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4 19:11
수정 : 2019.11.05 02:43
통장에 쌓아둔 현금 35조
대외여건 악화 따른 성장률 둔화
정부는 확장재정으로 떠받치는데
성장률 최대 0.9%p 제고효과 방기
“매년 하락하는 예산집행률 높여야”
지방세율 인상과 지방교육재정보조금 조정 등 재정분권화 기조와 부동산 시장 호황 등에 따른 지방세수 확대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쌓아두고 있는 현금 다발이 최근 5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세입만큼 돈이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이어서, 재정분권에 발맞춘 지방정부의 재정 집행 책임성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4일 나라살림연구소가 공개한 전국 지자체의 결산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각 지자체가 보유한 순세계잉여금은 2013년 16조2천억원에서 지난해 35조원으로 5년 새 2배 이상(116.3%)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16.7%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세입 예산이 256조원에서 361조7천억원(연평균 7.2%)으로, 총지출은 220조원에서 293조원(연평균 5.9%)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매우 가파른 증가세다.
순세계잉여금은 세입 예산에서 세출 실적을 뺀 결산상 잉여금 가운데 사업 자체가 이월된 이월액과 반환해야 하는 보조금을 제외한 것으로,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세입 예산에 편성해 활용할 수 있다. 불용액 등 세입 예산대로 집행하지 못한 ‘쌈짓돈’이 해마다 수조원씩 불어난 셈이다. 지방재정이 강화되는 추세에 따라 앞으로도 지자체의 곳간은 더 풍족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2010년 지방소비세, 지방소득세를 신설해 지방재정의 세입 여건을 강화했고, 2014년에는 부가가치 세수 가운데 지자체로 이전되는 지방소비세 이양률을 5%에서 11%로 높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법정률과 지방소비세 이양률이 인상됐고, 명실상부한 재정분권을 위한 추진 방안도 공개됐다. 올해 75 대 25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수 비율을 2022년까지 70 대 30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풍부한 재정 여건을 지자체들이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다. 순세계잉여금 급증과 함께 지방재정 집행률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지방재정 집행률은 2015년 86.1%, 2016년 85.8%, 2017년 85.0%, 지난해 84.2%로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다.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 정부 쪽 기여도가 -0.6%포인트에 그쳤던 점도 지자체를 통한 재정 집행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를 확장 재정으로 떠받치고 있는 중앙정부와 온도차가 너무 크게 벌어진 셈이다. 이에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는 지방재정 집행 점검회의를 잇따라 개최해 남은 4분기 지방재정 집행을 독려하고 있다.
이날 보고서를 낸 나라살림연구소는 제때 풀지 못하고 쌓아두고 있는 순세계잉여금 35조원을 집행한다면 그해에만 최대 0.9%포인트의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 집행의 효과가 국내총생산 증대로 이어지는 재정승수는 최대 0.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에 따르면 지방정부들이 균형재정 원칙에 따라 35조원을 다 쓰기만 해도 1%에 조금 못 미치는 성장률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영진 계명대 명예교수는 “올해 지방소비세율 인상 효과를 생각하면 내년에 지자체의 순세계잉여금은 더 불어날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 경기 부진에 대응해 각 지자체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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