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의 역내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긴급 유동성을 지원해 주는 공동 펀드인 일명 `아시아통화기금(AMF)' 출범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공동 펀드가 실제로 출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펀드 규모 등 총론에서는 회원국간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기금 조성을 위한 분담금 비율과 의사 결정 방식 등 각론에선 아시아 주요국들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 800억 달러 공동펀드 조성 합의 = 4일 오후(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1차 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공동 펀드 규모를 최소 800억 달러 이상으로 하되, 3국과 아세안 국가간 80:20 비율로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3국은 최소 640억달러, 아세안 국가들은 160억달러를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회원국들은 그동안 2000년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된 역내 상호자금 지원 체제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해 5월 일본에서 열린 회의에선 각 국의 외환보유액을 공동 출자해 금융 위기 때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동 펀드를 조성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또 기존에 개별국가간 계약에 의존하던 `양자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회원국 모두가 참여하고 법적 구속력까지 갖춘 단일의 다자간 협약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펀드 규모를 확정했으며 자금 지원 조건도 리보 금리에 1.5∼3%포인트를 더한 수준에서 지원키로 합의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매우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쳐 설립된 데 비해 아시아 공동펀드 설립 논의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공동펀드는 IMF와 별개가 아닌 보완적 성격을 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펀드가 설립되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경우 역내 회원국간 신속한 자금 지원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헤지펀드 등 역외의 공격적 투자자들에게 `먹잇감'으로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펀드 설립까지 `산 넘어 산' = 하지만 공동 펀드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중.일 3개국이 분담금을 얼마나 낼 것인가 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분담금 비율이 클 수록 의사결정시 투표권 지분도 많아지기 때문에 서로 더 많은 돈을 내겠다며 물밑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종의 주도권 확보 경쟁인 셈이다.
일본은 중국에 비해 경제력에서 우위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고,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의 정치적 위상과 구매력 등이 앞선다고 주장하며 가장 많은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도 일본,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름의 지분 확보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컨대 주식회사 설립을 위한 자본금 규모는 정해졌으나 누가 대주주가 되느냐를 놓고 싸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의사결정 방식을 놓고서도 각 국간 의견차가 크다. 한국은 자금 지원을 결정할 때 다수결 원칙을 따를 것을 주장한 반면 일부 국가는 만장일치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관리관은 "현재로선 펀드 설립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면서 "오는 6월부터 의사결정방식, 자금조성방안 등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슈들과 구체적인 협정문 작성에 필요한 법률적 사안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내년에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국으로, 펀드 설립 논의에 한층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 (마드리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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