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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자금, 월평균소득 3~6배가 적당
부채비율은 자산의 20%넘지 않아야 새해가 되면 스포츠센터에는 어김없이 회원들이 늘어난다. 새해 새 마음으로 건강관리를 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운동이라도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지 않으면 헛일이 되기 십상이다. 약이 되기는 커녕 병을 주기도 한다.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남들처럼 무턱대고 몇 억 모으기 등 무리한 목표를 세워 따라하다 되레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재테크를 하기 전에 우선 씀씀이와 벌이 등 우리집 살림살이의 건강상태부터 진단해 봐야 한다. 마치 운동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몸상태부터 확인해 보는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은 가계의 재정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첫 단계로 자산현황표와 현금흐름표부터 만들어 봐라고 권한다. 자산현황표에 현재의 자산과 부채를, 현금흐름표에 소득과 지출을 정리하는 것이다. 강우신 기업은행 재테크 팀장은 “기업살림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통해 점검하듯 가정살림도 기초 재무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복잡하지만 결코 어렵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작성된 자료를 바탕으로 가계의 건강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성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등이 지난해 10월 소비문화연구회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의 재무상태도 기업처럼 안정성, 성장성 등을 기준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안정성은 만일의 사태에서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 성장성은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지표이다. 저축비중, 월평균소득 30% 바람직 안정성을 점검해볼 수 있는 지표에는 금융자산을 월평균 생활비로 나눈 비상자금 지표, 월평균 보험료를 월평균소득으로 나눈 위험대비 지표 등이 있다. 전체 부채를 전체 자산으로 나눈 부채부담 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성장성 지표로는 연간 저축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저축성향 지표와 자산 중 주식.채권 등의 투자 비중을 나타낸 투자성향 지표 등이 있다. 성영애 교수는 “표본자료가 약간 오래 됐지만 가계의 재무상태가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지표를 바탕으로 일반 재무상담에 활용되고 있는 여러가지 기준을 보완하면 좀더 유용한 분석이 될 수 있다. 아울러 통계청이 발표하는 도시 근로자가구의 가계수지 동향 자료를 활용하면 요즘 서민 가정의 재정상태에 견줘 자신의 가정살림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자산현황표와 현금흐름표를 만들어 재정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로 살펴보자. 회사원 윤도영(35·가명)씨는 부인과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두 자녀와 함께 사는 외벌이 가장이다. 윤씨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재 가정의 재무상태를 자산현황표와 현금흐름표에 정리해 보기로 했다. 주식등 투자는 총자산의 10%로 먼저 종이 위에 티(T)자를 쓰고 왼쪽에는 자산, 오른쪽에는 부채를 적었다. 자산은 크게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으로 나눴다. 먼저 금융자산으로 수시 입출금 예금통장의 잔액 200만원, 청약부금 적립액 240만원, 보험 추정 해약환급금 210만원 등을 써 넣었다. 부동산자산으로 지방에 사둔 소형아파트의 시가 7천만원을 적었고 기타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임대보증금 3500만원을 적었다. 티자의 오른쪽에는 부채를 써 넣었다. 집담보 대출금 잔액 1200만원, 마이너스 대출금 잔액 500만원, 지방 아파트 임차보증금 3천만원과 동생 보증을 서 준 돈 500만원을 포함시켜 정리했다. 왼쪽 자산 합계 1억1150만원에서 부채 5200만원을 뺀 잔액 5950만원이 윤씨의 현재 순자산이다. 표 마지막 항목으로 순자산에 부채를 합치면 오른쪽 자산합계와 금액이 같아진다. 다음으로 버는 돈과 나가는 돈, 그리고 남는 돈이 얼마인지를 보기 위해 한 달을 기준으로 현금흐름표를 작성했다. 역시 티자를 그려 왼쪽에는 월평균 수입 217만원을 쓰고 오른쪽에는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나가는 청약부금 10만원, 보험료 17만원, 대출이자 39만원, 생활비 및 용돈 91만원, 자녀교육비 60만원 등을 지출성격에 따라 나눠 정리했다. 다음 단계로 윤씨는 재정상태가 얼마나 건강한 편인지 재무상담에 활용되고 있는 지표를 참고해 따져 봤다. 우선 안정성 분야에서 자산에 견줘 부채비율이 45%로 높아 좋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로 빚은 부동산 관련 부채를 포함해 전체 자산의 20%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교통사고나 갑작스러운 실직 등으로 수입이 일시적으로 끊겼을 때 현재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비상자금 준비도 월평균 소득의 2.9배로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비상자금 지표는 금융자산을 월평균 가계소득으로 나눠 계산한다. 대개 3개월에서 6개월의 생활비를 예비자금으로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급여가 정기적이고 안전하다면 3개월 정도, 그렇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나 회사사정으로 급여가 부정기적이라면 6개월정도의 예비자금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적당하다. 윤씨는 그나마 안정성지표 가운데 위험대비는 최저 합격선에는 들었다. 큰 사고나 위험에 대한 준비로 내는 보장성 보험의 소득 대비 비율이 7.6% 가량 나왔다. 보장성 보험료는 월평균 소득에서 7~10% 정도가 적정한 수준이다. 윤씨는 안정성 분야에서는 부채부담이 좀 높았지만 비상자금, 위험대비는 그런대로 적정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장성 분야를 점검하면서 윤씨는 ‘경고’ 수준의 성적표를 받았다. 소득에 견줘 저축액수도 적고 미래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윤씨의 저축은 청약부금에 월 10만원을 넣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주식이나 채권 등에도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 대개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가구의 저축률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 20∼30% 수준이다. 또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자산은 전체 자산 가운데 10~15% 정도가 적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윤씨 가정의 재무상태는 현재 생활에 급급해 경제적 위험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앞으로 경제 성장을 위한 디딤돌은 전혀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그래도 윤씨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문제점을 정확히 알았으니 미래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여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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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이코노미21> 기자 hslee@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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