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0 18:59
수정 : 2019.12.1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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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맞은편의 옛 대우그룹 본사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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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해체 이후]
41개 계열사 1년만에 공중분해
대우차·인터내셔널 등 흔적 없어
대우전자·증권 등 분할 합병 겪어
서정진 회장은 대우차 임원 출신
김현중·손동연·이우종 등 쟁쟁
세계경영연구회 꾸려 인재양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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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맞은편의 옛 대우그룹 본사 건물.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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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 국내외 임직원 35만여명. 1998년 재계 2위의 정점을 찍었던 대우그룹은 1년여 만에 해체됐다.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결정된 12개 핵심계열사의 대부분은 공중분해 되거나 분할되어 인수됐다. 지난 9일 김우중 대우 전 회장은 고인이 됐고, ‘대우’라는 회사 이름은 몇 남지 않았다.
대우그룹의 모기업인 ㈜대우에서 무역부문이 분할된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가 2010년 인수해 ‘포스코대우’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난 4월 다시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변경해 대우의 흔적을 지웠다. 고 김우중 전 회장이 특별히 공들였던 대우자동차는 2002년 지엠(GM)에 매각되어 2002년 ‘지엠대우’로 운영되다가 2011년 쉐보레 브랜드로 흡수통합하면서 ‘한국지엠’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2000년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조선공업(대우조선해양), 대우중공업 잔존법인으로 분할된 대우중공업 가운데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그룹에 편입돼 두산인프라코어가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대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대우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빠르게 3대 선박제조회사로 자리 잡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몰아친 조선업 불황을 버텨내지 못해 현재 현대중공업의 인수 절차에 들어갔다.
대우전자는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된 뒤 사업부문을 구조조정하며 2003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발했다. 이후 동부그룹을 거쳐 지난해 대유그룹이 인수하며 ‘위니아대우’로 명맥을 잇고 있다. 대우 해체 직전 채권단이 인수한 대우증권은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가 2009년 산업은행 민영화와 함께 케이디비(KDB)금융그룹 편입을 거쳐 2015년 미래에셋금융그룹 계열사로 들어가 미래에셋대우라는 새 옷을 입게 됐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대우그룹 시절의 상호를 유지하고 있는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되었으나 이후 금호아시아나가 자금난으로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대우라는 이름은 지워져 가고 있으나, ‘대우맨’들의 활약은 여전하다. 김 전 회장이 해외영업 인력을 키우는 데 심혈을 기울인 덕분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 바이오산업의 선두주자인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다. 34살의 나이에 대우자동차 재무 부문 임원으로 발탁됐던 서 회장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바이오텍을 차려 오늘에 이르렀다. 김현중 전 한화건설 대표이사 부회장도 대우건설로 입사해 해외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던 대우맨으로 한화건설의 세계시장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이 밖에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이우종 엘지(LG)전자 브이시(VC)사업본부장 등은 대우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이다.
대우맨들은 2009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설립해 ‘세계경영’이라는 김 전 회장의 유고를 살려가고 있다. 5000명 가까운 대우 출신들이 참여한 연구회는 회원들의 상조와 친목 도모뿐 아니라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사업(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들의 해외 취업 및 창업을 지원해왔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 등 동남아 국가에서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2011년 베트남 1기 40명을 배출한 이래 지난해까지 수료생 1000여명을 현지에 취업시켰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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