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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 상승시 매출액영업이익률 감소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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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탄 맞은 석유화학업체 공장 일부 문닫고
항공사 임금동결에 무급휴직…물류업체 고전
업계 “원가 상승보다 소비심리 위축 더 걱정”
국내 중견 플라스틱업체인 ㄱ사는 지난 1일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협력사에서 가동해오던 60대의 사출기를 3분의 1수준으로 줄였다. 본사 생산라인 인원도 재고품 포장 업무로 전환배치했다. ㄱ사 관계자는 “일감이 없어진 우리 협력사를 포함해 관련 업계에서 폐업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으로 수출되던 컨테이너 물량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유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되다 보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은 석유화학제품이 주원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일부터 급여 없이 6개월간 쉬는 순환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10일이 마감인데 100여명 정도가 신청할 것으로 회사 쪽은 예상하고 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외환위기나 9·11 테러 당시 만들었던 위기 상황 시나리오에 맞춰 대응책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살인적 고유가의 파장이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항공, 석유화학 등 직접적 충격을 받는 업종을 넘어 자동차, 전자, 여행, 유통 등 업계 전반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고유가→고물가→실질소득 감소→소비위축→기업실적 악화→경제침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임금동결·감산·연료절감운동 … 할 수 있는 건 다=기름이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 해운, 석유화학, 물류업체 등은 이미 빈사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국제선의 경우 손익분기점을 가르는 탑승률이 70~75%인데, 지금은 탑승률이 90%인데도 적자”라며 “이미 3월에 임금동결을 했고 더이상 자구노력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7~8월이 지나면 추가 노선감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석유화학업체들도 치열한 국제 경쟁 때문에 유가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모두 전가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삼성석유화학은 결국 지난달 29일 울산 1공장(연산 20만톤) 가동을 중단했다. 석유화학제품을 사다가 플라스틱 용기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들 경우 폐업하는 업체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공차율(차가 짐없이 운행하는 비율)을 낮추고 급발진, 급정거, 공회전 금지 등 유류절감 운전법을 직원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 고유가를 상쇄하긴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 유가가 오르면 모든 게 오른다=원유나 석유제품의 사용비중이 높지 않은 기업들도 고유가가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류비, 공장가동비용 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가격 인상에 나서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엘지생활건강은 지난달 중순 세제 가격을 10% 정도 인상했다. 주력상품인 ‘테크’(3㎏)의 경우 1만2400원에서 1만3700원으로 올랐다. 세제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가 석유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엘지생활건강 관계자는 “1년 전에 비해 계면활성제 가격이 50%나 올랐다”며 “세제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자들의 저항이 심하기 때문에 되도록 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는 비행기로, 다른 제품은 배로 나르는데 모두 운임이 크게 오르고 있다”며 “이런 요소들이 제품 판매가격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항공료와 국내외 여행상품 가격은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이미 많이 오른 상태다. 추가 인상도 확실시되고 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하나투어 같은 상위업체들은 그나마 현상유지 정도는 하고 있지만 영세업체들은 이미 상당부분 고객이 감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더 무서운 것은 소비 침체=유통업체처럼 유가 민감도가 낮은 업체들도 우려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고유가는 고물가와 소비심리 위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고유가가 직접적으로 실적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아직 없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생활용품업체 관계자도 “사실 원가 상승보다 더 걱정인 것은 내수가 완전히 가라앉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옥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런 식의 고유가가 계속되면 기업들의 원가부담 때문에 또 한차례 연쇄적인 판매가 인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고물가가 금리인상, 주가하락 등과 겹치면 소비심리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소비심리 위축을 초래하기 때문에 수출업체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민천홍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에서 휴대전화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피시 구매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이머징 마켓이 탄탄했는데 지금은 중국 쪽 수요도 안전하다고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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