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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4 19:31 수정 : 2008.05.15 01:31

삼성전자 사장단 구성

윤종용 퇴진 ‘충격’ 고참급 사장들 용퇴 고민
‘이윤우, 카리스마 부족’ 이건희 영향력 촉각

삼성전자, 이윤우 체제로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의 퇴진으로 삼성그룹 내에서 ‘최고참급’ 두 최고경영자(CEO)가 한꺼번에 물러나며, 삼성그룹 내 ‘이건희 회장 세대’라 할 수 있는 2세대의 퇴진이 가시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세대 퇴장 윤 부회장의 퇴진은 그룹 안팎에서도 약간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그룹 70주년을 맞아 윤 부회장이 퇴진하고 새로운 세대가 전면 배치될 것이란 말이 있어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 그룹의 급변 속에, 재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는 상징적인 인물을 물러나게 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삼성전자나 전략기획실 쪽은 윤 부회장이 극구 사임을 고집했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윤 부회장은 스스로 이건희 회장 세대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고참 시이오 2명이 자진 퇴진하면서 4∼5명에 이르는 다른 고참급 사장들도 개인적으로 용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망들도 조심스레 나온다. 연말께나 내년 초에 또다시 사장단 물갈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과도기인가 새 체제인가 이윤우 부회장의 기용에 대해선 ‘의외’와 ‘합리적 선택’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윤 부회장의 ‘장기 집권’ 속에 이 부회장은 대외협력담당을 맡으면서 ‘경영 핵심에선 비켜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의 총괄 대표이사 기용에 대해 “큰 조직을 이끌 리더십을 두루 갖추고 있어 초일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전략 추진의 적임자”라고 말했지만, 정보통신·엘시디·가전 등을 아우르는 삼성전자에서 ‘너무 강한’ 반도체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부담이다. 외부에선 “합리적이고 온화하며 따르는 직원들도 많지만 삼성전자를 이끌기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지금 총괄들 가운데 한 명만 발탁하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라는 반응도 있다. 결국 이 부회장이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에 따라 그의 체제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전망이다.

사장단 내 경쟁도 관심이다. 황창규 사장이 이번에 반도체총괄에서 기술총괄로 폭을 넓힘으로써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윤 부회장의 퇴진에 따라 황 사장을 포함해 정보통신총괄인 최지성 사장, 경영지원총괄인 최도석 사장 등의 ‘포스트 시이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영향은? 삼성전자나 전략기획실 쪽에선 이번 인사가 철저히 계열사별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임을 강조했다. 이날 발표도 계열사별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윤우 부회장의 경우, 1976년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할 때 과장을 맡아 80년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이끌 때 공장장으로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라 이건희 회장의 신임도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삼성화재 지대섭 신임사장은 79년 제일모직에 입사해 삼성화재·삼성전자의 기획관리, 경영지원 등을 도맡아온 ‘제일모직 경리부 출신’ 인물 가운데 하나다. 이날은 또 현명관 전 회장이 삼성물산 상근고문으로 복귀한다는 소식도 전해져 이건희 회장의 의중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삼성그룹 각 계열사는 이르면 15∼16일께 임원 승진인사를, 5월 말까지 조직개편과 보직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물러난 윤종용 부회장
혁신 몰고다닌 ‘카오스 메이커’
삼성전자 급성장 발판 만들어

윤종용 부회장
“지금이 위로부터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윤종용 부회장은 14일 오후 4시 넘어 급작스레 수원 본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 설문조사에서 ‘이상적인 자녀상’ 1위로, 윤종용 같은 자식을 낳고 싶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전문경영인의 간판스타였다.

지난 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그룹에 입사한 윤 부회장은 77년 삼성전자 도쿄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80년대 8개 사업 부문을 거치며 그는 ‘야전사령관’으로 일컬어지게 됐고 삼성전자 가전대표와 삼성전기, 삼성전관, 일본 삼성을 거쳐 97년부터 삼성전자 대표직을 맡아왔다.

그는 외국 언론으로부터 ‘미스터 크라이시스’ ‘카오스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끊임없이 위기를 부르짖으며 임직원을 독려해오고 끊임없는 ‘혼돈’(혁신)을 주장해온 ‘경영혁신 전도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 때 중용됐던 사람을 끝까지 중용한 건 윤 부회장과 이수빈 회장 정도였다”라고 그룹 관계자들이 말할 정도로, 이건희 회장의 신임도 돈독했다. 또 메모광이자 해박한 역사지식을 갖고 있는 시이오로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건희 회장·이학수 부회장에 이어 윤 부회장의 퇴진으로 ‘총수-전략기획실-테크노 시이오’라는 삼성의 삼각편대의 상징은 모두 물러나는 셈이 됐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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