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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1 21:38 수정 : 2019.08.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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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경제의 창
중국 ‘위안화 절하’ 미 관세 무력화
달러당 7위안 넘어서며 약세 기조
환율급등에 자금 빠져 나갈라
안정채권 발행해 방어 ‘양면전략’

미국 ‘환율조작국 카드’ 효과 적어
상계관세·완전변동환율 압박 전망
성과는 없고 재선길 바쁜 트럼프
수읽은 시진핑 시간끌기로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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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라는 숫자는 방파제 같은 게 아니다. 댐의 수위처럼 풍수기에는 높아지고 갈수기에는 내려가듯,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정상이다.” 달러당 7위안이 깨진 지난 5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면서 “위안화 자산은 여전히 안정적이어서 글로벌 자본의 ‘저수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관세전쟁은 결국 환율전쟁으로 이어졌다. 8월 들어 대중 추가관세→미국산 농산물 수입중단과 위안화 평가절하→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등 미-중의 공세와 응전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며 세계 금융시장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4년전 위안화 절하의 ‘트라우마’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직후 중국의 정책 대응은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인민은행은 위안화 고시 기준환율을 올리면서도, 홍콩시장에서 오는 14일 환율안정채권을 발행해 위안화 절하 방어에 나설 계획이다. 환율 급등에 따른 금융불안 여지를 차단하면서도 점진적인 상승기조는 용인해 미국의 관세인상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의 경제조사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적극 유도하고 있지는 않지만 환율을 효과적으로 ‘무기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2015년 위안화 절하로 금융시장이 타격을 입은 아픈 경험이 있다. 2014년 11월 일본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2차 양적완화를 전격 실시하고 2015년 3월에는 유럽이 전면적인 양적완화를 펴자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양적완화를 끝냈지만 금리를 올리지는 않았다. 이에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자 중국은 2015년 8월 11일부터 사흘 동안 위안화 고시 환율을 4.6% 절하했다. 이로 인해 자금이 급격히 유출됐고 이듬해에는 부채위기가 불거지기도 했다.

지금의 환경도 유사하다. 미 연준은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오는 9월에 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도 중국이 위안화 추가 절하에 나설 경우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성연주 신영증권 연구원은 “자본시장 개방과 독자적인 통화정책, 환율안정이 동시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중국의 ‘트릴레마’(3중고)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과거 환율조작국 효과 크지 않아

미국의 공세도 상호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미국은 중국이 관세인상 충격을 위안화 약세를 통해 상쇄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 위안화를 강세로 돌리려 한 이유다. 나아가 위안화 절하를 부당한 수출 보조금으로 간주해 해당 수입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관세와 관세율 인상이 되레 위안화 약세를 부추겨 대중 무역적자 축소를 어렵게 한다는 시각이 많다. 중국도 7위안이 뚫린 건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과 관세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이 상대국 통화가치를 절상시키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과거 환율조작국 지정 사례를 보면, 한국(1988~1990년) 원화는 지정 이후 달러 대비 8% 가량 절상됐지만 차츰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만(1988~1990년, 1992년) 달러는 기간별로 흐름이 엇갈렸고, 중국(1992~1994년) 위안화는 되레 절하됐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환율시스템 자유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위안화의 좁은 환율 변동폭을 환율조작의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현재 위안화의 하루 변동폭은 상하 2%로 제한돼 있다. 중국도 2015년과 2017년에 환율 변동폭 확대를 검토한 적이 있어 수용할 여지가 있다. 미국은 내친김에 중국이 완전변동환율제로 전환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한국, 대만, 중국 모두 당시 환율조작국 지정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환율제도를 개편했다.

시간 쫓기는 트럼프에 남은 배 한척

시간은 트럼프의 편이 아니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전 핵심 공약이었던 무역불균형 해소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올해 안에 일정 수준의 협상 타결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파상공세를 내년까지 이어가 미국 경제와 증시가 흔들릴 경우 재선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에게는 아직 배 한 척이 남아 있다. 금리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춘 ‘연준’이지만 지휘체계밖에 있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요구 사항은 지난 5월 기술이전이나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서 지금은 트럼프의 표와 직결되는 농산물 수입확대로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모를리 없는 중국은 양보보다 버티기 전략으로 돌아섰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장기전을 고수할 경우 무역전쟁은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글로벌 환율전쟁은 한국 등 신흥국의 통화와 증시의 불안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위안-달러 환율은 이제 미-중 무역분쟁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동시에 원-달러 환율에도 가장 영향력이 큰 변수가 됐다”고 짚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위안화 절상 ‘트럼플라자’땐 중국도 ‘잃어버린 20년’?

엔·마르크 절상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정책실기 탓 버블 뒤 ‘장기불황’
중국 “실패한 전철 밟을 일 없을 것”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트럼플라자’라는 조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미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엔과 마르크의 가치를 평가절상하자는데 합의했다. ‘플라자 합의’가 이뤄진 플라자호텔은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유였다. 1988년 당시 부동산 재벌이던 그가 이 호텔을 사들였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제2 플라자합의’로 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종종 나왔다.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는 ‘트럼플라자’가 이뤄지면 중국도 1980년대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빠질 수도 있다는 해석이 곁들여진다. 하지만 일본의 장기불황은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거듭된 정책 실기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1년 만에 엔화 가치는 36% 상승했다. 엔화 절상 효과로 소비가 늘고 주식과 부동산 값이 상승했다. 일본은 미국 부동산 투자에도 열을 올렸다. 일본의 대외 순자산은 2년 만에 두 배 규모로 증가했다. 1980년대 말에는 고흐, 모네 등의 명화와 세계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을 마구 사들였다. 미국을 밀어내고 일본의 시대가 오는 듯 했다.

엔화 절상에 따른 부정적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일본은 내수를 부양한다. 일본은행은 1989년 정책금리를 5.0%에서 2.5%로 내렸다. 6조엔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풀었다. 이때 글로벌 핫머니가 일본으로 밀려들어 자산가격이 폭등했다.

거품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 정부는 반대로 고강도 긴축에 나선다. 금리를 3.5%포인트 올리고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강력한 규제책도 내놓았다. 그러자 일본 증시는 붕괴됐고 담보 부동산을 팔아도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은 도산했다. 1993년 일본은 역성장(-0.6%)했다. 제조업 공동화까지 겹쳐 빠르게 불황이 찾아왔다.

다시 금리를 0%까지 인하하고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돈을 빌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중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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