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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2 08:59 수정 : 2019.12.12 08:59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두 도시 이야기> 첫 부분입니다. 소설은 18세기 파리와 런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프랑스 대혁명 속에 벌어지는 사랑과 희생을 그립니다.

이 책은 <성경> <코란>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입니다. ‘최고’와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두움’을 아이러니하게(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잘 쓴 첫 문장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여기 두 도시가 있습니다. 먼저 세계적인 IT기업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입니다. 아마존이 2010년 이 곳으로 본사를 옮기면서 도시는 부흥했습니다. 일자리 4만개, 방문객 23만명, 간접고용 일자리 5만3천명, 투자 총액 380억달러(약 43조원)에 이르는 아마존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2015년 기준 시애틀 가구 평균소득은 8만달러를 넘어 뉴욕(7만5천달러)보다 잘사는 부자 도시가 됐습니다. 기업 성장이 도시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집값과 물가가 끝도 없이 폭등하면서 시애틀 주민 삶의 질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월세를 사는 사람 40%가 월급 3분의1을 집세로 내고 있습니다. 노숙자도 폭증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제프 베이조스가 사는 워싱턴 주에는 소득세조차 없습니다. 가장 빈곤한 하위 20% 인구는 소득 18%를 세금으로 냅니다. 반면 가장 부유한 상위 1%는 소득 3%만을 세금에 지출합니다.

시애틀 시는 공공주택을 늘리고 노숙자 지원을 위해 대기업 직원 1인당 연간 275달러(약 32만원)를 내는 세금, 이른바 ‘아마존 세금’을 거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이 과세에 반발해 본사를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불과 3주 만에 없었던 일이 됐습니다.

아마존이란 골리앗에 크샤마 사완트 시애틀 시의원이 다윗처럼 맞서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남성에 대항한 여성입니다. 그가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도시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입니다. 이 도시에도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칠레는 남미에서 우루과이에 이어 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입니다. 2018년 1인당GDP는 1만5923달러입니다. 남미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곳도 칠레였습니다.

그나마 남미에서 좀 산다는 칠레에서 ‘50원’ 때문에 산티아고를 포함해 칠레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칠레 정부가 10월 지하철 요금을 약 1320원에서 50원 올리니 뒤 부터입니다. 단지 50원 때문일까요?

칠레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73년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체트는 민주화를 탄압하며 통치 정당성을 경제개발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군사정부는 미국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들,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를 경제관료로 채용하며 신자유주의를 경제모델로 채택했습니다. 1975년에는 시카고학파 거두 밀턴 프리드먼 교수를 칠레로 초청해 경제회복 정책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칠레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초로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나라였습니다.

신자유주의 결과, 칠레는 상위 1% 부자가 전체 부의 27%를 독점하고, 하위 50%는 단 2.2%를 나눠 갖는 OECD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습니다. 2017년 기준 칠레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46.6으로 소득 불평등은 ‘국가 디폴트’에 이른 아르헨티나(지니계수 41.2)보다 높습니다.

민영화 정책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수도, 대중교통은 민영화 됐습니다. 그 결과 지하철 요금은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월급 30%를 교통비로 써야 합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한국의 30%에 그칩니다.

두 도시의 아이러니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요? 바로 ‘불평등’입니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이렇게 꼬집습니다. “가진 자인 귀족이 자행한 학대로 많은 시민이 고통스러워했고, 혁명 씨앗을 키우고 발아시킨 것은 무자비한 귀족 때문이었다.”

21세기에, 160여 년 전인 18세기 소설이 와 닿는 것 역시 또 다른 아이러니입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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