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1 16:00
수정 : 2019.12.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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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플랫폼 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문을 받아 오토바이로 음식을 나르는 배달원.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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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플랫폼 경제, 협동조합을 만나다>
사이먼 보킨 지음, 번역협동조합 옮김/ 착한 책가게 (2019)
플랫폼 협동조합 활성화 위해 사회적 금융 필요
‘공동체 주식’ 등 유럽서 성공한 자본조달 모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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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플랫폼 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문을 받아 오토바이로 음식을 나르는 배달원.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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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이나 웹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플랫폼 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차량 호출서비스인 우버, 빈방이나 집을 대여하는 에어비앤비, 피자나 치킨을 배달할 때 찾는 배달 앱 등에서 우리는 플랫폼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플랫폼은 거래를 공식화, 투명화하고 납품업자나 노동공급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반면, 플랫폼은 노동력을 잘게 쪼개고 개별화해 고용함으로써 수백 년간의 갈등을 통해 정착한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를 무력화한다. 아울러 사람이 많이 모여야 더 번창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작용하는 플랫폼의 특성상, 일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점, 잉여의 불평등한 분배, 플랫폼을 이용하는 개인의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도 커가고 있다.
최근 이런 플랫폼 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해소할 대안으로 플랫폼 협동조합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은 연대와 협력의 정신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방식을 디지털 플랫폼에 접목하고자 한다. 소비자, 노동자, 플랫폼 운영자,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가 플랫폼 협동조합의 주인인 기업이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플랫폼 협동조합은 노동 착취나 독점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출판된 <플랫폼 경제, 협동조합을 만나다> (사이먼 보킨 지음, 착한 책가게 펴냄)는 플랫폼 협동조합이 왜 필요하며, 이를 창업해 키워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지를 제시하는 책이다. 영국의 사회혁신재단 네스타(NESTA)와 영국협동조합연합(Cooperatives UK)이 발간한 보고서 ’플랫폼 협동조합-자본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풀까’ (Platform co-operatives- solving the capital conundrum)를 번역했는데, 전체 분량이 100 페이지에 못 미쳐 읽기에 부담이 없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완화해 온 협동조합이 새롭게 떠오르는 플랫폼 경제와 어떤 점에서 ‘궁합’이 잘 맞는지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협동조합에 꼭 필요한 참여와 합의를 끌어내는데 디지털이 가진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협동조합은 규모가 커질 때마다 민주적 의사결정이라는 절차를 지켜내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해왔다”며 “이제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조합원이 기여한 바와 조합원 간 혹은 조합원과 플랫폼 간 상호작용을 디지털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안건에 대한 투표나 그에 필요한 일들을 자동화된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플랫폼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그 앞에 놓인 어려움도 커 보인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에는 다중의 합의에 의해 움직이는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이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플랫폼 구축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는 사용자 확보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다.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투자자에게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일반 플랫폼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협동조합은 그러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플랫폼 협동조합은 투자에 대한 직접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공공기금이나 사회공헌 기금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가사노동자 협동조합의 공동플랫폼인 미국 뉴욕의 ‘업앤고’(Up & Go)는 지역의 가난 퇴치 활동을 지속해서 벌여온 로빈 후드 지역재단, 협동조합 설립 지원조직인 가족생활센터(CFL)의 체계적인 지원과 함께, 바클레이스 은행 등의 사회공헌기금 지원이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플랫폼 협동조합이 활용해 봄 직한 자본 조달 방안을 창업에서 스케일업, 성공적 안착 등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제시한다. 우선 창업 초기에는 일반 스타트업이 받는 엔젤투자와 같은 종잣돈을 지원하는 곳이 필요하다. 사업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금을 지원하려면 일반 투자자와 성격이 달라야 한다. 이 책은 이를 위해 일정한 기관투자기금(가칭 ‘플랫폼 협동조합 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플랫폼 협동조합이 창업 초기의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데 성공해 일정한 규모의 네트워크를 확보한 플랫폼 협동조합은 이용자나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좀 더 폭 넓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이 책은 영국에서 적용된 ‘공동체 주식’(community share)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제시한다. 영국 협동조합연합회와 영국 내 지역 공동체를 지원하는 민간기구인 로컬리티(Locality) 등은 지난 10년간 영국 내 공동체 협동조합이 자금을 조달하는 모델을 탐색해 왔고, 그 결과 나온 것이 공동체 주식이었다. 이미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영국 내 500개 이상의 기업들이 15만 명 이상의 투자자로부터 1억5천만 파운드(약 2353억원)가 넘는 돈을 조달해 나름대로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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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협동조합의 다양한 새 모델 자료: 협동조합 해외 선진 사례 및 도입방안 연구, 중소기업연구원(2009) p179에서 재인용.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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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주식은 출금가능주식(withdrawable share)의 한 형태인데, 이는 협동조합의 정관이나 규칙에 따라 인출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는 없다. 출금가능주식의 가치는 처음 정해진 액면가 이상 올라갈 수 없지만, 협동조합의 경영 실적이 좋지 않으면 가치를 감액할 수는 있다. 이 책은 공동체 주식을 좀 더 확장해서 ‘상호주식’(mutual share)으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한다. 상호주식은 일반적인 협동조합의 출자금과 비슷한 조건으로 운용되지만, 판매자나 구매자 등 협동조합과 거래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단계를 지나 플랫폼 협동조합의 경영이 안정되면 조합원이 자유롭게 가입하거나 탈퇴할 수 있고 주식 자본을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는 공모주 발행으로 이행해 유동성을 늘려가자는 것이 이 책의 아이디어이다.
현재 국내법상 협동조합은 주식을 발행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책이 제안하는 방안은 당장 국내에서 플랫폼 협동조합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활용할 수 있는 지침이 되지는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협동조합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자본 조달 방안을 좀 더 다변화할 필요성을 환기하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이 직면한 자본 조달의 한계를 주식회사 방식으로 해결하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협동조합이 사업체로서 실체는 갖지 않고 지주회사 역할만 하는 ‘주식회사형 협동조합’(PLC cooperative)이나 의결권 있는 주식이나 무의결권 우선주를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는 ‘주식참여형 협동조합’(Participation shares cooperative) 등이 그런 협동조합이다. 물론 이런 것은 조합원의 협동조합에 대한 소유권 통제권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이 책의 부록에서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확산하는 한국의 플랫폼 경제에 플랫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어떻게 대응해 왔으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과제는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있어 이 영역의 현황을 짚어보는 참고자료가 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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