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알에프텍의 노동자들이 휴대전화 충전기를 만들고 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도움으로 기술개발 및 경영혁신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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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벌린 입으로 새가 날아든다. 악어새는 악어 이빨 사이에 낀 고기조각을 빼먹고, 악어는 이빨 청소를 마친다. 이른바 ‘상리공생’의 전형이다. 우리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이처럼 ‘서로에게 득이 되는’ 상생의 길은 불가능한 걸까? ■기술협력에서 경영협력까지 =경기도 용인에 자리잡은 중소기업 ㈜알에프텍은 지난 99년 휴대전화 충전기(지엠에스방식)를 국산화하면서 대기업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우리의 시디엠에이(CDMA) 방식과 달리 지엠에스(GMS) 방식을 쓰는 유럽에 휴대전화 단말기를 수출하면서 이 방식의 충전기가 필요했다. 스웨덴에서 전량을 수입했지만 비싸고 느렸다. 삼성전자와 알에프텍은 관련 기술 정보를 교환하면서 기술개발에 주력해 국산화에 성공하는 개가를 올렸다. 결국 삼성은 빠르고 싸게 충전기를 구할 수 있게 됐고, 알에프텍은 없던 매출이 새롭게 발생했다. #사례 1-(주)알에프텍
휴대전화 GMS 충전기
삼성과 협력 국산화 성공
이후 새제품 꾸준히 개발
대기업에 안정공급 길터 물꼬가 트이자 협력은 계속됐다. 지난 2000년 알에프텍은 모토롤라 특허의 ‘순차충전 방식’ 충전기를 대신할 ‘동시충전 방식’의 새 충전기를 삼성과의 협력을 통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쪽 기술자들이 직접 공장을 방문했고, 알에프텍 기술자들도 구미의 삼성 연구소를 수시로 찾았다. 알에프텍은 지난 2001년 한 걸음 더 나아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텔레메틱스’ 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텔레메틱스는 차량 안에서 기존의 무선통신 장비(휴대전화)를 활용해 여러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휴대전화에 붙일 새로운 단말기가 필요하다. 이 회사는 불과 반년 만에 ‘텔레메틱스 단말기’ 개발에 성공해 현재 ‘네이트 드라이브’용 단말기(휴대전화와 별도)를 에스케이텔레콤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기술협력은 경영협력으로 이어졌다. 중소기업의 전통적 경영방식으로는 빠른 경영 환경변화를 따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알에프텍은 수주에서부터 최종 납품까지 모든 경영 과정을 전산화하는 ‘통합 정보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 삼성전자가 전문가까지 파견하면서 도움을 줘 비용을 1~2억원 절감할 수 있었다. 삼성의 지원은 단순히 협력업체에 대한 ‘배려’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삼성으로선 협력업체들이 각종 발주에 발빠르게 따라와줘야 할 필요가, 협력업체로선 경영 과학화를 위한 투자의 필요가 각각 맞아 떨어진 결과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본체를 새롭게 개발할 때마다 이에 맞는 최적 상태의 주변기기가 필요하다”며 “결국 서로가 도움이 되는 ‘윈-윈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기회를 줬다”=실린더블럭, 크랭크샤프트 등 자동차 엔진의 핵심 부품은 그냥 조립되는 게 아니다. 정밀 측정기로 마이크론(1/1000㎜) 단위까지 측정하는 전수조사를 거쳐야 그에 맞는 다른 부품이 조립된다. 이렇게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받드시 필요한 정밀 측정기는 몇 년 전까지 모두 수입에 의존했다. 측정기는 1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부품의 10여 군데를 정확히 재야 하는데, 그런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텔스타홈멜㈜에게 97년 외환위기는 기회였다. 외국의 기계 값이 갑작스레 오르자 현대자동차는 ‘시험 삼아’ 커넥팅로드 측정기 1대를 이 회사에 주문했다. 텔스타홈멜은 87년부터 일본에서 측정기를 수입해 공급하면서, 직원들을 일본에 연수시키는 등 관련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왔기에 주문을 따낼 수 있었다. 자동차 부품 측정기는 표준 기계가 아니라 대기업의 자동차 종류, 엔진 생산량에 따라 모두 다르게 만들어지는 탓에 철저히 대기업의 주문에 의존한다.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국산화한다 해도 대기업이 기술력을 믿고 쓰지 않으면 물거품이 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만약 측정기 성능이 잘못되면 자동차 생산 라인 전체가 서버린다”며 “이런 중요 기계를 국내 중소기업에 맡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기술력을 한 번 인정 받은 뒤로 조금씩 주문량이 늘어갔다”고 말했다. #사례 2-텔스타홈멜(주)
자동차부품 정밀 측정기
현대차서 시험삼아 주문
꼼꼼한 기술로 신뢰 쌓아
비용절감 대기업 계약 늘려 %%990002%%
현대차의 주문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텔스타홈멜은 99년 이후 실린더블럭 측정기(3억 짜리) 20여대를 만들어 현대차에 공급했다. 측정기의 국산화율도 초기 50%대에서 현재는 97%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측정기 국산화가 정착되자 이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됐다. 현대차는 비용절감(유지비용 포함)과 외국측정기 업체에 대한 교섭력이 커졌다. 텔스타홈멜 쪽은 일거리가 생기면서 국내에서 인정받는 측정기 회사로 우뚝서는 계기가 됐다. 이 회사 임병훈 대표이사는 “현대차는 우리에게 ‘기회’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줬다”며 “대기업들도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준다면, 중소기업들도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술 투자 등을 통해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마른 중소기업이 우물팠다 조선 기자재 생산 선보공업
이웃소싱 제안 공격적 수주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대기업이 일감을 줘야 공장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선보공업(주)은 대기업이 일감을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일감을 만들어 낸 경우다. 이 회사는 조선 기자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조선소)한테서 일거리를 받아 납품해 왔다. 그러다 지난 90년대 초, 배를 만들 때 좁은 장소에서 여러 공정이 동시에 이뤄져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공정 가운데 일부를 떼어내 ‘덩어리’(모듈화)로 만들어 납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공정에 과부하가 걸려 생산성이 떨어진 부분을 찾아내 아웃소싱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조선소 쪽은 사외제작이 가능한 지를 신중히 검토한 끝에 발주를 결정했다. 중소기업이 먼저 일거리를 제안하는 새로운 발주-수주 시스템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중소기업은 수요를 새롭게 창출해 좋고, 대기업은 선박 건조 기간을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 양쪽 모두한테 이로운 결과를 낳았다. 선보공업이 공격적인 수주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기술력 개발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매출액의 2%를 꾸준히 기술개발에 투자했고, 30여명의 설계 전문가를 길러냈다. 기술력이 있었기에 현대, 삼성, 대우 등 대기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기술력의 품질도 높아졌다. 아웃소싱한 덩어리 부품들은 어차피 선박의 일부에 붙여져야 하기 때문에 본체를 담당한 대기업 기술자들과 협의가 꼭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쪽 기술자가 현장으로 내려와 긴밀한 기술적 협의를 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런 기술 전수로 이어져 무형의 자산이 됐다. 기술력이 탄탄해지면서 도전의 여지도 넓어졌다. 선보공업은 지난해 처음으로 특수선박 쪽에 도전했다. 바다에서 캐낸 원유를 저장해 1차 정제하는 원유정제선(FPSO)에 들어갈 240m 짜리 ‘파이프랙유닛’을 만들어 삼성중공업에 납품했다. 창사 이래 최대 야심작으로 중소기업 최대의 초대형 유닛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소기업 쪽도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며 “자동차 산업 등 다른 분야에서도 상생의 아웃소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품 국산화 고리, 대기업-중소기업 수평적 협력관계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이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산업구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모기업 의존율’, 총 매출에서 모기업(대기업 등) 납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81.6%(2002년 기준)에 이른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그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대기업에 납품해서 먹고 산다는 얘기다.
이를 뒤집어 보면, 대기업도 마찬가지 처지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부품의 외부 조달 비율이 미국이나 유럽은 40%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70%에 이른다. 부품 대부분을 중소기업에서 사다 쓰는 것이다.
이런 산업구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는 것은 산업구조의 ‘건강성’을 곧바로 규정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대기업은 이른바 ‘수직적 협력관계’로 중소기업을 원가절감의 수단으로만 활용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 중소기업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대기업에 밉보여선 안되는 중소기업은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한다. 이는 중소기업의 투자 여력을 갉아먹고,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쌓을 틈이 없어져, 결국 ‘협력 파트너’로서의 지위는 갈수록 약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돼 온 것이다.
최근 이런 비정상적 ‘주종관계’를 양쪽이 모두 윈-윈하는 ‘수평적 협력관계’로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새로운 협력 모델의 핵심 축으로 먼저 등장한 것이 핵심 부품의 국산화 문제다. 부품 국산화는 대기업한테는 원가절감과 안정적 물량 공급을, 중소기업한테는 기술향상과 일거리 확보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특히 다수의 조립산업이 긍극적으로 중국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주요 부품과 소재는 한국에서 생산해서 중국에 수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송장준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과정에 대기업의 지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기껏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해도 ‘못 믿겠다’며 사주지 않는 실정”이라며 “대기업-중소기업 사이의 신뢰에 바탕을 둔 협력이 부품 국산화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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