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2 18:43
수정 : 2008.06.02 18:43
|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 보기 /
방송통신위원회가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가 또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휴대전화 요금 인하 방안을 찾고 있고, 이동통신 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유가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생필품 가격은 물론이고 공공요금까지 올라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추진한다고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김’ 빠지는 소리도 들린다. 방통위와 이동통신 업체들이 결합상품의 요금 할인 폭 확대를 요금 인하로 포장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최근 인가 심사가 생략되는 결합상품의 요금 할인 폭 기준을 10% 안에서 20% 이내로 확대했다. 방통위는 케이티(KT)와 에스케이텔레콤(SKT)이 새 지침을 반영한 결합상품에 대한 인가를 신청해왔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지난해 정보통신부는 ‘쏠림현상’과 ‘지배력 전이’ 가능성을 내세워 결합상품의 요금 할인 폭을 10% 이내로 제한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휴대전화와 초고속인터넷·집전화를 함께 이용하고 있다. 세 가지를 묶은 결합상품의 요금 할인 폭을 키우면, 숫자상으로는 가계 통신비 부담이 줄어든다. 문제는 세 가지를 다 한 업체 것을 쓰고 있어도 ‘결합상품 신청’이란 절차를 밟아야 요금을 할인해 준다는 점이다. 이게 ‘장벽’으로 작용해, 결합상품의 요금 할인이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케이티가 초고속인터넷·집전화·휴대전화를 묶은 결합상품을 내놓은 지 1년 가까이 되지만,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650여만 가운데 결합상품 신청자는 1%도 안 된다. 케이티는 약정할인까지 포함하면 할인 폭이 30% 가까이 된다고 선전하지만,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 완화 효과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를 본따 방통위를 만들었다. 미국연방통신위원회 정책의 화두는 ‘에코시스템’(생태계)과 ‘네트워크드 디지털 인더스트리’(모든 산업을 디지털화해 네트워크 하는 것)이다. 생태계를 살려 정보통신뿐만 아니라 장비와 콘텐츠 같은 전·후방 산업까지 골고루 경쟁력을 가지면서 발전하게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존 사업자의 팔다리를 자르거나 기득권을 빼앗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방통위가 미국연방통신위를 모델로 삼는다면 통신요금에 대한 정책부터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 요금 가운데 가입비와 기본료는 이용자들에게 크게 불리하게 돼 있어,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시민단체들이 요구해온 대로, 가입비를 무료화하거나 실비 수준으로 낮추고, 기본료도 6천~7천원 수준으로 대폭 떨어뜨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통화료를 올릴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명박 정부가 통신요금 인하를 외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번번이 말을 꺼냈다가 기득권을 가진 사업자들의 저항과 논리에 밀려 꼬리를 내렸다. 이번에도 ‘말로만’으로 끝내거나 결합상품 할인 폭 확대 따위로 때우려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동화 ‘늑대와 소년’에서의 양치기 소년과 다름없게 된다. 방통위 역시 제구실을 못할 바에는 혈세 축내지 말고 문을 닫으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
js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