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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0:51 수정 : 2005.01.21 10:51

박미향 기자.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의혹 쟁점별 진단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의 본격적인 매각작업을 앞두고 기업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영국의 유력 금융 전문지 ‘IFR’에선 아예 ‘2004년 채무조정상’수상 기업으로 진로를 선정하고 기업가치 띄우기에 발 벗고 나섰다. ‘IFR’가 밝힌 진로의 적정가치는 3조원. 이는 지난해 4월 정리계획안 확정시 감사인이었던 삼정회계법인이 평가한 1조8천억원보다 무려 60%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여기에 인수의향을 밝힌 업체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진로 몸값은 더 치솟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쯤이면 팔리는 회사 입장에선 입이 떡 벌어질 법도 한데 사정은 정반대다. 진로 관계자는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매각 가격을 보도하면서 기업가치가 부풀려지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노조는 한 술 더 떴다. 이는 외국계 투자기관의 ‘언론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자기 회사가치를 높게 평가하는데도 반기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주인 없는 설움일까. 현재 법정관리에 놓인 진로의 주인은 사실상 채권단들이다. 그것도 외국계 채권단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진로가 떠안은 정리채권은 모두 2조6047억원. 이 가운데 외국계가 보유한 금액은 1조8986억원으로 전체의 72.89%를 차지하고 있다. 진로 매각이 외국계들만의 잔치라는 웅성거림이 곳곳에서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걸까. ‘Economy21’은 잘못 꿰어진 단추를 차근차근 풀어 거슬러 올라가봤다. ‘문제의 씨앗’은 1988년 장진호 전 회장의 취임 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진로의 최대 채권자인 골드만삭스가 법원에 진로의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제출하기 한 달 전인 2003년 3월8일 낮 12시30분. 경기도 용인에 있는 레이크 사이드 골프장에서는 한 골프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은 당시 서울지법 파산부의 변동걸 부장판사, 골드만삭스 소송 대리를 맡았던 김&장법률사무소의 김학대 변호사, 강영수 롯데 변리사, 문상목 전 진로 사장이다. 그로부터 20여일 후인 4월3일 골드만삭스는 진로에 대한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냈으며 5월15일 서울지법 파산부는 골드만삭스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정관리 개시를 결정했다.

이 판결은 80년 진로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이후 진로는 장진호 전 회장을 비롯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우선 진로 창업주인 고 장학엽 회장의 아들로 지난 1988년부터 진로를 이끌어온 장 전 회장의 경영권이 박탈됐다. 2004년 4월23일 법원으로부터 진로 법정관리가 최종 인가됨에 따라 정리계획안에 의거해 장 전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2.44%는 전량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진로가 창업주인 장씨 일가의 손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쟁점 1. 법정관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진로 역사를 한순간에 뒤바꿔놓은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놓고 장 전 회장측과 골드만삭스 그리고 진로 노조는 여전히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먼저 당시 법정관리 개시 신청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뤄졌느냐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자. 진로는 97년 부도 이후 그 해 9월 법원에 화의를 신청해 98년 3월 화의 승인을 받았다. 당시 화의조건에 따르면 화의 개시 이후 2년간은 채무 원금과 이자에 대한 상환이 유예됐으며 화의 3년째부터 5년째까지는 이자만 상환하고 그 이후 5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상환토록 돼 있다.

화의 개시 이후 진로는 98년 10월 내놓은 ‘참眞이슬露’의 인기에 힘입어 점차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다. 장 전 회장도 회사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98년 화의 인가 후 2002년까지 진로는 화의인가 당시 추정한 영업이익을 초과 달성했다. 이 기간 채권단에 지불해야 할 이자도 꼬박꼬박 갚아나갔다. 진로 관계자는 “화의인가 후 화의조건에 따라 2002년 12월31일까지 약 1조원에 달하는 채무 이자를 변제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순항에 제동이 걸린 건 2003년에 접어들면서였다. 화의조건에 따라 이때부터 이자와 함께 원금도 상환해야 했다. 그러나 진로는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진로에서도 일찍이 예견한 일이었다. 장 전 회장측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화의개시 전인 97년부터 외자유치를 추진해 왔다. 화의 개시 후 5년간은 회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만으로도 이자상환이 가능했으나 이자와 함께 원금도 갚아야 하는 2003년부터는 영업이익만으로 사실상 빚을 갚아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장 전 회장측에서 ‘진로사태의 발단’으로 지목한 골드만삭스를 처음 만난 것도 97년 당시 회생을 위한 외자 유치 추진과정에서였다.

장 전 회장측은 외자 유치를 위한 자문을 구하고자 해외 유수의 컨설팅업체를 찾아나섰다. 이 과정에서 만난 게 바로 골드만삭스. 이때가 97년 11월 무렵이었다. 당시 골드만삭스와의 만남이 장 전 회장측의 경영권 박탈에 직접적 이유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골드만삭스와의 만남은 장 전 회장측에 있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되고 말았다.

2003년 3월 장 전 회장측은 채무상환을 위한 외자 유치를 추진 중에 있으니 원금상환을 6개월간 연장해 줄 것을 채권단에 요구했다. 2001년부터 진로는 일본 소주사업 및 생수사업을 매각하기 위해 일부 투자자들과 협상을 이어오며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2003년 5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게 됨에 따라 외자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는 물 건너갔다. 장 전 회장측이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당시 최대 채권자인 골드만삭스가 법원에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계열사 매각에 따른 자금 유입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영업이익으로 화의조건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장 전 회장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냉혹하면서도 치밀했다. 2003년 3월31일 진로가 더 이상 원금을 갚을 수 없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4월3일 법원에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냈다. 97년 11월 외자유치 컨설팅을 위해 처음 진로와 얼굴을 마주한 이후 5년 만에 ‘고객’의 경영권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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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전 회장측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외자 유치 무산에 대한 책임이 골드만삭스에 있다며 법정관리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장 전 회장측의 주장인즉 이렇다. 2002년 구조조정을 위해 일본 소주사업부인 진로재팬을 매각하려 했으나 골드만삭스가 진로재팬의 상표권을 가압류함으로써 외자 유치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골드만삭스는 진로재팬의 모회사인 진로홍콩에 대한 파산신청, 진로건설 등 관계사에 대한 화의취소 신청을 통해 진로가 여전히 투자 위험이 높은 기업인 것처럼 몰아 외자 유치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법원은 골드만삭스의 상표권 가압류가 진로의 외자 유치를 방해할 의도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장 전 회장측이 추가로 제시한 법정관리 개시신청의 부당요건들도 차례로 기각됐다.

장 전 회장측과 진로 노조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여전히 의혹을 지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법원의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있기 한 달 전 담당 부장판사와 골드만삭스 관계자 등이 모여 골프를 쳤다는 사실은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개연성을 뒷받침해 준다. 진로 노조 관계자는 “당시 골프모임이 법정관리 신청을 위한 사전 모임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있어 담당 판사인 변동걸 부장판사 집과 골드만삭스측 법률대리인인 김학대 변호사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쟁점 2. 비밀유지협약에 관한 진실은?

법원의 판결 직후 장 전 회장측은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개시 신청이 부당하다며 즉각 항고했다. 이는 진로사태가 제2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계기였다. 장 전 회장측은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개시 신청이 진로에 대한 적대적 인수 의도를 갖고 이뤄진 이상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골드만삭스의 행위를 ‘적대적’으로 규정지은 것은 골드만삭스가 자신들과 맺은 비밀유지협약을 위반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진로와 골드만삭스 간에 맺어진 비밀유지협약은 진로사태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다. 97년 부도 이후 회생을 모색하던 진로는 구조조정 컨설팅을 위해 골드만삭스와 97년 11월14일 자문 계약을 맺었다. 이는 골드만삭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진로의 동의 없이 회사 내부 정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비밀유지조항도 이 계약서에 포함됐다.

지난 2001년 말부터 2003년 6월까지 진로의 국제변호사로 활동한 고형식 변호사는 “골드만삭스는 당시 자문역할을 맡으며 알게 된 내부정보를 이용해 진로 채권을 헐값에 인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로가 골드만삭스에 제공한 정보는 회사의 조직, 고용상태, 자산상태, 판매현황과 전망 등에 관한 자료였다. 이들 자료를 접한 골드만삭스는 흥분했다. 직감적으로 ‘돈이 될 만한 물건’임을 느낀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재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진로와 컨설팅 자문계약을 맺은 지 3개월 만인 98년 3월부터 자산관리공사와 국내 금융기관 채권자들로부터 진로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가 매입한 진로 채권은 약 3400억원 규모였다. 고 변호사는 “액면가의 10~15%선에서 매매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골드만삭스의 행위는 명백한 비밀유지협약 위반인 셈이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자문부서와 투자부서가 분명하게 나뉘어 있고 서로 정보 교환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밀정보를 이용해 투자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치밀한 전략은 이때부터 더 빛을 냈다. 이렇게 매집한 채권으로 골드만삭스는 이후 진로의 자산매각을 번번이 가로막았다. 2001년 1월 진로재팬 매각 저지와 2002년 진로재팬 상표권에 대한 가압류 조치가 여기에 해당했다. 구조조정 자문을 위해 컨설팅 계약을 맺은 곳이 오히려 그 회사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나선 셈이다.

장 전 회장측은 자신들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으로 낙관했다. 골드막삭스의 비밀유지협약 위반 행위가 분명하게 드러난 이상 법원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법원은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줬다. 진로와 골드만삭스 사이에 경영자문계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골드만삭스가 실제 경영자문을 해주거나 진로가 그 대가로 자문료를 지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 기각 사유였다. 결국 2003년 9월 장 전 회장측의 항고마저 모두 기각되면서 진로는 파산(법정관리)의 수순을 밟게 됐다.

법정관리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또 한번 타격을 받았다. 예금보험공사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실시과정에서 배임, 횡령 등의 혐의가 드러나 장 전 회장이 2003년 9월 구속 기소된 것이다. 이후 2004년 10월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진로사태도 수면 아래로 사그라들었다.

%%990003%% 쟁점 3. 외국계 금융기관이 매각 가격 부풀렸나

2004년 9월 진로 매각을 위한 주간사로 메릴린치가 선정되면서 진로사태는 또 다른 국면을 맡게 됐다. 여기저기서 인수 의향을 밝힌 기업들이 늘어나며 매각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는 주로 진로 정리 채권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선 이들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매각 가격을 부풀려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진로 부도 이후 이미 자산관리공사와 채권 은행으로부터 액면가의 10~15% 수준의 헐값에 진로 채권을 매입했다. 정리계획안에 따르면 원금의 90%까지 변제토록 했으니 이것만으로도 벌써 5배가 넘는 평가차익을 남기는 셈이다. 화의 개시 이후 10%가 넘는 이자도 꼬박꼬박 받아왔다. 여기에 2005년부터는 회사정리계획안에 명시된 영업이익 목표액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채권단 몫으로 돌아가 이들 외국계 금융기관이 챙기는 이득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현재 진로는 2조600억원의 정리 채권을 떠안고 있으며 이 중 골드만삭스, JP모건, 도이치방크, 모건스탠리가 70%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다.

진로 노조는 이 같은 매각 가격 가열 현상에 대해 “외국계 금융기관이 기업가치를 부풀려 매각시 좀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는 각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특히 매각 가격이 뛸수록 인수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피해가 종업원들에게 되돌아올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높은 가격에 인수한 만큼 인수 직후부터 조직의 슬림화를 위해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실시할 게 뻔하다는 얘기다.

쟁점 4. 진로사태의 근본 원인은?

그럼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한결같이 골드만삭스의 치밀함보다는 장 전 회장측의 잘못이 더 크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무엇보다 기업의 투명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1988년 장 전 회장 취임 이후 15개였던 계열사는 97년 24개로 늘어났다. 1년에 약 3개 꼴로 계열사를 늘린 셈이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무리하게 사들일 경우 경영상의 타격을 입을 게 뻔한 기업도 장 전 회장의 독단에 의해 일사천리로 인수절차가 진행됐다. 참모진이나 노조 등 그 누구도 장 전 회장에 대한 견제 역할을 맡지 못했다. 진로 관계자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이 장 회장 독단에 의해 이뤄졌으며 주변 참모진들은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고 말했다. 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장 전 회장의 경영 능력 부재도 진로사태 발단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심지어 장 전 회장의 측근까지도 오너의 경영 능력 부재에 대해 비난하고 나설 정도다.

98년 10월 ‘참眞이슬露’가 처음 출시된 후 지난해 7월 말까지 무려 70억병이 팔려나갔다. 오늘도 삶의 고난을 소주로 달래고 있는 우리 서민들의 쌈짓돈이 고스란히 외국인들의 주머니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자본의 논리’일 뿐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엔 명치께가 조여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김연기 기자 ykkim@economy21.co.kr


■ 문어발 사업확장 화 불러

%%990004%% 2004년 진로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900억원, 1930억원이다. 1998년 화의개시 이후 매년 꾸준한 성장을 이뤄왔다. 98년 79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6년 만인 2004년 2.5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 영업이익률로만 따지면 진로는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초우량 기업인 셈이다. 98년 38%에 머물렀던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은 2004년 55.3%까지 확대돼 한국 주류산업의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진로는 누구에게 팔려나갈지 모르는 주인 없는 신세에 놓여 있다. 법원은 진로 매각을 위해 현재 회사정리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왜 이 같은 초우량 기업이 주인도 없는 신세로 팔려나갈 처지에 놓인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지난 88년 장진호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당시 진로는 장 전 회장의 지휘 아래 주류회사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장 전 회장의 사업 다각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를 개장한 것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 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 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88년 15개였던 계열사는 97년 24개까지 증가했다.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 계열사의 경영성과가 부진해지면서 97년 초부터 자금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진로가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추진한 데는 장 전 회장의 판단 착오 외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 진로 관계자는 “당시 시대 분위기는 미래 생존 전략 마련을 위해 새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때였다”며 “여기에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세계화, 국제화 논리가 강조되면서 너도나도 새 사업을 찾아나섰다”고 말했다. 진로 역시 소주 하나만으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는 판단에 무리하더라도 사업 확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잇단 사업확장의 대가는 혹독했다. 계열사에 대한 무리한 자금 지원과 채무보증이 부실을 몰고 와 결국 97년 진로는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진로가 계열사에 지원한 자금 규모는 98년 9월 말 기준으로 출자금 1208억원, 대여금 1조3262억원, 지급보증 7482억원으로 모두 2조1950억원에 달했다.

화의 이후 계열사에도 급격한 변화가 왔다. 진로건설, 진로종합식품, 진로베스토아, 진로종합유통이 청산됐거나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이 밖에 진로하이리빙, 진로엔지니어링, 청주진로백화점, 우신투자자분, 우신선물, 진로쿠어스맥주, 지티비, 진로위스키 등이 사업양도 방식으로 떨어져나갔다. 늦어도 오는 10월까지는 새 주인을 맡게 될 진로만이 외롭계 남아 있을 뿐이다.

■ 진로사태 일지

1997년 4월21일 진로그룹, 부실징후기업 정상화대상업체 지정
1997년 9월7일 (주)진로, 서울지방법원에 화의신청
1998년 3월19일 서울지방법원, (주)진로에 대한 화의인가결정(5년간 원금상환 유예
2003년 1월10일 (주)진로 주식, 증권거래소 상장 폐지 결정
2003년 3월31일 (주)진로, 원금 미변제 (화의조건 불이행)

2003년 4월3일 세나인베스트먼트아일랜드, (주)진로에 대한 회사정리절차개시 신청
2003년 5월14일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회사정리절차개시결정. (주)진로, 장진호 전 회장 등주주 3명, 채권자 40명 등 44명 항고
2003년 5월15일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화의취소결정. (주)진로 등 3명 항고
2003년 8월13일 삼정회계법인이 서울지방법원 파산부에 진로 실사보고서 제출. 삼정회계법인은 진로의 파산 이유로, 장 전회장을 비난함.
2003년 8월27일 첫 진로 채권자집회
2003년 9월8일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 장진호 전 회장, 한봉환 전부사장을 배임 등 혐의로 구속
2003년 9월22일 서울고등법원 제30민사부, 진로측의 항고 모두 기각
2003년 9월29일 공적자금 비리, 장진호 등 기소
2003년 10월1일 진로-홍콩 법원, 진로재팬 놓고 마찰
2003년 12월12일 진로 정리계획안 12일 마감
2004년 1월12일 진로 `제3자 매각 추진’ 내용의 정리계획안 법원에 제출
2004년 3월17일 진로 채권자집회
2004년 3월17일 진로, M&A 재수정안 제출
2004년 4월23일 진로 채권자집회에서 진로, 법정관리 최종 인가
2004년 4월30일 진로 법정관리 회사 정리안 확정 및 진로 새 관리인 박유광씨 선임
2004년 6월23일 진로 매각 주간사 선정 작업 착수
2004년 9월2일 메릴린치 진로매각 우선협상자 선정
2004년 9월14일 메릴린치 진로매각 주간사 최종 선정
2004년 10월12일 진로홍콩 청산인, 장진호 전회장 형사고발
2005년 1월 말 매각 시행공고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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