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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제3계급’비정규직
③ 말라가는 성장 젖줄
④ 땅이 가난을 만든다
⑤ 좌담·한국경제의 제3의 길
●일시:2004년 12월28일(화) 오후 3시
●장소:본사 8층 회의실
●참석자: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이일영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사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는 새해 첫날부터 ‘양극화, 또하나의 분단을 넘어’란 주제의 기획시리즈를 4차례에 걸쳐 실었다. 취재를 통해 양극화 문제가 단지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불균형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빚어낸 결과물이며 이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질적 도약이 불가능함을 확인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정부와 학계, 노동계 전문가들과 함께 양극화로 표출된 우리경제의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사회 경기침체와 양극화의 골이 너무 깊다. 얼마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매고, 네살배기가 장롱속에 숨진채 방치됐다. 외환위기 때는 위기를 극복하면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은 이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경제가 처한 위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쉽게 희망을 말하기 힘들다. 2년 넘게 불황이 지속된 전례가 거의 없다. 특히 불황의 여파가 가장 책임이 없는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지금의 어려움은 구조적, 경기적 문제가 복합된 것이다. 60~80년대의 투입 주도형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는데, 아직 혁신 주도형 성장으로 탈바꿈하지 못한 게 구조적 문제다. 구조 전환의 미완성과 부족함이다. 이는 장기적인 과제다. 경기적인 어려움은 내수, 즉 소비와 투자부진이다. 무엇보다 2001~2002년의 과도한 경기 부양으로 인한 부동산과 카드사태의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비롯된 내수불황이 주된 이유다.
이정우 “구조·경기적 문제 복합…정부대응 속도 미흡”
김기원 “정부, 서민경제 고통둔감…원인처방 힘실어야”
이일영 “노동수탈-수출 시스템 87년이후 한계 부딪쳐”
김유선 “성장·분배 선순환 시급…노동내 차별해소 필수”
김기원 교수 외환위기 때는 국가 부도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서민의 삶이 몹시 어렵다. 구조적으로는 우리경제가 고성장에서 중성장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에 상응하는 사회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개혁의 미흡함도 있다. 가계와 중소기업, 서비스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데 갈피를 못잡고 있다. 또 글로벌화가 진전됐지만 이에 걸맞게 생산과 분배구조가 조응하지 못했다.
이일영 교수 87년 이전까지 우리경제는 국가 주도로 전략을 짜고 저임금 등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했다. 노동, 농업, 여성을 수탈하고, 시장은 해외에서 구했다. 그러나 87년 이후에는 이런 시스템이 불가능해졌다. 국가의 조정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그 틈에 재벌체제는 강화됐다. 이런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서, 탈냉전과 정보통신 혁명, 개방과 시장주의 강화 등 외부 환경도 급변했다. 서민경제의 위기는 곧 양극화의 문제인데, 이렇게 경제구조가 변할 때 승자와 패자가 생기면서 비롯되는 문제다. 거대 재벌기업은 글로벌화된 시스템에서 생존선을 넘어섰다.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길러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고용율이 높은 서민경제 영역, 즉 도소매업, 음식·숙박, 건설업 등은 과잉되고 위축됐다. 세계적인 차원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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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 소장 위기의 핵심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깨진 것이다. 성장이 분배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경제는 80년과 98년을 두해를 제외하고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플러스 성장을 해왔다. 반면 분배구조는 96년을 정점으로 계속 나빠지고 있다. 저소득층은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고, 이것이 소비부진과 경기침체를 장기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사회 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과도기로 보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한편에선 현정부를 ‘좌파정부’라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선 ‘개혁부진’을 질타한다. 정책 대응과 기조의 문제는 무엇인가?
밈간소비 6분기째 마이너스
이정우 성장 잠재력 확충 등 장기적인 개혁 전략과 동시에 발등의 불, 즉 내수불황에 따른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할 응급대책도 필요하다. 서민경제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빈곤아동과 근로빈곤층 대책을 내놨고 보육지원을 크게 늘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다만 속도가 충분치 않다는 건 인정한다.
“희망 보이지 않는다” 아우성 커
김기원 정책은 강도와 속도의 문제다. 김대중 정부 이후 복지정책 등의 내용은 좋은데 대개는 언발에 오줌누기에 그쳤다. 예컨대 요즘 같은 때는 복지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예산처나 국회에서 줄여버리는 식이다. 정부와 관료들이 보수세력의 좌파정부론에 흔들리고 시장 만능주의에 상당히 빠져있다. 성매매방지법은 법의 취지는 좋지만 밑바닥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건 시기와 속도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사회경제적 약자, 서민경제의 어려움에 둔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내수침체요, 그 핵심은 소비다. 민간소비가 6분기째 마이너스다. 일부에서 투자가 문제라고 하는데, 이는 투자율이 아니라 투자의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의미한다. 신용불량자와 일자리, 분배 등 소비침체의 원인 처방에 정책적 힘을 실어야 한다.
김유선 정부의 정책수단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노동부문은 아예 동원 가능한 수단마저 포기한 것 같다. 노동시장 정책은 사실상 비워놓고 사회안전망 구축 등 재분배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내부의 소득격차와 저임금 구조가 빠르게 악화돼, 이젠 시장 바깥에서의 재분배 정책만으론 분배악화와 소비침체를 해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시장 내부의 불안정성과 차별문제를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정우 소비 거품이 꺼지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어느정도 견딜 수 밖에 없다. 다만 긴급한 서민경제 정책에는 미흡함이 있었다. 대부분의 경기예측기관들이 2004년엔 경기가 회복된다고 예상했고, 정부도 그걸 믿고 좀더 적극적인 경기대책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동산 문제처럼 국가적인 큰틀의 개혁과제까지 경기적 대응에 휩쓸려서는 안된다. 목욕물 버린다고 아기까지 내버려선 안된다.
김기원 일부에서 소득세나 법인세를 낮춰 부자들이 돈쓰게 만들자고 하는데, 이는 경기를 위해 구조를 왜곡시키는 잘못이다. 경기와 구조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국가가 하층 서민들의 복지 등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이건 어차피 해야할 일이면서도 당장 돈도 된다. 부동산 투기 억제 탓에 건설경기가 문제라는데, 이것도 투기 억제책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건설 수요를 복지시설이나 사회간접자본 쪽으로 돌려 해결하면 된다.
사회 글로벌 시장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정부의 구실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브라질처럼 좌파가 집권한 나라조차 분배지향적 정책의 입지가 넓지 않다.
이일영 서민경제가 어려워질 때는 누구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할 일이 많다. 헌데 우리는 공적 영역이 매우 작고 효율도 떨어진다. 특히 관료와 학자 등 국가 엘리트 스스로가 국가가 해야할 일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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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교육·물까지 사적해결 영·미서도 발견 어려워 사회협약 통해 한계극복
김기원/ 노사정 타협 실효성 위해 비노조 노동자등 대표성 시민단체에 의탁 방법도
이일영/ 자생력있는 중기시장 대학·지역 클러스트 통해 공공서비스 영역서 창출
김유선/ 영미식 시장주의 환란뒤 조악하게 유입 국가가 폐해 줄여야
이정우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에 단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경제주체들 모두가 단기주의에 빠져있다. 기업은 단기 수익 극대화에 주력하고, 노조도 한해의 임금인상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 정부는 눈앞의 정책에 급급하고, 국민들도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는 ‘시장주의의 과잉’이다. 어떤 부문은 관치가 문제인 반면, 어떤 부문은 공공영역이 부실하고 과소한 문제가 심각하다.
김유선 단기주의는 과도적 현상이 아닌 것 같다. 기업이 하청업체와 약탈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비정규직을 남용·차별하는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다. 손쉽게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일차적으로 비용을 줄이면서 빚어지는 일이다.
김기원 우리경제는 주주 자본주의라기보단 여전히 총수 자본주의다. 기업의 단기주의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진 영향이 크다. 예전에는 아무데나 투자하고 봤는데 지금은 그러면 망한다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깨달을 것이다. 문제는 자본과 노동 모두 이런 깨달음이 과도해서 시장 만능주의로 경도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현실화 촉구해야
사회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어 보편적인 고용형태가 됐다.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법안이 논란끝에 해를 넘겼는데, 어떻게 풀어야 하나?
김유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제어하기 위한 법적 장치는 필요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핵심은 임금차별이고, 극단적인 저임금을 해소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게 효과적인 해법이라고 본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평균임금의 50%를 수용해도 기업의 비용부담은 3% 수준이다.
노동간 연대임금은 1차적으로 노동조합이 해결할 문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대기업 정규직이 설령 임금인상을 자제하더라도 그 혜택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비정규직들의 임금 수준이 함께 낮아지는 하향 평준화 가능성이 높다. 중소 하청업체의 임금과 단가는 사실상 대기업이 정한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은 대기업 노조가 교섭할 때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폭까지 협약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런 노사협약의 이행 여부를 감시·감독하는 일을 해야한다.
“큰 틀 사회협약 통해 시장한계 극복 가능”
이정우 양극화가 심한 미국의 경험을 보면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 그중 하나가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는 거다. 클린턴 정부 때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는데,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우리도 최저임금을 2001년에 대폭 올렸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현재 25~30% 수준인데 당장 50%까지 올리는 건 무리가 있고 서서히 올려 연착륙해야 한다.
노조힘 강화해 파트너삽 해결을
사회 정부가 비난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기실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의 측면이 강하다. 참여정부라면 노조의 힘을 강화해 파트너십으로 해결하는 게 맞는데, 거꾸로 배제적으로 몰아붙이니 갈등이 되레 증폭되는 측면이 있다.
김기원 맞는 말이다. 대기업 정규직은 자본에 의해 압박받는 측면과, 비정규직보다 우대받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재계는 후자만, 노동계는 전자만 강조한다. 두 당사자의 양보 필요성은 자명하고 길도 있다. 예컨대 노조가 임금동결하는 대신 경영진은 연봉을 삭감해 그 돈으로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위한 훈련기금이나 복지기금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정부는 공공 의료와 교육, 공공임대주택 등을 늘려 교육비, 주거비 등 비정규직의 간접임금을 증대시키면 격차가 크게 해소될 것이다.
이일영 최저임금 인상이나 연대임금 확산도 필요하지만, 기본 방향은 비정규직이 불법적으로 확산되고 차별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정부가 이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감독하는 방식은 맞다. 문제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계에선 ‘우리가 주는 건 현찰이고 받는 건 어음’이라고 한다. 법은 있는데 정부의 관리가 안돼 차별이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정부가 할일은 부도날 어음이 아니라는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노동계를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이정우 기업별로 분산된 협상 구조를 산업별 또는 전국 단위로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 기업, 내 임금만 챙기겠다는 좁은 시각으로는 다 망한다. 때문에 필요하다면 시민단체 등이 함께하는 노·사·정 협의 틀을 만들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연대임금이나 복지기금 등의 해법도 이런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처럼 파편화돼서 ‘각자 최선의 길을 시장에서 찾으라’는 방식으로 가면 희망이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경제주체들이 기꺼이 참여해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노사 뿐 아니다. 지금 농업, 환경 부문과도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큰 단위의 사회협약, 또는 사회계약을 통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사회 노사정위원회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도 변수지만, 사쪽의 단결이 훨씬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노사정위원회의 확대강화로 문제를 풀수 있나?
김기원 노사정 타협이 안되는 이유는 사정이 괜찮은 대기업 노사가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구나 일본의 경우, 노사가 임금상승 자제와 고용안정을 맞바꿨는데, 대기업 노사는 둘다 이 문제가 그리 절실하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비노조 노동자와 중소기업을 대표할 수 있는 집단이 참여해야 합의 가능성이 높고 힘도 실리지 않을까 싶다. 비노조의 대표성은 시민단체 등에 위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유선 현재 노조 조직률이 50% 이상인 나라는 북유럽의 몇개 뿐이다. 독일도 27% 수준으로 떨어졌다. 숫자로 과반수를 확보해 노동자의 대표성을 갖는 건 불가능하다. 대기업 정규직의 기반이 협소한 한계는 있지만 여전히 노동을 대표할 수 밖에 없다. 시민단체가 들어온다는 것은 전반적인 공익성 강화의 문제이지, 대기업 노조보다 비정규직을 더 잘 대변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의 노동정책 기조는 유연화, 그것도 수량적 유연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협약기구 만들어지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 못한다. 대신 기능적 유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아젠다를 분명히 해야 참여도 하고 제기능도 할 수 있다.
사회 중소기업 문제는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중소기업의 부진은 경쟁력과 기술력이 낮은 때문인데, 새로운 경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충분치 않다. 중소기업 부진의 원인과 성장전략 무엇인가?
대학개혁·기술개발 같이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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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아랫목과 윗목 사이에 차단막이 있고, 아랫목은 집밖으로 연결된 것 같은 상태다. 글로벌화 진전되면서 생산 측면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연관체계가 바뀌었다. 잘 나가는 대기업은 업그레이드 됐는데 중소기업은 제대로 못따라갔다. 대기업들이 핵심부품은 일본에서, 저가 부품은 중국 등에서 사온다. 필연적 결과다. 해법은 중소기업을 업그레이드시켜 연관체계를 재구축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다. 자금지원 만으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구축 못한다. 대기업처럼 구조조정해서 옥석을 가리고, 도태되는 건 안전망으로 커버해야 한다. 지금처럼 은행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체계적인 프로그램 만들어 해야한다. 중소기업의 업그레이드는 가공기술이 핵심이고, 그럴려면 인력의 연속성이 필요하고, 때문에 교육·훈련 투자를 해야한다. 인력과 기술이 향상되면 자연스레 대기업과의 임금격차와 고용장벽도 줄어들 것이다.
이일영 중소기업 부진은 지금까지의 성장전략과 경제모델에 기인한다. 우리는 독자적인 사업기반을 형성하는 성장전략으로 대기업을 중심에 놓았다. 반면 대만은 처음부터 세계체제, 다국적기업과 연관해 성장했다. 어느 모델이 낫다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양쪽 다 불균형이며, 압축성장의 서로 다른 패턴이다.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과 선택을 해야하는 대기업한테 중소기업과의 연관체계를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다. 중소기업 문제는 정부가 새롭게 설계해야 할 산업정책이다. 대기업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자생력 있는 혁신 중소기업 시장을 공공서비스 영역 등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핵심분야인 연구개발쪽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지원하고, 대학과의 결합, 지역과의 결합(클러스트) 등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해야한다.
이정우 중소기업 정책은 많았는데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렵다. 지난해 내놓은 10대 성장동력산업은 주로 돈이 많이 드는 첨단·장비산업으로 대기업의 영역이다. 지난 7월의 중소기업 종합대책은 주로 자금지원 쪽이고, 연말에 내놓은 벤처종합대책이 새로운 혁신형 중소기업을 다시 한번 일으켜보자는 거다. 벤처 거품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키워야 하는데, 문제는 혁신형 중소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사회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개방과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시장주의적 개혁을 추진했고, 영미식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경제 체제로 급속히 편입됐다. 과연 우리경제, 우리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논의해보자.
개방 완충장치 빨리 마련을
이일영 시장은 경쟁과 혁신을 촉진한다. 때문에 시장이 잘 관리되고 작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유무역협정 등 개방의 문제도 거부하거나 방관할 시점은 지났다고 본다. 문제는 개방과 시장의 긍정성을 높이고 부정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에서 사회적 연대원리를 확보하고, 개방에 따른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게 국가의 몫이다. 개방 일정은 상당히 빨리 다가오고 있다. 우리사회가 이를 어떻게 수용할 지를 공론의 장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가의 조정 능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다.
김기원 외환위기 이후 시장 만능주의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우리사회 전체가 여기에 종속된 건 아니다. 예컨대 우리사회는 노사정위원회처럼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려는 노력이 있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영미식의 유연성과 유럽식의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 가능하다고 본다. 영미식의 장점은 자본과 노동의 유연성이고, 유럽의 장점은 사회보장제도로 대표되는 안정성이다. 예컨대 자본 유연성은 대마불사의 신화를 깰수 있고, 사회보장제는 기업가 정신을 유지시켜 준다. 개방은 개혁과의 균형을 이루면서 선택적으로 해야하고, 개방에 따른 이해집단의 갈등조정을 염두에 둬야한다.
김유선 외환위기 이후 개발독재의 잔재 속에서 영미식 시장주의가 매우 조악한 형태로 들어왔다. 때문에 어떤 모델이건 지금보다는 사회적 연대와 형평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요즘 말하는 시장은 사실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시장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게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서 폐해를 줄이고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정우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문제를 시장으로만 해결하려는 시장 만능주의가 팽배해있다. 의료와 교육, 교통, 심지어 물까지도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영·미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런 지나친 불균형을 바로잡는 게 국가와 시민사회다. 때문에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과잉이 혼란을 부른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민주주의와 참여가 부족한 데 따른 일방통행이 잦고, 그 폐단을 뒤늦게 시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첫 단계부터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당사자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 또 우리가 치열한 세계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자원은 우수한 인력이다. 때문에 기든스가 말하는 ‘사회투자형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만의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복지확충과 분배개선은 더 강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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