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3 18:56
수정 : 2019.10.24 02:03
조세재정연구원·소득주도성장특위 토론회
“통화정책 의존한 경기부양책 한계
세계 주요국가들도 재정 확대 나서”
“구조개혁 없다면 국가부채만 초래
확장적 재정+완화적 통화정책 효과
SOC·혁신 성장 지원 방향 투자해야”
경기하강 기조가 지속되는 구조전환기를 맞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재정정책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운영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23일 공동 주최한 ‘구조전환기, 재정정책의 역할과 방향’ 토론회에서 기조발제에 나선 윤성주 조세연 연구위원은 “최근 주요국들이 세계경제 성장률의 둔화 및 경기하강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을 고려한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며 “주요국의 재정정책은 성장률 제고, 경기부양, 복지와 사회안전망 확충 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재정정책은 확장과 긴축을 반복하다 2017년 이후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금융위기 당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확장적 재정 운용에 뜻을 모았다가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인해 긴축 재정을 택하기도 했었다는 뜻이다. 이날 발표된 논문을 보면, 실제 세계 주요국들은 단기적인 경기 방어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재정 투입을 선택하고 있다. 미국은 민관 협력 인프라 투자에 향후 10년간 2천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며, 일본 역시 국가 인프라 강화를 위해 2018년부터 3년간 7조엔 수준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도 사회 통합을 위한 복지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윤 연구위원은 2017년 이후 재정정책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통화정책에 의존한 주요 선진국의 경기부양책이 실물 경제 회복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자산가격만 끌어올려 소득격차와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정책 당국의 남은 선택지는 재정 투입과 이에 기반한 구조개혁이라는 결론이다.
윤 연구위원은 “안정적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재정정책과 더불어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일본 사례에서 보듯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재정정책의 확대는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제에 나선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확장적 재정정책이 민간 소비와 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 소비가 1조원 증가할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은 1800억원(재정승수 0.1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재정 투입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1’을 넘나드는 것으로 평가되던 재정승수는 고용률과 생산성 하락, 디플레이션 우려, 정책 불확실성 등 영향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하락하는 재정 승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류 교수는 통화정책과의 ‘정책 조합’을 강조했다. 그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민간 소비와 투자의 견조한 진작 효과가 관측된다”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공조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향후 추가적으로 증가하는 지출 부문은 재정승수가 높은 경제 분야에 재원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도 이런 진단에 힘을 보탰다. 그는 “재정승수가 1보다 낮더라도 팽창기 자원을 당겨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국민 경제 전반의) 후생을 개선시킬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며 “일자리 지원의 경우 생성된 일자리가 오래 유지될 것으로 기대될 때 소비에 나서 큰 부양효과를 누릴 수 있으므로 일자리 유지 기간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기가 부진한 시기에 정부마저 긴축 재정을 펼칠 경우 경제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재정의 기능을 정상화하되 중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있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2020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9.3%로 높게 설정한 것은 경기 대응 측면에서 적절하다”면서도 “다만 경기 상황이 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이 지나치게 빠르게 악화하지 않도록 증세 등 세입 기반 확충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