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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2 09:55 수정 : 2008.06.22 09:55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최근 몇 년새 시중에 돈이 급격하게 풀린 이유는 은행권의 대출경쟁 탓이다.

은행 대출을 통해 시중에 나간 돈은 다시 은행 예금이나 주식형 펀드 등으로 유입되면서 전체 통화량을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

지난 2년간 은행들의 전쟁터는 기업대출 쪽이었다. 2006년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출 규제 이후 주택거래시장이 활기를 잃으면서 `전선'을 주택담보 대출에서 기업대출로 옮겨 뺏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여왔다.

은행들은 기업대출이 급증한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기업들의 운전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대기업의 인수합병(M&A) 추진으로 실탄이 모자라 은행에 손을 벌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대비 6.3%였던 반면 통화량(M2) 증가율은 11%를 웃돌았고, 이러한 현상은 올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실물 경제에 필요한 통화량보다 통화 증가 속도가 더 가팔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동안 자산경쟁에 몰두했던 은행들의 태도는 요즘 싹 바뀌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기업 대출의 부실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규대출을 자제하는 등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중소기업들은 은행들의 냉·온탕을 오가는 대출영업 행태 때문에 결국 자신들만 골탕먹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 대출 얼마나, 어떻게 늘렸나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국내 주요 4대 은행들의 중기대출 잔액은 작년 말 179조7천266억원에서 6월19일 현재 199조8천989억원으로 반년새 20조1천723억원이나 늘었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8조원 이상을 늘렸으며 신한은행은 4조7천억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3조5천억원과 4조원 가량을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우량 중소기업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출혈경쟁을 서슴지 않았다. 한정된 대출처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각 은행 지점에서는 고시금리보다 낮은 네고금리를 제시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몇 달 전 우량업체인 `ㅇㅇ산업'(기계부품제조업)은 A은행에 담보 및 신용대출 등 총 10억원을 연 8%대로 빌렸으나 B은행이 금리를 0.5% 포인트 낮춰 주겠다고 하자 주저없이 거래은행을 옮겼다.

A은행 관계자는 "어느 날 갑자기 B은행 직원이 와서 10억원을 갚아버린 뒤 고객 대출을 가져가버렸다"며 "완전히 눈뜨고 당한 격"이라고 말했다.

모 의류제조업체의 경우 기존에 15억원을 대출받은 C은행에 추가로 1억원을 더 요청했으나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다음 날 은행 대출을 모두 갚아버렸다. 다른 은행에서 16억원을 빌려줄테니 기존 대출까지 모두 가져오라는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중소기업 대출 담당자는 "한두달 전까지만 해도 우량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각 지점에서는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낮은 금리나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당장은 역마진이 나겠지만 향후 해당 기업과 거래를 트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은행 차원에서 중기대출에 대한 지점별 할당량이나 이익 목표를 과도하게 주다 보니까 일선 영업점은 어쩔 수 없이 출혈경쟁에 뛰어들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이제는 몸 사리는 은행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상반기 결산을 앞두고 연체율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 까지 `돈 좀 빌려가라'고 아우성을 치다가 이제는 빨리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다. 대출 심사도 깐깐해졌다.

국민은행은 최근 중소기업 대출의 내부 기준금리를 0.30%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내부 기준금리 상승은 영업점의 대출 금리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대출 억제 효과를 낸다.

국민은행은 또 연체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달 미만의 연체에 대해서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를 보내 상환을 독촉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건설.부동산, 숙박, 음식, 도소매업 등 경기에 민감한 특별관리업종들에 대해 본부 심사를 거쳐 대출을 승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가 민감 업종도 특별관리 업종에 편입시켰다.

신한은행은 영업점장 전결로 추가 제공할 수 있는 대출 한도를 절반 줄였고, 하나은행도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연체 중인 기업에는 영업 상황 등을 고려해 기한을 연장해 주고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 아파트 미분양 사태 등으로 부동산 담보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에 대비해 담보 위주보다 차주의 상환능력 위주로 대출 심사를 강화했다.

◇ 비올 때 우산뺏기 지적도

은행들은 최근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어 건전성을 강화하려면 대출 제한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은행권 중기 대출 연체율은 상각 규모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 전체 연체율은 작년말 0.74%에서 5월말 1.04%(잠정치)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에서 0.5%로 별반 차이가 없으나 중기대출 연체율은 1.0%에서 1.5%로 급등했다. 하나은행은 3월 말 1.54%에서 5월 말 1.71%로 뛰었고 신한은행은 1.11%에서 1.25%로 상승했다.

국민은행도 3월 말 0.71%에서 5월말 0.90%로 올랐으며 우리은행도 이 기간 0.97%에서 1.02%로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원화 약세와 원자재 값 급등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원가부담이 증가하고 경영상황이 악화하면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연체 관리에 주력하고 있고, 감독당국도 중소기업과 건설 등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늘어는 추세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중소기업들의 처지가 어려워진 가운데 갑작스럽게 대출을 회수하는 것은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소한섭 정책총괄팀장은 "은행의 연체율 관리와 금융당국의 은행 부실에 대한 우려 표명 등은 대출 옥죄기의 신호탄으로 보인다"며 "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난 시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들이 대출 회수에 나서면 중소기업의 부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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