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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1 15:32 수정 : 2019.10.02 11:50

4월5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한 이재민이 새까매진 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재민은 집에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집안 가득 쌓인 먼지와 재로 인해 오전 내내 집을 닦았다고 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재난 발생 후 이재민의 삶

4월5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서 한 이재민이 새까매진 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재민은 집에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집안 가득 쌓인 먼지와 재로 인해 오전 내내 집을 닦았다고 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날이 오지 않았다면 안정적이고 행복했을 전원생활이었다. 퇴직 후 남편과 함께 강원도 고성에 터를 잡은 백정숙(66)씨의 행복은 10년 만에 새까만 재로 변했다. 2019년 4월 4일 “불이야~!”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백씨의 삶을 180도 뒤집어 놨다.

강원도 산불은 1289명의 이재민을 만들고 2832헥타르(ha) 규모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고성은 본래 바람이 많이 부는 땅이다.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는 높새바람이 있고, 동해안의 영향을 받아 3~5월에는 해풍이 심하게 분다. 강원도 산불도 이 강한 바람이 실어날랐다.

산림청이 1997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계절별 산불 발생 현황’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적으로 432건의 산불이 일어났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253건이 봄에 발생했다. 이번 강원도 산불도 어김없이 4월에 발생했다.

4월 5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에 한 주택이 불에 녹아 무너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무서워서 가스불도 못켜요”

화마가 훑고 지나간 이재민의 삶에는 여전히 불의 공포가 남아있다. 불이 나던 그날을 함상애(79)씨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리에 서서 그저 밤새도록 집이 타는 모습을 바라봤다. 불씨가 눈앞에 날아다녀 위험했지만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다. 함 씨는 “죽다 살아났어. 나가도 연기가 자욱하고, 아들이 속초에 와서 알려줘서 겨우 나왔어”라며 “아직도 냄새가 무서워. 마을에 들어서면 탄내가 아직도 나”라며 산불에 대한 여전한 두려움을 전했다. 바람이 많은 땅 고성은 이제 바람이 불면 집이 타는 냄새를 떠올리게 된다.

이재민들의 일부는 불에 쫓기는 트라우마를 겪으며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가스불 켜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산불이 난지 5개월이 지났지만 백 씨는 집이 불에 타던 그날의 악몽에 시달려 매일 새벽 3시에 깬다.

희망브리지는 1959년 840여명의 사망자와 37만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태풍 ‘사라’ 피해 돕기 모금운동을 계기로 전국수해대책위원회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사진=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최소한의 불편, 최대한의 구호 활동

산불로 까맣게 탄 자리를 재건하기 위해 산불 재난현장에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가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희망브리지는 갑작스러운 재해로 힘들어하는 이웃을 돕기 위해 1961년 전국의 방송사와 신문사,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설립한 민간 구호단체다. 1959년 840여 명의 사망자와 37만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태풍 ‘사라’ 피해 돕기 모금운동을 진행한 <전국수해대책위원회>가 희망브리지의 전신이다. 2001년 재해구호법이 개정되면서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법정 재해구호단체로 재도약했다. 재해구호법은 등록청의 허가를 받아 모집하고 모은 의연금은 배분위원회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기준(훈령)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희망브리지의 이사회가 배분위원회를 맡도록 되어 있다. 이는 광범위한 피해를 끼치는 자연재난의 특성을 고려해, 의연금 배분의 형평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불 이재민 피난처 5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성/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강원도 산불 이재민들에게 가장 먼저 지급된 것은 희망브리지의 대피소 칸막이였다. 이재민이 옷을 갈아입거나, 잠을 잘 때 등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설치된다. 이재민은 재난으로 살고 있던 집과 생활용품 등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희망브리지는 이들이 불편함을 최소한으로 느끼도록 최대한의 구호 활동을 펼친다.

‘칸막이 안의 삶, 응급구호키트’

 

희망브리지의 응급구호키트는 공통적으로 담요, 수건, 베개, 세면용품, 속옷, 간소복, 화장지, 매트, 수면 안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별에 따라 면도기나 위생용품을, 아이가 있는 세대에는 기저귀, 분유를 추가로 지급했다. 간단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휴대용 버너, 코펠, 주방 세제, 수세미 등으로 구성된 취사구호세트도 응급구호키트와 함께 마련되었다.

이는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해놓은 구호물품이며 지자체 재해 구호 기금으로 마련되었다. 희망브리지 한 관계자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도 집을 떠나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기 때문에 생필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고 구성품에 대해 설명했다. 응급구호세트의 비축기간이 5년이기 때문에 치약, 물티슈, 생수, 생리대 등 유통기간이 짧거나 화재 위험으로 장기 보관이 어려운 개별 구호물품은 별도로 조달된다. 재난에 따라 지진 구호키트, 방한키트도 있다.

‘기부라는 이름으로 헌옷 버리지 마세요’

고성 현장에는 속속들이 생활에 필요한 휴지, 세안용품, 의류 등 구호물품이 도착했다. 희망브리지 직원들은 이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구호물품도 발견했다. 바로 ‘기부라는 이름’으로 처리된 입을 수 없는 낡은 옷이다. 자원봉사자 허아무개(27)씨는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죠. 그런데 삭아서 구멍이 나거나, 변색되고 입을 수 없는 게 더 많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구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옷을 걸러내는 것만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시간이 한참 할애됐다.

이재민들의 빨래를 돕는 희망브리지의 세탁구호활동. 사진=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재난 기간이 길어질수록 강당은 불쾌한 냄새로 가득 찼다. 협소한 텐트에 옷을 무작정 쌓아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마땅한 세탁 시설이 없어 며칠을 입은 겉옷은 고사하고 속옷조차 제대로 세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이재민들에게 가장 큰 도움은 희망브리지의 세탁구호활동이었다. 한 이재민은 “생각지도 못한 구호 서비스였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너무 미안해서 이불 빨래는 못 맡겼습니다. 이불 빨래는 연수원 나갈 때 맡기려고 합니다”라고 미소 지었다.

이재민들이 머무는 임시주택을 배로 운송중인 모습. 사진=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재난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많은 이재민들은 입을 모아 “강원에서 산불이 자주 일어났지만 집까지 타버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재난상황을 예상할 수 없고 그 재난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난 현장을 떠났지만 그로 인한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다. 비단 산불뿐만 아니라 태풍, 지진도 재난 상황에 해당한다. 올해 태풍 ‘링링’이 3명의 사망자를 냈고 포항, 경주에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지진이 일어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재난은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이 생겨도 최소한의 피해, 최대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재난 전 기초적인 인프라를 구축해 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 후 상처 치유, 나눔의 일상화’

이제 재난은 폭염, 슈퍼태풍, 한파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천재지변은 늘 미리 준비하지 못해 더 큰 피해를 입힌다. ‘나눔의 일상화’가 중요한 이유다. 대형 재해와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 지방의 국지적 재난이나, 중소 재해 같은 경우는 모금이 되지 않아 이재민들이 삶을 재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희망브리지는 이재민들의 조속한 생활 안정에 중점을 두며 돕고 있지만 대개 재난이 발생한 후 모금이 이루어짐에 따라 구호 기간이 2~3개월이나 소요된다. 그만큼 이재민들의 불편함과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백정숙 씨의 남편 왕주남(74)씨는 재로 변해버린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나무를 사서 심었다. 백씨는 “10년을 정성 들여 심은 나무가 다 타서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라고 울먹거렸다. 집은 불타 사라지고 이재민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와 함께 살고 있다. 희망브리지는 이재민들이 아픔을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이재민들이 새로운 토대 위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 콘텐츠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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