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07 11:20 수정 : 2005.01.07 11:20



정부, 경기 회복 승부수로 활성화 방안 발표
5년전 시련 거울 삼아 옥석 가려 지원키로

정부의 ‘히든 카드’가 지난해 12월24일 모습을 드러냈다. 끝 모를 불황을 탈출할 수 있는 구원투수로 ‘벤처 활성화’를 꺼내든 것이다. 이날 발표된 정책은 꼼꼼하고도 치밀하다. 벤처업계가 지금까지 줄기차게 제기한 요구들도 대부분 반영됐다는 평가다. 지원 규모도 무려 12조원에 이른다. 업계는 기대 이상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하지만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거품과 비리의 온상으로 얼룩졌던 5년 전의 기억 때문이다. 벤처산업은 과연 지리멸렬한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목욕탕은 빤한데 돈 벌자고 사람을 잔뜩 집어넣으면, 물 반 사람 반으로 목욕도 제대로 못합니다. 지금 코스닥시장이 꼭 그래요. 그럼 방법이 뭐냐! 물을 더 넣든지, 목욕탕을 넓히든지, 사람을 줄여야겠죠. 엄선된 기업은 상장시키고, 부실한 기업은 빨리빨리 퇴출시켜야 합니다. 애널리스트들도 몇몇 스타 기업만 주시할 게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이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분석보고서를 많이 내줘야 하고요. 판단 기준이 되는 기업들 중심으로 코스닥시장을 우량화해야 합니다.”

이른바 ‘이 바닥’에서 20여년 이상 구르며 국내 벤처산업의 영욕을 직접 봤다는 박기호 LG벤처투자 상무는 우선 박수부터 쳤다.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종합대책’이 나온 직후였다. 박 상무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벤처산업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다”고 지적한다. 이유인즉 이렇다.

“벤처산업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져 혼자 성장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5년이란 역사를 지니고 있어요.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 양적 성장에 치우치는 정책 탓에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걸러지지 않은 기업들이 시장으로 막 들어오고, 머니게임이 생겨나고, 개인 투자자들이 깡통구좌를 손에 쥐는 일도 있었죠. 그렇지만 그건 수업료라고 봐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벤처산업이 이렇게 안정화된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삼성이나 현대를 키우기 위해 지불했던 사회적 비용과, 수만개에 이르는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데 들인 비용을 제대로 비교해 봤나요? 대우나 한보 같은 기업이 하나 날아가면서 떠안은 비용에 비하면 아직도 인색하기 그지없는 것이 벤처 지원책입니다.”

벤처업계에 ‘스크루지 영감’ 같았던 정부는 성탄 전날 12조원에 이르는 푸짐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지난해 12월24일 이헌재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나온 ‘벤처 활성화 대책’ 얘기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골 깊은 내수 부진을 딛고 재도약을 노리는 ‘디딤판’으로 대규모의 벤처 활성화 정책을 쏟아냈다. ‘백약이 무효’인 경제의 체력을 회복하고 40만개에 이르는 일자리 창출과 400조원에 이르는 부동자금을 시장에 풀기 위해 ‘제2의 벤처 활성화’를 동아줄로 잡은 것이다.

시장 진입은 쉽게, 퇴출은 가차 없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한마디로 ‘벤처 생태계 회복’이다. 벤처기업이 만들어져 성장하고 퇴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망가졌으니 이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경쟁력 있는 기업은 시장에 쉽게 진입하도록 하고, 부실한 기업은 빨리 퇴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와 차별화해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육성키로 했다. 특히, 기술력과 성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벤처기업은 당장 수익을 올리지 않더라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장기간의 투자와 연구 개발이 필요한 바이오기술(BT)이나 나노기술(NT) 관련 업체들이 시장에 훨씬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이에 반해 부실한 기업들은 가차없이 시장에서 밀려나도록 정책을 손질했다. 관리종목 지정기업처럼 퇴출 한계선상에 있는 기업이 오랫동안 시장에 머무르면서 시장 건전화를 해쳤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연간 결산시 50% 이상 자본을 잠식한 기업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는 지금의 방식에 더해, 반기 100% 이상 자본잠식 기업에 대해서도 ‘빨간불’을 달기로 했다. 50% 이상 자본을 잠식한 기업의 경우 퇴출까지의 유예기간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한 번 실패한 벤처기업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제’다. 벤처기업은 특성상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대표이사나 대주주는 큰 빚을 떠안고 신용불량자가 돼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기업이 지닌 기술이나 경험도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리나 도덕적 해이가 없는 ‘정직한 실패’에 대해서는 신규 지원을 통해 재기가 가능하도록 돕겠다는 것이 패자부활제의 핵심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신용을 회복한 벤처기업인에 한해 벤처기업협회가 1차로 도덕성을 평가한 뒤 보증기관이 기술과 사업 타당성을 심사해 신규 보증을 지원하게 된다. 정부는 1997년 벤처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약 1만개의 실패 기업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제와 금융 지원도 다양해졌다. 신규 상장 중소·벤처기업은 소득금액의 30%까지 사업손실준비금으로 적립하도록 허용해, 법인세 부담을 줄였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대규모 보증 정책이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을 벤처 보증 전담기관으로 삼아 2007년까지 10조원 규모의 보증을 공급하기로 했다. 산업은행과 민간이 올해 안에 2천억원의 공동 펀드를 조성해 창업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한편, 기업은행도 중소·벤처기업 전용 사모펀드(PEF)를 올해 안에 2천억원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다. 최대주주 등의 상장 후 매각 제한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가격 변동 폭도 12%에서 15%로 올리는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한 종합 지원책도 포함됐다. 다방면의 지원사격이 망라된, 말 그대로 ‘종합 선물세트’인 셈이다.

불황 탈출, 일자리 창출 두 토끼 잡기

이번 정책의 배경에는 대내외 여건을 감안한 정부의 깊은 고민이 배어 있다. 무엇보다 쓸 만한 카드는 다 썼지만 회복되지 않는 경제 여건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내수 회복과 경기 진작을 위한 각종 묘약들을 투입했다. 서비스업 활성화 대책, 일자리 창출 방안과 부동산경기 회복 정책 등 이른바 ‘한국형 뉴딜’ 정책들이 잇따라 쏟아졌다. 그럼에도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체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벤처산업에 ‘베팅’해 불황 탈출과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배경이다. 간담회 자리에서 김석동 금융정책국장이 “벤처 자체가 고위험·고수익인 만큼, 벤처정책도 함께 모험한다”고 설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990002%% ‘벤처’란 말 속에 배어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미 벤처산업은 한 번의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5년 전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대안으로 벤처산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벤처기업수를 늘리는 데 주력한 결과, 거르지 않은 ‘얼치기 벤처’가 속출했다. 경쟁력 없는데도 시장에서 빨리 퇴출시키지 않고, 자금지원을 통해 목숨을 연장하면서 죽지도 못하는 ‘강시벤처’들이 유령처럼 업계를 떠돌기도 했다. 머니게임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게이트’ 시리즈가 잇따라 터지고, 선량한 개인 투자자들은 빈 지갑을 손에 들고 망연자실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금액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부의 대책이 발표된 직후 “또다시 벤처냐”는 비아냥거림이 곳곳에서 터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정부로서도 또다시 ‘벤처카드’를 꺼내드는 데 부담을 많이 느끼는 눈치다. 지난번처럼 ‘묻지마 투자’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주가 조작이나 분식회계, 허위 공시 등 중대한 증권 범죄를 저질렀다고 코스닥위원회가 인정할 경우 바로 퇴출하도록 한 것이나, 돈을 안겨주는 직접적인 지원책 대신 창업 보증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그러하다. 이번 정책 수립과정에서 전담팀(TFT)에 참여했던 한정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n분의 1’처럼 골고루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옥석을 가려 집중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에 무게를 실었다”고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벤처라고 해서 무작정 돈을 뿌리지는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덕적 해이, 시장 정화기능으로 막겠다”

그럼에도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번에 새로 도입한 패자부활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실패한 기업인에 재기 기회를 주는 것이 또다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떤 과정을 거쳤든 시장에서 실패했으면 그 기업은 그만큼 위험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인데, 개인을 회생시켜 주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책임 없는 행정”이라며 “아무리 신용과 조사를 보강한다 해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벤처기업 상무는 “업계에서는 ‘50살 먹은 사람이 앞으로 몇 년 더 사업한다고 재기를 지원해 주겠느냐’는 뼈 있는 농담도 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높다. 박기호 LG벤처투자 상무는 “현업에 종사하면서 실패를 통해 노하우와 기술을 축적하는 수많은 벤처기업가를 만났다”며 “실패 위험이 높은 벤처기업의 특성상, 옥석을 가려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수십조원의 돈을 노린 브로커가 등장한다는 우려가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설사 그런 음성적인 방법으로 재기하거나 창업한 기업들이 있다 칩시다. 요즘 시장이 얼마나 냉정하고 정확한지 아십니까? 속이 알차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에 올라갈 수는 있어도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미 5년의 경험을 통해 시장이 정화기능을 갖췄기 때문이죠. 예전처럼 벤처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정보가 없던 시절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요즘은 한 다리만 건너면 이 바닥 기업들 정보가 정확히 들어와요. 그러니 누가 얼치기 벤처에 투자를 하겠어요?”

패자부활제를 처음 중소기업청에 제안한 한정화 한양대 교수의 설명도 귀기울일 만하다. “2003년에 중소기업청과 함께 벤처기업 실패 사례를 조사했는데요. 분석과정에서 실패한 1만여개 벤처기업들이 재기를 통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중소기업청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실제 외국의 성공 사례들을 보며 마음을 바꿨어요. 벤처란 게 원래 위험이 높아, 10곳 가운데 1곳만 성공해도 제대로 됐다고 보는데, 실패한 벤처들을 보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창업을 꺼리잖아요. 이들이 점점 안정된 직장만 찾는다면, 10년 뒤에는 아무도 도전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이부호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나설 것이 아니라 시장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며 “투자자가 책임지고 감시·선택·지도하고, 정부는 보조수단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패자부활제에 대해서도 그는 “사람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금융 인프라를 중심으로 구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기호 LG벤처투자 상무도 “총론 면에서는 정부의 활성화 대책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진단하면서 “정부는 시장의 정화력을 믿고, 투명한 공시와 추적 감시를 통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면 된다”고 간접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참에 벤처 지원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나온 정부의 벤처정책은 엄격히 말해 벤처정책이 아니라 중소기업정책”이라며 “지금처럼 기업 연한이나 덩치를 중심으로 벤처를 구분하는 것은 벤처에 대한 정의조차 모르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벤처정책도 세계 시장을 선도할 우수 기업들을 산업군으로 묶어, 각각의 특성에 맞는 과감한 지원을 해주는 식으로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책 수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행과정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말하자면 패자부활제가 약이 될지 독일 될지의 여부도, 얼마나 옥석을 잘 가리고 공정하게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제도를 앞세워 벤처산업 활성화의 불을 댕겼다. 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은 시장과 정부의 투명한 운영 여부에 달려 있다. 이희욱 기자 asadal@economy21.co.kr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의 주요내용

* 벤처활성화
코스닥 상장 뒤 순익 30% 법인세 과세 이연
코스닥 상장 때 기술력 인정되면 자기자본이익률(ROE) 5% 등 수익성 요건 제외
기술신용보증기금 3년간 10조원 보증 지원
중소기업 모태펀드 1조원 조성, -제3시장 진입 기준 중 외부감사 의견 조항 제외

* 코스닥 활성화
하루 가격변동폭 12%→15%로 확대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지분율 3% 미만→5% 미만으로 확대
공모주의 일반과 기관 몫을 각 40%로 확대
최대주주의 상장 뒤 매각 제한 1년→6개월로 단축

* 코스닥 퇴출 강화
관리종목 지정 사유에 반기 100% 이상 자본잠식 요건 추가
퇴출 유예기간 1년→6개월로 단축
주가 조작, 분식회계, 허위 공시 등 중대 범죄 인정되면 퇴출

* 제3시장 활성화
벤처기업 소액주주 양도소득세 비과세 추진
매매체결 방식, 상대매매→제한적 경쟁매매 전환 추진
패자부활제 추진, 신용회복자에 한해 도덕성, 사업성 평가 통해 신규 보증(보증 경력자는 3년 경과 뒤 가능)

자료 : 재정경제부, <한겨레>에서 재인용



코스닥시장의 반응은 썰렁도 하여라

“부실기업부터 솎아내야” 한 목소리…기관투자자 참여 확대가 더 절실

투자설명회 얘기를 잠깐 해보자. 새해를 며칠 앞둔 12월 어느 날 아침 8시에 조금 못미친 시간. D증권 스몰캡(시가총액 기준 소형 종목)팀의 A 팀장과 같은 팀의 B 연구원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었다. 여의도 대한투자증권 본사에서 열린 증권사 주최의 투자설명회에 강사 자격으로 참여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이날 투자설명회 주제는 ‘2005년 코스닥, 어떤 종목을 사야 하나’였다. 설명회가 있기 바로 전주 말, 정부에서 벤처 및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터라 A 팀장과 B 연구원은 내심 넘쳐나는 청강생들과 그들이 쏟아낼 질문들이 두려웠다. 예정된 시간인 8시를 조금 넘겨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들 눈앞엔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 넓은 곳에 달랑 2명만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점심, 기자와 만난 A 팀장은 “정부의 벤처활성화 방안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고서야 뾰족하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개인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코스닥의 현실”이라고 힘없이 이야기했다.

이처럼 코스닥시장을 바라보는 개인 투자자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는 비단 개인 투자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증권사 코스닥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하다. 이들 역시 정부가 발표한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주가 상승이나 주식 거래대금 증가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 1999년 이후 4차례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발표됐으나 그때마다 주가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조병문 LG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로 보았을 때 4차례의 대책 발표 후 한 달간 코스닥지수가 절대수익률, 상대수익률(종합주가지수 대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3차례나 됐다”며 “현재 코스닥시장의 주력인 개인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가 여전히 저조한 상황에서 이번 발표 이후에도 거래 활성화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정부에서 진입 기준을 완화해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라면 당연히 퇴출 기준을 강화해 많이 들어오는 만큼 자격에 미달되는 곳은 과감히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더러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물속에 새 물을 자꾸 퍼붓는다고 해서 그 물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며 “기존 기업들 사이에서 옥석 가리기가 먼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번 대책을 통해 관리종목 지정사유 확대, 관리종목 지정 후 퇴출까지의 유예기간 단축 등 조기퇴출제도를 강화했음에도 부실 기업을 솎아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얘기다.

등록요건 완화를 놓고서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 시장 분석가들이 많다. 신성호 우리증권 상무는 “철저한 검증을 받지 못한 벤처가 수월하게 진입한다면 가뜩이나 신뢰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코스닥시장에 역효과만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 분석가들은 코스닥 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일관된 추진 외에 기관 투자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코스닥시장은 절대적인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단기 매매 성향이 많은 개인 투자자의 매매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수급상의 미숙아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에게 시장 참여 메리트를 제공해 주는 방안도 함께 정부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연기 기자 ykkim@economy21.co.kr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