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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한 쇼 프로가 비하한 현대차 게츠는 유럽에서 10만대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차동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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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쇼 프로그램서 비하 발언…판매량 증가로 인한 인지도 상승 탓으로 풀이
‘영국은 짖어도 현대차는 질주한다.’
영국 BBC의 한 쇼 프로그램에서 현대차를 “한 끼 밥값을 못하고 싸구려 부품을 쓰고 있는 차”라며 조롱하자, 현지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현지 교민과 유학생들이 인터넷으로 올리는 글에는 댓글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국산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국내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BBC 탑기어’라는 프로그램이 매년 각 자동차메이커를 대상으로 부정적인 방송을 내보내고 있고, 프로 자체가 오락성이 짙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태연한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주목을 받기 때문이 아니냐는 눈치다. 현대차 유럽판매법인 조래수 부장은 “BBC 프로로 인해 영국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일단 언론중재심위원회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향후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차가 느긋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대차의 유럽 내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빅5’라고 불리는 유럽 내 주요 국가에서의 판매 비율도 매년 두자릿수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차는 기아차와 더불어 지난해 영국에 3만7천대 이상을 판매했고, 판매량 증가율도 각각 64%와 36%로 쾌속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BBC 탑기어의 주요 표적이 됐던 게츠(한국명 클릭)는 영국에서만 지난해 이미 1만5천대 이상이 팔려나갔고 유럽 전체로 봐도 10만대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 차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게츠가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유럽 지역에서 소형차가 세단보다 강세인 탓도 있다. 게츠는 국내에서는 단순히 싸고 작은 차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 유럽 지역에서는 소형차로 분류돼 자리를 잡았다.
사실 현대차의 전체 수출에서 유럽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미국이나 중국 지역의 경우, 수출 물량이 수십만대에 이르는 탓에 쉽사리 사람들의 눈에 띠는 데 반해, 유럽지역은 개별국가에 따라 수출물량이 100대 안팎에서 3~4만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눈길을 끌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럽지역 전체를 놓고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 물량은 현대차의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29%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주 지역의 비중이 32%인 것에 견줘도 거의 부족함이 없다.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 된 셈이다. 특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빅5‘라 불리며 45만대에 이르는 유럽 전체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절대적인 수치로만 따진다면 아직 미흡한 점도 있다. 기아차와 합치더라도 유럽내 시장점유율이 겨우 2.8%에 머문다는 사실도 향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특히 유럽 소비자들은 배타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데다 시장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라 시장점유율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무엇보다 유럽인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과 우월의식에서 비롯된다. 당장 자국의 자동차 메이커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영국조차도 자동차 제조기술 만큼은 자신들이 앞서 있다며 큰소리를 친다. 이런 분위기가 유럽 지역에 만연하다 보니 미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도 영국에서는 기껏해야 3~4%의 점유율밖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품질평가 5위 안에 드는 SUV차량이 영국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평가기관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바가 못 된다”고 일축한다.
최근 영국의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소동은 2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행보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수준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한국차의 인지도가 이미 유럽 국가들이 신경을 쓸 만큼 상승했다는 점 두 가지다. 이미 전체 수출 물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 대해 앞으로 그 비중을 더욱 높이겠다는 현대차의 공격 경영이 주목을 끄는 건 이 때문이다. 류현기 기자 hector@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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