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0 18:31
수정 : 2019.11.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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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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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 SUV 판매량 5만2천대
4만7천대 세단보다 5천대 더 팔려
월판매 SUV 비중 절반 돌파 원년 기록
가족단위 여가·실용성 중시 세태에
성능·연비 향상, 승차감 개선 한몫
내년엔 연판매량도 세단 앞지를 듯
업체들 라인업 확대·다양화 경쟁 속
전기·하이브리드·LPG 모델까지 나와
“공급과잉” 우려에 업계 “추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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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_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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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실용차(SUV)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집계를 보면, 지난 9월 국내에서 판매된 에스유브이는 5만1851대로 세단(4만6812대)보다 5천대 넘게 더 팔렸다. 신차 판매 10대 중 5대 이상이 에스유브이라는 이야기다. 덩치 큰 대형부터 소형 차급까지 가히 에스유브이 열풍이라 할만하다. 10년 전까지만해도 전체 승용차에서 에스유브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2014년 34%로 뛰더니 지난해에는 47%까지 높아졌다. 올 들어 3월에 이어 8~9월 두 달 연속 월간 에스유브이 판매 비중이 절반을 넘어섬으로써 ‘승용차는 세단’이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에스유브이의 무한확장에는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태가 반영돼 있다. 차량을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 가족 단위로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주된 배경이다. 연비와 주행 성능, 승차감이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도 에스유브이의 선호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에스유브이에 탈 때는 높은 좌석 위치와 실내 천장으로 몸을 굽히지 않아도 된다. 넓은 적재 공간과 큼직한 휠도 매력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에스유브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시장에 불어닥친 한때의 유행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연비로 세단 수준의 성능과 편안한 승차감을 갖춘 크로스오버 형태의 에스유브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를 풍미한 현대차 ‘갤로퍼’를 타본 사람이라면 ‘프레임 바디’로 이뤄진 탄탄한 차체를 기억할 것이다. 이 구조는 차량의 뼈대가 되는 프레임 위에 엔진과 서스펜션 등을 장착하고 바디(차체)를 올린 형태를 말한다. 강성이 좋지만 차량이 무거워져 연료 효율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애호가들은 ‘프레임 바디’ 구조를 적용한 에스유브이가 정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도심형 에스유브이를 표방한 차들은 거의 ‘모노코크 바디’로 불리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 구조는 프레임과 바디가 하나로 되어 있다. 바디 자체를 견고하고 가벼운 상자형으로 만들어 여기에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을 얹어 차량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항공기 제작에도 적용하는 방식으로,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어 연료 효율성이 좋다는 이점이 있다.
한때 에스유브이 차량은 ‘기름 먹는 하마’라는 소리를 들었다. 거친 오프로드를 누비며 힘은 셌지만 덩치가 큰 만큼 차량이 무거웠고 연비도 좋지 않았던 탓이다. 현대차는 갤로퍼에 이어 2000년대 초에 출시한 ‘테라칸’ 이후 ‘모노코크 바디’로 에스유브이의 단점을 개선시켜 나갔다. 최근 출시되는 신차에는 대부분 ‘모노코크 바디’를 적용하지만, 아직도 정통 ‘프레임 바디’를 내세우는 차량이 있다. 기아차의 ‘모하비’가 대표적이다. 모하비는 최근 신형이 나왔음에도 프레임 바디를 고수하고 있다. 프레임 바디가 주는 단단한 승차감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강인함을 중시하는 마니아들에겐 이만한 매력이 없다.
에스유브이가 전례 없는 인기를 끌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갖춘 차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가솔린에서 디젤, 하이브리드에서 엘피지(LPG)와 전기차, 수소차까지 제품군을 확장했다. 탁트인 시야와 개선된 승차감, 실용성을 무기로 세단의 영역을 치고들어가더니 소비자 선택 지점을 더 넓힌 것이다. 올해 엘피지 차량의 일판 판매가 허용되자 르노삼성은 중형급 ‘QM6’의 엘피지 모델을 재빠르게 선보였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판중이다. 이제 에스유브이는 소형급에서 대형 차급까지, 가솔린에서 엘피지, 전기·수소차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에스유브이 선호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금으로선 속단하기 힘들다.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등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시장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달 말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에스유브이인 ‘GV80’이 나오면 국내 에스유브이 시장은 한단계 진일보한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에서 독립한 고급 브랜드인만큼 제네시스 에스유브이는 고성능 프리미엄 차임을 표방한다. 스파이샷을 보면 세단인 ‘G80’보다 훨씬 큰 범퍼가 눈에 확 들어온다. 지금까지 프리미엄 고급 에스유브이 시장은 대부분 수입차가 장악해왔다. 포드는 이달 초 6세대 ‘익스플로러’를 국내 출시했다. 9년 만에 완전변경된 차로, 2017~2018년 2년 연속 수입 에스유브이 판매 1위에 오른 모델이다. 이 차급에선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벤츠 ‘CLS클래스’, 베엠베(BMW) ‘X6’, 재규어 ‘F-페이스’, 포르쉐 ‘카이엔’ 등 쟁쟁한 차들이 버티고 있다. 최근 벤츠는 1억원짜리 에스유브이 전기차 ‘EQC’를 선보였다. 이런 고가 수입차에 견줘 좀 더 낮은 가격대인 6천만원대에서 제네시스 ‘GV80’ 출시가가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가격 경쟁력을 갖고 출발하는 셈이다.
픽업트럭 경쟁도 볼만하다. 한국지엠(GM) 쉐보레가 선보인 아메리칸 정통 픽업트럭 ‘콜로라도’는 쌍용차의 ‘렉스턴 스포츠’에 맞서는 강력한 도전자다. 국내 픽업트럭 시장을 선점한 ‘렉스턴 스포츠’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주목된다. 쉐보레는 콜로라도에 이어 대형 에스유브이 ‘트래버스’도 국내에 들여왔다. 역시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의 차다.
세계적으로도 에스유브이는 강세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승용차 판매 중 에스유브이 비중이 40%가 넘었고 미국도 픽업트럭과 함께 판매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럽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국내에선 쌍용차 ‘티볼리’에 이어 현대차 ‘코나’와 ‘베뉴’, 기아차 ‘스토닉’과 ‘셀토스’ 등 소형급에서부터 쌍용차의 ‘G4 렉스턴’과 현대차 ‘팰리세이드’ 등 대형차급까지 시장을 달구면서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내년에는 에스유브이 판매량이 연간 기준으로도 세단을 앞지를 가능성이 커졌다. 에스유브이는 동급 세단에 비해 수익성이 10~20%가량 높다. 시장 수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계속해서 해당 차종의 라인업을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요가 뒷받침된다면 제조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조만간 공급 과잉에 따른 시장 포화를 걱정해야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에스유브이에 꽂힌 제조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세다. 박민형 현대차 기술홍보부장은 “기술 발전으로 성능이 개선되고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에스유브이 중심의 시장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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