다는 걸

겨울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서

어차피 돌부리를 걷어차며 살아갈 자들이

콰당콰당 넘어지는 낙법을 배우며

깊은 수심을 숨긴 얼음판을 뛰어다니지

날이 저물도록 멈추지 않지

― 「돌 축구」 전문

시인의 고향 정선에서는 겨울이면 꽝꽝 언 강에 나가 돌 축구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이인데, 묘하게 유년의 기억을 소환시킨다. 돌 축구는 아니지만 “얼음판을 뛰어다니”며 “날이 저물도록 멈추지 않”았던 유년의 어느 한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번 시집은 정선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고향이 꼭 정선이 아니어도 좋겠다. 정선이 아니어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이번 시집은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삶을 살아내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바쁜 일상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잃어버렸던, 유년의 기억들, 고향의 기억들, 조금은 더 순수했던 시절의 꿈들……. 이번 시집은 어쩌면 타임머신이 아닐까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과거 속으로,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번 시집 『정선』을 꼭 읽어보시라.

* 자료 제공 : 달아실출판사

<본 기사는 한겨레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기업이 제공한 정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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