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1 21:45
수정 : 2019.12.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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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것과 관련해 항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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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예산안 국회 통과된 이유는
“한국당쪽 지역 예산도 꽤 늘어”
‘의원들 동류의식’ 탓에 지역 배분
처리 반발했지만 극렬 저지 안해
김재원, 지역 예산 90억 넘게 늘려
SOC9천억 늘고…보건·복지 1조 줄고
함양∼울산 고속도 등 대거 증액
일자리·R&D분야는 대폭 삭감
‘국민중심·경제강국 예산’ 취지 어긋나
‘양입제출 원칙’ 지키지 않아 논란
‘선 세법개정안’ 깨고 예산안 강행
“세수 확정 전에 지출 확정은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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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것과 관련해 항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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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조3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제1야당과 합의 없이 강행 처리됐지만, 예산안 세부 내용을 보면 자유한국당도 ‘실속’을 충분히 챙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늘어나면서 지역별로 고르게 관련 예산이 배분됐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 심사에 참여한 한 정부 관계자는 11일 “소속 정당을 떠나 국회의원들끼리 동료의식이 있어서인지 ‘4+1 합의안’에도 자유한국당 쪽 지역 예산이 꽤 많이 증액됐다”며 “한국당 입장에서도 딱히 손해는 아니었기 때문에 예산안을 극렬 저지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예결위원회를 통한 정상적인 예산안 심사 없이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라는 임의적인 정치 연합을 통해 마련된 수정안이 강행 처리된 것을 두고 반발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개별 의원들 편에선 이미 지역 현안 관련 예산을 섭섭지 않게 챙긴 만큼 큰 불만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날 통과된 예산안의 주요 사업을 따져보면 전국 곳곳에 에스오시 사업 예산이 대거 증액됐다. 이 가운데는 한국당 의원들의 지역구도 다수 포함됐다.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 예산은 450억원이 늘었고, 포항-영덕 고속도로에도 200억원이 추가 배정됐다.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는 애초 1억원만 배정됐는데, 10억원이 늘었다. 이천-문경 철도 예산도 297억원 늘었고, 경북도청 이전 터 매입에는 200억원이 증액됐다. 특히 한국당 정책위의장이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재원 의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은 자신의 지역구 관련 예산을 90억원 넘게 늘렸다. 세종시 지역교통개선사업 5억1200만원 증액(이해찬 민주당 대표), 구리시 아천빗물펌프장 정비비 4억원 신규 배정(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 등 여당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도 혜택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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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지역별로 고르게 늘려주다 보니 내년 에스오시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9천억원이나 늘어난 23조2천억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예산(19조8천억원)보다 17.6%나 는 것이다. 전체 예산안은 정부안에서 1조2천억원이 감액된 512조3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9.1% 늘었다. 에스오시 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에스오시 예산 증액분의 부담을 메우기 위해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조원이나 감액됐다. 노인요양시설 확충 사업은 563억원이 깎였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출산급여 예산도 202억원 감액됐다. 청년을 위한 지역맞춤형 일자리 사업과 취업성공 패키지 지원 예산도 각각 260억원과 130억원 줄었다. 경기 활력 보강을 위한 각종 연구개발(R&D) 예산도 삭감됐다. 나노소재 기술개발과 나노 미래소재 원천기술개발 예산은 1080억원 전액 삭감됐고, 재료연구소 연구운영 지원 예산도 418억원 전액 삭감됐다. ‘국민중심·경제강국’ 예산이라는 정부의 예산 편성 취지에서 어긋난 증액·삭감 심사가 이뤄진 셈이다.
한편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는 세입 예산안을 확정한 뒤 세출 예산안을 확정한다는 ‘양입제출 원칙’도 지켜지지 않아 논란이다. 국회는 예산안에 부수된 세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는 관행을 어기고, 예산안부터 강행 처리한 뒤 폐회했다. 결과적으로 세수가 확정되지 않았는데, 지출 계획만 확정된 모순이 생긴 셈이다. 기획재정부 2차관 출신인 송언석 한국당 의원은 “세입이 확정되지 않고 처리된 예산안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양입제출·양출제입 원칙은 2000년대 들어 사실상 폐기됐다. 다만 제대로 된 예산 심사도 없이 관행적으로 쪽지예산을 밀어넣는 관행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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