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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대신 빚 독촉 전화만 늘었죠”
안정·수익 치우쳐 성장 뿌리 외면 “은행들이 중소기업 지원을 늘린다는 언론보도를 봤는데,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과 하나도 달라진게 없어요. 어려운 사정에도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아왔는데, 신규대출은 고사하고 이달 안에 갚아야 하는 3억원의 만기연장도 거부됐어요.” 경기 안산에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금형을 만드는 ㅅ금속 이아무개(56) 사장은 요즘 은행에서 일주일에 몇번씩 빚 독촉 전화를 받는다. 중소 자영업자들은 더욱 심각하다. 전북 익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51)씨는 지난해 점포를 개조하기 위해 가게를 담보로 빌린 2억원을 갚지 못해 최근 은행으로부터 담보를 경매에 넘기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반면 안정적인 대기업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거나 수출 실적이 좋은 일부 중소기업들에는 은행들이 좋은 금리조건을 제시하며 대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들의 안정성 위주 대출 관행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중소기업에 돈이 안간다=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자금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235조6292억원으로 전달보다 6조2천억원이나 줄었다. 이는 한은이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99년 1월 이후 월간으로 최대의 감소폭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해 8월 6382억원이 줄어든 뒤 추석을 앞둔 자금 지원 영향으로 9~10월 증가하기도 했으나 11월 들어서 9661억원이 줄면서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가계대출 잔액은 275조3598억원으로 전달보다 9732억원 늘었다. 전년 말에 견줘보면 가계대출은 무려 22조5098억원이 늘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7조원 증가에 그쳤다. 가계대출 중에서는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16조2711억원이나 늘었다.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위험도가 큰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대신 담보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에는 각종 특판 상품을 내걸고 대출 세일을 벌여왔다. 한은 쪽은 “결산을 앞두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기업들의 부채 상환이 늘어난 특수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감소폭이 두드러진 것은 은행들의 보수적인 대출 태도로 자금흐름의 편중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의 자금 중개기능이 나빠지면서 자금지원이 절실한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성장의 기회조차 잃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가 나서서 은행들에게 중소기업 대출을 독려하자, 은행들은 앞다퉈 몇천억~몇조원까지 중소기업 지원을 약속했지만 말뿐인 경우가 많다. 지원대상을 보면 어김없이 신용등급 우량업체라는 말이 붙어있다. ■ 은행들만 돈 번다=국내 시중은행들은 수익 위주의 경영성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우리, 하나, 국민은행 등 ‘빅3’가 순이익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에서 당기순이익 1조원을 넘는 곳이 한꺼번에 3곳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우리은행은 1조1천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2년 연속 1조원대 순익을 올렸으며, 하나은행은 전년보다 2배 늘어난 1조5천억원, 국민은행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이밖에 신한은행도 전년보다 순익이 2배 늘어난 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예대마진이 줄어들었음에도 은행들이 큰 수익을 낸 것은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 증가도 있지만 얼마나 자금을 안정성 위주로 운용왔는지를 보여준다”며 “이제 금융시장의 과제는 부실 탈피가 아니라 자금흐름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점포장도 “최고 경영자에 대한 평가, 직원들의 근무 분위기, 사업전망 등 수치화가 불가능한 평가항목에 대해서는 일선 영업점이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음에도 여신심사가 본점에 집중되면서 가능성 있는 기업이 사장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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