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묶어놓기 더 이상 힘들어
민간업체 요금도 도미노 상승 전망
(서울=연합뉴스) 재경팀 =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음에 따라 정부가 정책의 최대 목표를 물가관리 쪽으로 한 걸음 옮겨 잡았으나 오히려 그동안 묶어 놓았던 공공요금 마저 봇물 터지듯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워낙 거세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물가대책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공요금은 확실하게 억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전기요금이나 버스요금 등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서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교통, 먹거리, 주택 등의 가격도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자유롭지 못해 들썩거리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리하는 공공요금을 현실화할 경우 가계부담 가중→임금인상 요구→기업 제품가격 반영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하반기 에너지.교통요금 오를 듯
1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물가 안정 차원에서 동결했던 전기요금을 하반기에는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기요금은 작년 7.6%, 올해 상반기 5.5%의 인상 요인이 있어 인상률이 두 자릿수가 될 수도 있다.
LPG 수입업체인 E1과 SK가스는 내부적으로 이달부터 LPG 공급 가격을 올리기로 확정하고 인상 폭을 저울질 중이고 이들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수입 원유를 정제해 LPG를 만드는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가격을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도시가스(LNG)는 20% 이상의 인상 요인이 있다"고 말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변동이 없는 도시가스 가격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버스와 택시 등 교통요금도 인상 압박을 받으면서 정부도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현재 시외버스가 대당 월평균 300만~400만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며 요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더 묶어 놓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오는 8월까지는 가격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버스요금이 인상되면 LPG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택시의 요금 조정도 불가피해진다. 전국 533개 버스운송 사업자 모임인 전국버스연합회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최근 경유가 급등으로 버스 운행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한계점에 도달했다"며 "유가 인상에 따른 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선 감축 등 자구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회는 이날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경유를 사용하는 노선 버스의 유류세 환급, 면세를 요구하면서 6월 중 유가 인상분을 반영해 버스 운임을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오일쇼크 수준의 국제유가 급등세로 물가상승 압력이 심해지는 마당에 그동안 미뤄뒀던 공공요금 인상까지 이처럼 한꺼번에 해치울 전망이어서 국민에 대한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공공요금도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요금이 무너지면 여기저기서 오를 전망이다. 부산시는 3년 간 동결된 택시요금과 지난해 준공영제 시행으로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 시내버스 요금을 올 하반기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지난 달 27일 밝혔다. 일부 지자체에서 지방 공공요금을 인상하게 되면 다른 지자체들도 봇물 터지듯 동결해왔던 공공요금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택시, 시내버스, 상하수도, 쓰레기봉투 등 일상 생활과 직결돼 있는 지방의 공공요금 상승에 따른 서민들의 충격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 민간 업계 요금 더 통제 안돼 정부가 일정한 영향력 아래 둘 수 있는 공공요금이 무너지는 마당에 민간이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더욱 막기 힘들 전망이다. 고유가에 따른 물류비 증가와 밀가루 등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과자, 빙과류, 음료, 위스키 등 주요 식품값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최근 오리온 '초코송이'와 '초코칩쿠키'가 각각 500 원에서 600 원, 1천 원에서 1천200 원으로 올랐고 지난 2월 2천600 원 하던 농심 신라면 120g, 5개짜리 묶음 제품이 3천 원 안팎으로 상승했다. 빙그레, 롯데, 삼강,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의 업체가 빙과류 가격을 개당 200 원 정도 올리는가 하면 주류업계, 제약업계에서도 조만간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이달부터 단품 슬라이딩제도가 도입돼 정부가 그동안 각종 규제정책을 동원해 묶어두었던 주택 분양가도 오를 전망이다. 단품 슬라이딩제도는 자재가격을 반영해 6개월마다 건축비를 조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가격이 급등한 폼목은 6개월이 되기 전이라도 올려 주는 제도로 최근 철근, 레미콘 등 건설 자재가격이 급상승해 정부로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이 제도는 결국 건설원가를 현실화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에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 같은 전방위적 물가상승은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특히 밑바닥 경기부터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는 상승하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상무는 "정부가 성장에서 물가 중심으로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이르고 앞으로 외환시장에서 움직임을 봐야 입장 변화가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라면서 "지금은 물가가 성장보다 훨씬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같은 경기여건에서 환율마저 올라 국민의 실질적인 소득을 깎아 먹으면 내수가 더 죽게 될 것이므로 감세와 추경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G경제연구원의 신민영 연구위원도 "정부가 물가에 좀 더 관심을 쏟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재는 유가.원자재 등 외생 변수가 큰 문제인 만큼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생산증가율이 둔화하는 것이지 생산이 둔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반기에는 수출 둔화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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