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도 프라이빗뱅킹·신용대출등 성장세
토종들 맞불 불가피…중기대출 기피 심화될듯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에 이어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제일은행을 인수했다. 또 제일은행 인수전에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밀린 홍콩상하이은행(HSBC)도 올 연말께 시장에 나오는 외환은행에 눈독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외국계 대형 은행들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고 당장 돈이 되는 소매금융에만 몰두하는 ‘쏠림’ 현상과 ‘위험 기피’ 행태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벌써부터 국내 소매금융에서 6%를 차지하고 있는 제일은행의 시장점유율을 몇년 안에 1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마이크 드노마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소매금융 총괄이사는 지난 10일 제일은행 인수 기자회견에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규모로는 세계 주요 은행들에 못미치지만, 진출한 국가에서는 주택담보대출, 프라이빗뱅킹, 신용카드 등 소매금융 분야에서 거의 모두 1~2위를 다투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소매금융 시장이 큰 한국은 반드시 공략해야할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제일은행 인수 목적이 소매금융 시장 공략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밝힌 셈이다. 이번에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홍콩상하이은행을 막판에 가격으로 밀어낼 정도로 제일은행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외환위기 이전인 지난 1997년 전체 대출잔액에서 기업대출이 72%, 가계대출이 21%를 차지했지만, 지난 2000년 뉴브리지캐피탈이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에는 가계대출 비중이 급격히 높아져 지난해 3분기엔 가계대출 68%, 기업대출 30%로 비중이 역전됐다. 특히 가계대출의 90%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의 기업대출을 크게 축소하고 가계대출을 비정상적으로 늘려온 것은 오로지 외국계 은행의 구미를 당겨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씨티은행도 한미은행의 영업망을 활용해 국내 금융자산가들을 상대로 한 프라이빗뱅킹과 고소득 직장인 신용대출 등 소매금융에서 강한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은행들을 자극하고 있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외국계 은행들이 소매금융에 집착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서면 국내 은행들도 시장을 지키기 위해 기업금융보다는 소매금융 쪽에 힘을 집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이미 그렇지 않아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은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은행의 가계대출은 10월에 비해 3조원 가량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1조원 넘게 감소하는 등 은행권의 자금 배분 기능이 갈수록 왜곡되어 가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많은 국내 은행들이 외국계 은행과 맞서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투자 상품을 잇따라 내놓거나 제살 깎아먹기식의 금리 경쟁을 벌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수익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외국계 은행들과,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은행들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당국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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