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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4 14:36 수정 : 2005.01.24 14:36

지난해 3월24일 전남 목포역 광장에서 열린 ‘호남선 복선전철 준공 및 고속열차 개통식’.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현재 확정된 사업계획이 전혀 없다.



이해찬 총리 ‘호남고속철 조기 착공 불가’ 발언 논란
고속철의 경제성을 다시 따져본다

지난해 4월1일 열린 ‘경부·호남 고속철도 동시 개통식’.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호남선은 고속철도가 아니라 고속‘열차’ 개통이었다. 개통식에 앞서 3월24일 목포역 광장에서 열린 ‘호남선 복선전철 준공 및 고속열차 개통식’에서도 철도청은 고속열차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고속철도 노선이 아니라 기존 선로를 복선·전철화해서 KTX가 달리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비록 호남축 노선에도 현재 KTX가 투입돼 달리고 있긴 하지만, 호남고속철도사업은 현재 확정된 사업계획이 전혀 없고 한푼의 예산도 책정된 바 없다. 사실 호남선 고속열차는 당초에 개통 계획이 없었으나 갑자기 정치적으로 추진돼 ‘저속열차’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KTX부터 투입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호남선은 경부축에 비해 선로가 더 낙후돼 노선을 계속 개량해왔는데, 경부고속철도 개통이 임박하자 호남 지역의 소외감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개량화된 노선에 KTX를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당 “크게 의미두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이해찬 국무총리의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불가’ 발언으로 호남고속철도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다. 이 총리는 지난 1월14일 광주 지역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당초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하루에) 22만명이 탈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 7만명이 타고 있어 연간 적자가 수천억원에 달한다”면서 “호남고속철도도 생기면 적자는 국민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조기착공은 어렵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 총리는 또 “호남고속철도도 15조원 정도 들여서 하게 되면 수천억원씩 적자가 날 것이 뻔한데 섣불리 할 수 있겠느냐”면서 “(경부고속철도사업은) 노태우 정부 때 공사를 시작해서 완공된 잘못된 프로젝트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연구해보라고 국무조정실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의 발언이 개인적 소신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과 의견 조율을 거쳐서 나온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총리의 개인적 소신이라 해도 사실상 “이해찬이 총리로 있는 한 조기착공은 못한다”고 선언한 셈이어서 큰 파장을 불러올 게 뻔하다. 총리실 관계자는 “그동안 지방에서 무언가 건의하면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것조차 정부가 좋게만 말해온 경향이 있는데, 이번 총리 발언은 ‘안 되는 건 분명히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아무리 ‘할 말은 하는 총리’라지만, 그것도 광주에 내려가서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불가론을 제기한 데 대해 관련 당사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철도공사 관계자는 “학자가 그런 얘기를 하면 모르겠으나 총리 자리에 있는 분이 남 얘기 하듯 그런 발언을 해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 이해찬 국무총리의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불가’ 발언으로 논란이 다시 일어날 조짐이다. 1월14일 헬기를 타고 서해안을 시찰하는 이 총리.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쪽은 “총리께서 말한 하루 22만명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 새 노선이 깔렸을 때 얘기고, 지난 98년 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을 짤 때 1단계 사업을 마친 뒤 개통하면 수요가 하루 14만8천명으로 예측되었다”며 “총리가 말한 숫자에 착오가 있지만 총리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건교부가 나서서 해명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곤혹스러워했다.

열린우리당 광주광역시당(위원장 국회의원 양형일)은 성명을 내고 “총리의 발언으로 인해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이 유보되거나 계획이 변경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총리 발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애써 축소하고 나섰다. 양형일 의원은 “이 총리가 정초부터 호남 지역의 민심에 찬물을 뿌리고 ‘제2의 비내리는 호남선’을 만들려 하고 있다”며 “돈이 많이 들고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벅차다는 건 알지만, 단기간 수익만 노리고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나라는 없다. 당장은 수요가 크지 않아도 장기적 안목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조기 착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또 국회의원 204명으로부터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에 대한 동의 서명을 이미 받았으며, 2월 임시국회에서 대정부 건의문 형태로 채택해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깔 것인가, 보완할 것인가

현재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은 기본계획을 확정짓지 못한 채 용역과제 수행만 되풀이되고 있는 중이다. 1997년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 수립조사, 1999년 호남고속철도 사업성 검토에 이어 드디어 2003년 11월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 조사용역(교통개발연구원) 결과가 발표됐다. 당시 건교부는 2015년과 2020년까지 1, 2단계로 나눠 서울 수서에서 익산까지 호남선 신선을 건설하고, 익산에서 목포 구간은 추후 검토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호남고속철도의 밑그림을 내놓았다. 이런 골격에 따라 정부는 관계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협의를 거쳐 지난해 하반기에 호남고속철도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기본설계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건교부는 지난해 10월 국토연구원에 기본계획 조사연구 ‘보완용역’(2005년 12월까지)을 또다시 맡겼다.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교통 수요 변화와 노선 통과 지역의 분기역을 둘러싼 이견, 행정수도 입지 선정 변화 등 이른바 ‘수요와 관련된 사정 변경’에 따라 기본계획 확정을 올해 말까지로 다시 미룬 것이다.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의 향방은 올해 말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국토연구원의 ‘보완용역’과 관련해 건교부 이제학 고속철도과장은 “KTX가 호남축에도 들어가면서 수요변동 요인이 생겼고, 고속철도의 경제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호남고속철도사업도 (경부고속철도처럼)새로운 선로를 깐다는 게 기본 방침이긴 하지만, 상당한 재원을 들여 꼭 새로운 노선을 건설할 필요가 있는지도 용역 과제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역 과제 수행자인 국토연구원쪽도 “2003년에 나온 교통개발연구원 보고서를 기본 틀로 삼되, 그동안의 여건 변화를 감안하고 목포까지 기존 선로를 개량해 KTX를 다니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지, 사업비가 많이 들어도 신선을 놓는 게 필요한지를 검토하는 게 용역과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호남고속철도사업의 관건은 고속철도 선로를 새로 깔 것이냐 아니면 지금처럼 기존 선로를 전철·복선화해 운행할 것이냐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기존 선로를 최대한 개량해 활용하면 광주 송정리에서 목포 구간의 경우 시속 250km까지 달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철도공사쪽은 20량짜리 KTX는 속도를 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2006년부터 10량짜리를 호남선에 투입해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른바 ‘호남선형 고속열차’ 계획인데, 호남고속철에 대한 어떤 로드맵도 확정된 바 없고 오히려 신선 구축의 대안들이 제기되는 와중에 이 총리의 발언이 나온 만큼 호남고속철 신선 건설 백지화까지 논란이 이어질 수도 있다.

▲ 2003년 7월1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광주의원들 모임에서 최종찬 전 건교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이 호남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의원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물론 호남 지역 정서는 “서울에서 목포까지 아무리 기존 선로를 잘 개량해 KTX 주파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싫다. 무조건 다 고속철도 신선을 깔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쪽은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에 총리실쪽이 먼저 나서기는 어렵지만, 총리의 지시에 따라 호남고속철도 사업의 경제성과 투자재원 등을 고려해 연구·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지니스 라인’ 이 아니라…

물론 고속철도사업을 과연 수익성이란 잣대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고속철도 개통 이후 실적과 수입이 당초 계획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경부선의 경우 고속철도 개통 이전에 하루평균 철도 이용객(새마을·무궁화)은 10만9천명이었다.

그런데 고속철도 개통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하루평균 철도 이용객(KTX·새마을·무궁화)은 14만4천명으로 32% 늘었다. 호남선은 고속철도 개통 이전에 이용객이 하루평균 3만명이었는데, 개통 이후 3만3천명으로 11% 증가했다. 자연히 철도 이용객 수는 양쪽 모두 늘어났다.

그런데 경부고속철도 기본계획을 수립할 당시에 근거자료로 쓰였던 수요 예측을 보면, 하루평균 KTX 여객수송량이 13만5천명(경부선 10만3천명, 호남선 3만2천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실제로 하루평균 KTX 이용객은 7만명(경부선 5만9천명, 호남선 1만1천명)에 불과했다. 계획 대비 실적이 52%(경부선 57%, 호남선 34%)에 그친 것이다. 수입 실적은 더욱 저조하다. 당초 KTX 수입 계획은 하루평균 46억2천만원이었으나 실적은 20억9천만원으로 계획 대비 45%에 불과하다.

호남선만 보면 계획 대비 수입실적이 고작 27%다. 호남선의 경우 기존 선로를 그대로 쓰고 여객수송 시간이 크게 단축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에 비해 여객요금도 싸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 좌석이용률(이용승객 수/좌석공급 수)은 주말과 주중을 합쳐 경부선 72.9%, 호남선 37.2%로 평균 63.2%다.

사실 호남축은 경부선에 비해 고속철도가 갖는 ‘시간 단축’의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 철도공사는 이를 ‘비즈니스 라인’이라고 부르는데, 경부축은 시간 가치를 중시하는 비즈니스 라인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기 때문에 운임이 비싸더라도 회삿돈으로 KTX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존재한다. 하지만 호남선은 아직 비즈니스보다 여행·귀향 개념이 강해 시간보다는 요금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철도공사쪽은 KTX를 투입해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구간에는 새마을호 운임 정도로 낮추고, 호남선은 운임을 30% 정도 대폭 깎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철도공사쪽은 “고속철도 개통으로 철도 수송량이 30% 정도 늘었다. 경제 불황으로 수송 수요가 줄어드는 악조건 속에서 30% 증가는 고무적이라고 할 만하다. 경제만 살아난다면 KTX 이용객이 예상외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3월30일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행사. 이용객 수를 보면 기본계획을 수립할 당시 수요 예측에 크게 못미친다.


‘전이 수요’ 예상에 크게 못미쳐

다른 교통수단에서 KTX로 옮겨타는 ‘전이 수요’는 얼마나 될까? 고속버스의 경우, 서울∼대구 구간을 보면 고속철도 개통 직전에 하루평균 이용객이 3783명이었는데 개통 뒤 2190여명으로 줄었다. 서울∼부산 구간도 2490여명에서 개통 뒤 1640여명으로 줄었다. 고속도로 이용 차량(1종)을 보면, 서울∼대구의 경우 하루평균 4370대에서 3390대로 줄었고, 서울∼부산은 2030대에서 1610대로 20∼25% 줄었다. 항공 이용객은 김포∼대구 노선은 개통 이전 3720명에서 개통 뒤 1080명으로 뚝 떨어졌고, 김포∼김해는 1만4100명에서 개통 뒤 1만명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고속버스·승용차 등 장거리 도로 이용객이 감소하고 고속철도로 옮겨오긴 했지만, 당초 예상에 견줘보면 훨씬 못 미친다. 건교부는 당초 하루평균 12만2천명(고속버스에서 6만1천명, 승용차에서 3만7천명, 항공에서 2만4천명)이 고속철도로 이동하고, 기존 새마을·무궁화 열차에서 고속열차로 2만9천명이 옮겨타는 등 총 15만1천명이 고속철도로 옮겨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로 항공·버스·승용차에서 KTX로 전이된 수요는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3만7천명에 불과하다.

한국철도공사쪽은 “항공기 이용객이 상당수 고속철도로 이동했으나, 고속도로 이용객은 별로 옮겨오지 않고 있는 양상”이라며 “애초 교통개발연구원에서 고속철도 수요를 예측할 때 고속도로 이용객이 고속철도로 넘어오는 것을 과다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이제학 고속철도과장은 “초기 KTX 이용실적이 부진한 편이긴 하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며 “호남고속철도 역시 수익성뿐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21>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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