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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의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은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이 모여 현미 누룽지, 과일청, 쿠키 등 생산품을 만들고 자립의 길을 찾아가는 협동조합 일터이다. 2017년 말 영등포구 자원순환센터 안에 있는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 작업장에서 발달장애인과 교사들이 손가락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있다. 영등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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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의 눈] 2020 서울 세계협동조합대회
12월11일~17일,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주최로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 맞아 재점검 예정
지속가능성 등 시대에 맞는 새 정체성 포함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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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의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은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이 모여 현미 누룽지, 과일청, 쿠키 등 생산품을 만들고 자립의 길을 찾아가는 협동조합 일터이다. 2017년 말 영등포구 자원순환센터 안에 있는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 작업장에서 발달장애인과 교사들이 손가락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있다. 영등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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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여러 영역에서 변화의 기대와 희망을 품어본다. 협동조합은 12월 11일에서 17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2020 세계협동조합대회(World Cooperative Congress)"를 계기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협동조합의 본질과 특성을 재확인하고, 협동조합운동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교류, 협력을 촉진하는 자리이다. 3~4년에 한 번씩 열리며 이번이 33번째 대회이다. 1주일간 열리는 대회는 본 대회와 함께 학술콘퍼런스, 국제협동조합법 포럼, 국제협동조합연맹 전시회, 한국협동조합 전시 및 판매, 국제협동조합연맹 이사회 및 총회 등으로 구성된다.
1895년 창립된 국제협동조합연맹에는 현재 109개 국가 311개 협동조합 연합체가 가입해있다. 한국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산림조합중앙회, 새마을금고연합회, 수산업 협동조합중앙회, 신용협동조합연합회, 아이쿱소비자생협연합회, 한국협동조합 국제연대 등 7곳이 가입해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연합회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부문 조직인 시코파(CICOPA)에 가입되어 있다. 시코파는 세계 노동자협동조합을 대표하고 진흥하는 조직이다.
95년 맨체스터대회서 채택한 협동조합 7원칙 등 재검토 예정
2020 세계협동조합대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 설립 125주년을 기념하고, 동시에 1995년 맨체스터 대회에서 채택된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원칙은 시대에 따라 변화됐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1992년 도쿄 대회는 환경과 지속 가능한 발전 선언을 채택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 100주년을 기념하는 1995년 맨체스터 대회에서는 ‘협동조합 정체성에 관한 국제협동조합연맹 선언(ICA Statement on the Co-operative Identity)’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국제협동조합연맹 사상 처음으로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 가치를 열거하고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지침으로 7개의 원칙을 제시했다.
중요한 건 이런 정체성 역시 역사적 산물이며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결사체이기에 현실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해당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따라서 원칙을 포함한 정체성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따라 변화된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논의되어 수정될 수 있다. 1995년 정체성에 대한 선언에서도 서문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정된 협동조합 원칙은 협동조합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협동조합의 사상이 어떻게 적용되고, 또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여 협동조합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밝혔다.
현재의 협동조합 7원칙만 봐도 처음 등장한 건 1844년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협동조합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협동조합이었다. 이후 1937년, 1966년 수정 이후 1995년 맨체스터 대회에서 오늘날과 같은 내용으로 확립되었다. 이렇게 정해진 원칙이 ①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②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 ③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④ 자율과 독립 ⑤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⑥ 협동조합 간의 협동 ⑦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이다.
이번 대회는 정의, 가치, 원칙이 포함된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해 25년 만에 다시 논의하는 자리이다. 이런 점에서 아리엘 과르코 국제협동조합연맹 회장도 “2020년은 국제협동조합연맹과 전 세계 협동조합운동, 특히 한국협동조합운동에 기념할만한 해가 될 것”이란 메시지를 보내왔다. 엄형식 국제협동조합연맹 전략 및 통계담당자도 "협동조합 정체성 채택 25주년을 맞이해 협동조합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토론과 심화 논의를 해나가는 자리"라고 밝혔다.
지속가능성, 미래세대, 공정한 생산 등 새로운 협동조합 정체성 주목
따라서 단순히 대회를 유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의 협동조합들이 최근의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의 협동조합에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국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역동적인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1992년 도쿄 대회 이후 두 번째로 유럽 외부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전 세계 협동조합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하고 바라는 주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유엔 회원국 정상들은 2015년 9월 총회에서 2030년까지 추진할 의제로서 17개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방안을 승인했다. 지속가능발전이란 “미래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발전”으로 유엔에서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빈곤, 난민 등 인류의 보편적 문제와 지구 환경문제, 노사, 고용 등 경제, 사회문제 등에 이르는 17가지 주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를 제시했다. 지속가능성은 협동조합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서 1980년 모스크바 대회, 1992년 도쿄 대회에서도 다뤄졌으며, 2016년 세계 협동조합의 날 슬로건도 ‘협동조합: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행동하는 힘’이였다. 국제노동기구(ILO)도 2014년에 ‘협동조합과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친환경적이고 지역의 사회적 자산을 증가하는 협동조합의 사례를 제시했다.
두 번째 화두는 ‘미래세대’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9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기후변화를 전 세계적 이슈로 만든 청소년 활동가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협동조합이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미래세대가 현재의 주역으로 참여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이미 기후위기의 시대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협동조합을 경험하고 조직할 수 있다. 툰베리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학교 안팎에서 협동조합을 보다 많이 접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2013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학교협동조합은 7년 만에 100개를 넘어섰고, 꿈의 학교 등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지역사회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학교 설립이 어려운 제3세계 국가에서는 지역자원을 모아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드는 협동조합 학교가 많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학교 안에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세워지고 협동조합 학교가 시작되는 곳은 한국, 영국, 스페인, 프랑스 정도이다. 또 교육부가 나서서 학교협동조합과 유치원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학교 설립을 장려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만의 역동적인 청소년들의 협동조합 활동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새로운 정체성에 포함해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공정한 생산’을 제안해본다. 이는 국제 무역에서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도록 촉진하는 공정무역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의 생산과 노동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플랫폼 경제의 가속화에 따른 노동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플랫폼 협동조합이 전 세계적 화두인데, 프리랜서, 택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자와 노동자가 공동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을 모색해보고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연합회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의 부문 조직인 시코파에 가입되어 있다. 시코파는 세계 노동자협동조합을 대표하고 진흥하는 조직으로 1947년 창설되어 ‘협동적인 일과 생산의 증진’, ‘노동자소유의 증진’을 추구하고 있기에 협동조합 정체성에 공정한 생산을 강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 기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 UN이 정한 2012년 세계 협동조합 해의 슬로건이다. 영화 <기생충>, <조커>의 흥행이 보여주듯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빈부 격차와 이로 인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협동조합만이 정답은 아니지만, 이를 중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볼 수 있다. 2020년 12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협동조합대회를 준비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주수원 전국학교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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