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8 09:00
수정 : 2019.11.08 09:00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태초의 장미는 이름으로 아직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980년에 내놓은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소설은 참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는 1327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벌어집니다. 윌리엄은 그 수도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시학2>를 읽는 수도사가 영문도 모른 채 하나씩 죽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학1>은 비극을 다뤘고,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시학2>는 희극을 다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의문을 파헤치던 월리엄은 마침내 범인을 찾아냅니다. 범인은 누구일까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는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범인은 ‘불완전한 것을 진리로 만들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도륙‘ 당했습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절대시하는 순간, 파멸에 이른다는 걸 소설은 잘 보여줍니다.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란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일어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덧없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절대적으로 믿는 진리는 하루아침에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영학에서 이미 입증했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1980년대 일본 기업 경영시스템은 진리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헛되이 사라졌습니다. 기업으로 좁혀 보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핀란드 노키아는 한때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검찰과 언론 유착 사태로 끝내 낙마한 조국 전 장관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보면서,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었습니다. 검찰은 스스로 지고지순한 진리인 것처럼 보이려 했고, 언론은 그게 진실인 양 받아썼습니다. 진리를 의심하고 팩트를 찾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새삼 소설의 배경인 중세 유럽과 현재 한국 사회가 놀랄 만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참, 에코는 이런 에세이를 썼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그 바보들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화내야 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정혁준기자
jun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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